이혼반성문: 여섯번째 이야기
결혼 생활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큰 소리로 싸우거나, 대화를 하거나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화도 시도하고,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대화는 줄어들었고, 서로를 쳐다보는 일도 줄었다.
이후에 하고 싶은 말은 주로 카톡으로 했다.
그런데 문자로 보내면 읽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글의 감정과 내용이 전혀 달라진다. 해석을 잘 못해서 오해는 오해를 만들었다.
문자로 싸우려고 장문의 글을 쓰고, 말로는 못하는 인신공격, 그 외에 시비를 걸기도 했다.
나도 예외는 없었다.
내가 문자를 받고도, 보내고도 기분이 나빠서또는 걱정이 되어서 잠을 못 잔 적도 많았다.
나중에 이혼 소송에 증거로 내려고 캡처를 해 두기도 했다.
그렇게 싸우면 뭔가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서로 물고 뜯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다가 너무 힘든 날은 내가 그의 문자를 차단했다.
하지만 이내 그가 보낸 기분 나쁜 말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차단을 풀고 문자를 확인하고, 기분 나쁜 것을 곱씹으면서 그를 원망했다.
여전히 나는 그에게, 그리고 내 감정에 휘둘려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유투브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영상을 봤다.
당신에게 선물을 주면 다 받아야 할까요?
선물을 받으면 그 선물은 당신 것이 되지만,
선물을 받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 선물을 주려고 하는 사람의 것이에요.
상처도 똑같아요. 그 사람이 나한테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는 건 그 상처를 내가 받아들였기 때문이에요.
그가 나한테 주려고 하는 상처를 거부하세요.
그럼 그건 당신의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것이 되는 거에요.
나는 전남편이 주는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는
그를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는
그가 주는 선물(?)을 받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기분 나쁜 말을 할 것 같으면, 통화 차단, 문자 차단을 했다.
며칠씩 차단하거나 한달을 넘긴 적도 있다.
그렇게 차단하고 나는 내 생활을 더 열심히 했다.
아이도 더 열심히 키우고, 밥도 더 잘 챙겨 먹었다.
그리고 내가 필요할때 쯤 차단을 풀고 연락을 했다.
그럼 그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전 내용에 대해서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왜 차단하냐고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런데 그도 내가 연락을 안 하니까 오히려 편했는지 더 이상을 말을 안 한 것 같았다.
이렇게 내가 불편하고 힘들면 차단해도 된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는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믿어라
우리는 모두가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원하고 자존감의 회복을 바란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책임이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복을 원하면서도 밀어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점을 믿어야 한다. 나에게 만족하는 내가 되면 행복해진다고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
< 자존감수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