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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 후 나는 왜 친정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열번째 반성


#이혼반성문 #이혼 #친정 #독립심 

내가 이혼을 결심한 건 아이가 돌 잔치도 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돌잔치도 해 주지 않고, 도망치듯 이혼을 하기 싫었다. 그래서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고, 주변의 도움도 받았다.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많은 이유들을 알려주었다.


첫번째는 아이

두번째는 부모님(나에게는 엄마)

나는 엄마한테 자랑인 존재였다. 딸래미가 교대 들어간 것도 자랑이었고, 초등교사가 한 번에 된 것도 자랑이었다. 집도 해 주는 나름 괜찮은 집에 시집 간다고 기대도 했었다.

그런데...

몇년을 살 지 못하고, 이혼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충격이 크셨을까? 엄마는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정말 속상해 하셨다. 그래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 때문에라도 이혼을 말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휴직 상태에서 18개월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오겠다고 결심을 했을때, 아이를 키우는 문제 때문에 고민을 했다.


친정집에 들어갈까?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갈까?

아이가 아프면 돌 봐 줄 사람이 없는데 엄마한테 가서 좀 편하게 있을까? 

나혼자 아이랑 사는 건 자신 없는데, 어떡하지...


하지만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친정집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시선을 받을까? 

 매일 나를 보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처음에는 걱정이 되어서 나를 받아주시겠지만, 얼마나 불편하실까?

매일 내가 아웅다웅 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속상하실까?


그래서 나는 용기를 냈다. 

나 혼자 온전히 살아낼 수 있도록 집도 혼자 구하고,어린이집도 구하고, 아이가 아파도 되도록이면 돌보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엄마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리라고.

아이도 엄마 도움 받지 않고 키워내리라고 말이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혼자서 다 해낼 수 있었다. 혼자 전세 알아보고, 이사도 하고, 어린이집 적응도 시키고, 복직도 하고...


아이가 아파서 운 적도 많지만,  주변 사람들이 도와 주기도 했고, 친정 엄마같으신 돌보미 이모님이 우리 아들을 정말로 예뻐해 주시기도 했다.

어린이집 원장님, 유치원 담임 선생님, 아들 친구 엄마들까지 나혼자 사는 것이 힘들지 않게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

엄마도 가끔 오셔서 아들이 아플때 돌봐 주시거나, 나혼자 너무 힘들게 산다고 며칠씩 계시면서 집밥도 챙겨주시고 하셨다.  3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에 아들이랑 둘이 나와서 사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속상해서 울기도 하고, 화를 내시면 전남편을 욕하시기도 하셨다. 그 마음이 너무 잘 이해되어서, 나는 더 씩씩한 척 했고, 이혼해서 더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게 나의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까 내 삶은 점점 더 좋아졌다. 2년만에 그 집을 떠나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고, 아들도 잘 커주었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사는 동안 엄마의 건강이 안 좋아지시고, 결국 뇌졸증으로 쓰라져서, 병원에서 3년동안 생활을 하셨다. 다행히 회복이 잘 되서 친정집으로 돌아오셨고, 나는 그때부터 아픈 엄마를 모시고 살기 위해 더 좋은 집을 알아봤다. 뭔가 나때문에 더 아프신 것 같아서 꼭 보답을 해 드리고, 효도를 해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턱이 없는 새아파트여만 했다. 그래서 나는  살고 싶은 아파트를 열심히 찾아서 드디어 내 이름으로 계약을 했다. 이제 엄마랑 아들이랑 나랑 잘 사는 시간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는 내가 산 아파트에 한 번도 오지 못하시고,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미처 다 못 보시고 작년에 천국으로 가셨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엄마한테 미안함과 죄송함에  많이 울었다. 

효도도 제대로 못 했는데,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나 버린 엄마가 너무 안타깝고, 불쌍했다.


장례식이 다 끝나고 엄마의 흔적을 정리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친정으로 들어가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옆에서 고스란히 보고 계셨다면 엄마 마음이 얼마나 더 아프셨을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혼자 아들 키우면서 잘 산 모습을 보여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랩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중에서 

어린 나무는 극도로 힘든 사람을 영위한다. 1년을 살아남은 나무들의 95퍼센트가 그 다음 해를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만다. 나무들의 씨는 보통 그다지 멀리까지 퍼져나가지 못한다. 대부분의 단풍나무 새싹은 그 씨를 떨어뜨린 가지가 달려 있는 나무 둥치에서 3미터 이하의 거리에서 자라난다. 따라서 어린 단풍나무는 몇 년동안 성공적으로 주변의 영양분을 모두 싹쓸이를 해 온 성숙한 단풍나무의 그늘에서 햇빛을 확보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다 자란 단풍나무가 자손들에게 제공하는 한가지 믿을만한 부모의 사랑이 있다. 매일 밤 자원 중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인 물을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려 약한 어린 나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하루 더 버틸 힘을 얻는다. 어린 나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이 물뿐만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고, 100년 후에도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가 단풍나무이려면 이 어린 나무들이 얻을 수 있는 도움은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어떤 부모도 자식들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돕는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Skiathos Greec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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