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한번째 반성:
"남편이랑 있으면 기분이 나빠져."
"남편이랑 있으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
"남편이랑 있으면 불편해."
"남편이랑 있으면 화가 나요. 얼굴도 보기 싫어."
"남편이랑 매일 싸우는 게 지겨워."
"남편이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
내가 이혼을 하려고 했던 이유들을 가만히 보면 감정이었다.
내가 느끼는 불쾌감, 불편함, 분노, 답답함...
그런 감정들이 사라지길 바랐다. 이혼을 하면 이런 감정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현실적인 조건으로 봤을 때, 남편 이름으로 산 넓은 집, 성실하고, 괜찮은 회사에서 월급 받는 남편, 그리고 귀여운 아들...
내 감정들만 누르면 나는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내가 이혼을 하면 이런 경제적인 혜택을 다 버리고 혼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감정의 평화 vs 금전적 현실
이혼을 선택을 하기까지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지금 왜 불행하다고 느끼는가?'
'돈이 없어서인가?'
'내가 존중받고 사랑받지 못해서인가?'
'나를 누르고(좋아질 거라는 희망만으로 참고) 살면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아들이 클 때까지 나는 참고 견디며 살 수 있을까?'
"돈은 충분하지만, 지금 나는 행복한가?" (아니오)
"그럼 이혼하면 행복해질 것인가?" (미래는 알 수 없다)
"남편이 없고, 아들 혼자 키우면서 과연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아이한테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돈이 없어서, 오래된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생활도 힘들어질 텐데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는가?"
몸이 힘든 게 마음이 힘든 것보다 낫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나를 이혼하게 만들었다. 몸이 힘든 것이 마음이 힘든 것보다 낫다. 미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믿는다면 다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혼으로 인해 생긴 어려움은 괜찮았다. 이사를 하고 수돗물에서 녹물이 섞여 나와도 괜찮았다. 정수기를 설치하고, 연수기를 설치해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은 해결해 나갔다. 돈이 없어도 괜찮았다. 아들과 나 둘만 먹으니까 식비도 별로 들지 않었다. 집이 좁아도 괜찮았다. 베란다 사용을 못 해도 방 하나에 짐이 쌓였어도, 둘이 살 공간은 충분했다.
혼자 돈을 벌어도 내 월급으로도 아들과 내가 쓰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어서 괜찮았다.
그리고 때로는 조금 부족함을 느꼈기에 더 좋은 아파트로 가기 위해서 저축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더 좋은 아파트를 살 수 있게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 면접을 하러 오는 전 남편에게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통쾌함을 느꼈다.
더 못 살 거라고 예상했던 전 남편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렸으니까 말이다.
나는 앞으로는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이혼하고 더 잘 사나요?
라고 물어보면
미래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더 잘 살 거라고 생각하면 더 잘 살게 돼요.
라고 나는 자신있게 대답해 줄 것이다.
노랑 애벌레는 망설이다가 물었습니다. "나비가 되기로 결심하면.... 무엇을 해야 되죠?" "나를 보렴.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내가 마치 숨어 버리는 듯이 보이지만, 고치는 결코 도피처가 아니야. 고치는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잠시 들어가 머무는 집이란다. 고치는 중요한 단계란다. 일단 고치 속에 들어가면 다시는 애벌레 생활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고치 밖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비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야."
<꽃들에게 희망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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