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에서 발견한 것들] 14. 태양의 섬에서 길을 잃다
볼리비아의 첫 여행지는 코파카바나다.
푸노 버스터미널에서 C를 만났다. 볼리비아에서 칠레 아타카마 사막까지 동행할 예정이다. C는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고, 지금은 학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있다. 덕분에 언어 걱정은 하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종종 이 친구에게 너무 의지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동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 친구에게 부담이 치우치지 않도록 (아주) 가끔은 내가 먼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보려 애썼다. 'Dónde está el baño?' (화장실 어디예요?) 등의 아주 간단한 것들이었지만.
푸노(페루)에서 코파카바나(볼리비아)로 이동할 때는 버스를 이용한다. 꿀렁꿀렁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출입국신고서를 쓰는데 기분이 묘했다. 분단 때문에 실질적으로 섬나라와 다를 바 없는 한국에 사는 내게,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는 것은 꽤 신선한 경험이었다.
볼리비아는 첫인상부터 별로였다. 우선 숙소의 가성비가 너무 좋지 않았다. 페루에서 욕실과 화장실이 딸린 넓은 방을 빌릴 수 있는 가격으로 볼리비아에서는 남녀공용 화장실에 좁아터진 방을 겨우 얻을 수 있었다. 음식 맛도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맛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슨 맛인지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는 음식이 많았다. C와 함께 더 머물지 않고 라파스로 넘어가 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는 건 아쉽지'라는 생각이 발목을 붙잡았다. 우리는 딱 '태양의 섬'만 보고 가기로 했다.
태양의 섬(Isla del sol)은 잉카문명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장소다. 창시자 망코 카팍이 태어났다고 알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코파카바나에서 태양의 섬에 가려면 1시간 30분가량 배를 타야 한다. 보트를 타고 바다 같은 호수를 또다시 가로질렀다. 섬 선착장에 도착하자 선장님은 두 시간 정도 줄 테니 건너편 선착장에서 보자고 했다. 고개를 돌리니 가까운 곳에 선착장 하나가 보였다. 나와 C는 '건너편'이라는 말에 '저기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선착장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트레킹을 하다가 C와 잠시 떨어져서 걸었다. 각자 가고 싶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쉬엄쉬엄 사진을 찍으며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너무 늑장 부렸나'하는 생각에 바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걷는 속도가 느린 편인데 뒤처지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저 아래쪽에 배 두어 척이 정박해있는 선착장이 보였다.
선장님이 말씀하신 선착장이 저기인가? 선착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주위에 여행하는 듯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그쪽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다시 위쪽으로 향했다. 급한 마음에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원주민들에게 'Dónde Copacabana Boat?'(코파카바나 보트 어디?)라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섞인 말을 던졌다. 용케 알아들은 그들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아니라며 손가락으로 반대쪽을 가리켰다. 뭔가 미심쩍어서 원래 가려던 선착장을 바라봤다. 딱 봐도 관광객인 것 같은 사람이 선착장을 향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의 말을 무시하고 원래의 방향을 고집했다. 선장님과 약속한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길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밭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단차 높은 계단식 밭에서 어떻게 뛰어내렸나 싶은데, 다급해지니 다 하게 되더라. 얼마 전 이곳에서 피살됐다는 한국 여자분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다.
어라?! 내가 타고 온 배가 없다. 도착한 곳은 레스토랑이었고, 정박해있던 배들은 레스토랑 손님을 태우는 용도였다. 배 주인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코파카바나에 가지 않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다시 올라가라고 했다. 밭까지 밟아가며 내려왔건만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한 사람을 붙잡고 협상을 시도했다. "코파카바나행 보트를 탈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 얼마면 되니?" 40볼을 부른다. 한국 돈으로 8천 원. 비싸다. 하지만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 멍청이 비용이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기다리고 있을 C를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타고 온 배가 이미 떠났을 시간이라 연락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하필 유심도 사두지 않은 터였다.
1분이나 될까. 정말 잠깐의 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선착장 쪽으로 다가가는데, 정박 중이던 배에 탄 사람들이 내게 손짓을 했다. 코파카바나에서 함께 왔던 이들이 나를 기억해 준 것이다. 여기에서는 흔치 않은 동양인인지라 쉽게 눈에 띄었겠지. 튀는 외모가 이럴 때 빛을 발하는구나. 배를 옮겨타는데 C의 얼굴이 보였다. 안도의 한숨과 눈물이 터졌다.
알고 보니 선장님이 우리에게 오라고 했던 선착장은 C와 내가 처음에 '저긴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C 역시 나처럼 레스토랑이 있는 선착장까지 내려갔다가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흥정해서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단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내가 봤던 그 사람, 그러니까 레스토랑 선착장으로 향하던 사람이 바로 C였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돌아가기로 약속한 시각이 한참 지났는데도 선장님은 아직 오지 않은 승객을 계속 기다리셨다. 내 뒤로도 두어 팀이 더 왔다는 건 안 비밀! 정시 출발이 거의 없는 남미의 문화에 처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이었으면 어림없었을텐데.
잉카문명에서 꽤 중요한 땅을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보 같은 나는 관련 유적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섬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원주민인 아이마라족의 삶도 일부 엿볼 수 있었고. 아이마라족은 양을 기르고 계단식 밭에서 옥수수와 감자를 경작하며, 티티카카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면서 생계를 꾸려간단다.
C와 함께 숙소에 누워 태양의 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하하호호 웃고 떠들었다. 당시에는 정말 긴박했는데 지나가고 나니 웃음만 나오더라. 물론 '무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위험 지역인 북부까지 갔다는 걸 알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멍청비용이 발생한 날이었지만, 덕분에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조심 또 조심!
여행에서 '멍청비용'은 필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넓게 생각해보면 비단 여행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멍청비용을 지불하며 깨닫고 성장하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