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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Mar 06. 2020

알아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물 위에 떠 있는 기분!

[쉼표에서 발견한 것들] 13.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 티티카카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hkQ-xLAp7BU


영화 '후아유'에서 인주(이나영)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수영하는 게 평생소원이라고 말한다. 게임개발자인 형태(조승우)는 프로그래밍으로 호수를 구현해 그녀에게 마음을 전한다. 바로 내가, 두 사람의 그곳에 발도장을 찍었다.


발도장 쾅!


망할 고산병! 망할 부작용!


종일 기차를 타고 온 탓인지 푸노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피로가 몰려왔다. 여행사를 알아볼 필요 없이 숙소 프런트에 티티카카 호수 투어 예약을 했다. 쿠스코에서 잠시 동행했던 P언니에게 얻은 육개장 건조 블록을 뜨거운 물에 풀어먹고 잠이 들었다. 혹시 몰라 아세타졸(고산증약)도 한 알 챙겨 먹었다. 와라스나 쿠스코 못지않게 푸노 역시 해발 3800m를 자랑하는 고지대이기 때문이었다.


숙소의 이불은 따뜻했고 오랜만에 숙면을 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손발 경련으로 새벽에 잠이 깨고 말았다. 경련은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졌다. 이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세면대 수도꼭지를 돌리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겨우 진정시켰지만, 호수 투어 할 때는 내내 손발이 저려서 혼났다.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고?


티티카카.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말이 사실이 아니다. 티티카카 이후 히말라야와 티베트 등지에서 더 높은 고도에 있는 호수가 발견된 것. 다만, 배가 다닐 수 있는 호수를 기준으로 하면 여전히 티티카카가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한다. 호수는 페루와 볼리비아에 걸쳐 있으며, 바라보고 있으면 '여기 바다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여기 '호수' 맞아요.


나는 우로스섬과 타킬레섬을 돌아보는 하루짜리 투어를 하기로 했다. 1박을 하면 아만타니섬까지 갔다 올 수 있지만, 투어 다음날 볼리비아로 이동하기 때문에 두 섬만 둘러보기로 했다.


오늘의 피해자가 내일의 가해자다


티티카카 호수에는 섬이 많다. 그중 우로스섬은 단연 눈에 띈다. 갈대로 만들어진 인공섬이기 때문이다. 우로스 인디언들이 잉카족을 피해 호수 가운데에 갈대의 일종인 토토라로 섬을 짓기 시작한 것이 이 섬의 시작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침략으로 사라져버린 잉카제국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침략자였다. 스페인과 잉카, 잉카와 우로스족.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아픈 역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유효하다.


우로스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섬을 만드는 법, 섬 위에서 생활하는 법 등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주민들이 옆에서 간단하게 시연을 했다. 보통 남미 사람들과 다르게 그들의 표정은 꽤나 무미건조했다. 설명 이후에는 그룹별로 쪼개져 각 주민의 집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주민들은 이내 기념품을 사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전통체험이라며 갈대배 타기도 권유했다. 섬 주변을 잠시 도는 것에 비해 체험료가 비싼 것 같아서 나는 타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타지 않는 이들은 방치된 채 멀뚱멀뚱 갈대배만 바라봐야 했다. 여러  듣긴 했지만 우로스섬은 생각보다  많이 상업화되어 었다. 게다가 실제 거주하는 주민이 거의 없고 대부분 푸노에 살면서 출퇴근한다고 했다. 씁쓸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외부 세계에 전통을 전하고  명맥을 이어나갈  있다면.



마주치는 주민마다 수줍은 미소로 인사하는 곳


우로스섬에서 배를 타고 1시간 정도 더 달리면 타킬레섬을 만날 수 있다. 중앙광장이 언덕에 있는 탓에 도착하자마자 30여 분 정도 힘겹게 길을 올랐다. 섬은 고요했고, 아름다웠다. 마주치는 주민마다 수줍은 미소로 환영의 인사를 대신했다. 우로스섬에서 받은 실망감이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타킬레섬은 직물 공예로 유명하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단다. 여자는 실을 뽑고 남자들은 뜨개질을 한다고. 실제로 섬 곳곳에서 여자 주민들이 실뭉치 같은 것을 들고 휘휘 돌리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실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한다. 또 이곳 남자들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다. 나이, 여자친구 유무, 결혼 여부 등에 따라 모자의 색과 무늬가 다르다고 한다.


위 아래의 모자 색과 무늬가 다르다.
여자 주민들은 저 실뭉치를 종일 들고 다니며 실을 뽑는다.


사부작사부작.  속도에 맞춰 천천히 섬을 걸었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으니 티티카카 호수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감상할  있었다. , 중간에 실수로 이탈한 것은 옥에 ! 하지만 가이드는 쉽게 나를 찾아냈다. 하긴 혼자 다니는 데다가  명밖에 없는 동양 여자애니 찾기 쉬울 수밖에. 그는 나와 함께 걸으며 섬과 호수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호수 이쪽으로는 페루고 저쪽으로는 볼리비아야.”, “밭에 있는 사람들 보이지? 3 동안 농작물을 심고 있어.  우기가 시작되거든.”, “ 나무는 유칼립투스야. 향이 매우 강해.” 마지막으로 그는,   동안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를 여행한다는 내게 "남미의 아름다운 곳을 여행한다." 말해주었다. , 칠레는 제외한다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하.


햇빛을 받은 호수가 반짝이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점심으로 먹은 송어구이. 흙냄새가 살짝 났지만 먹을만 했다. 하지만 고산 증세로 많이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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