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계탕 Aug 25. 2024

3개월에 5000만 원 번다는 그곳에 가봤습니다.

알바몬에 계속 뜨는 그 업체들

‘진짜 더는 이렇게는 못 살겠다’

‘돈 버는 게 뭐 이리 어렵냐’


이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며

미쳐갈 때 쯤.


평소 같았으면 쳐다도 안 봤을 문구들에

진짜 되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중 그나마

진정성 있게 공고를 올려둔 한 업체에 연락...

을 하자마자

면접 일정을 잡자고 한다.


화장실도 없는 지하 다방에서 자란 나는

신축 아파트에 그야말로 ‘환장’하는 인간


취미는 분양 아파트 모집 공고문 보기

특기는 모델하우스 찾아가기


어쩐지 이 취미와 특기를

잘--- 조합하면 마음을 붙여볼 수도 있겠다는 심산에

면접에 나섰다.




미친 척 3개월 버텼더니

통장에 5000만 원이 찍혔다는 본부장


그간 봐온

모델하우스 양아치 눈까리들과는 살짝 다른 눈빛

깨끗한 역세권 모델하우스

그 수많은 분양 물건 중에서도 그나마 서울,

역세권에 위치한 대형 브랜드의 ‘아파텔’을 파는 업체.


“이 정도면 괜찮은데?”

“진짜 한 번 해 봐?”


버티기만 하면 다 돈 번다는 그의 말은

집값, 몸값, 목숨값에 지친 대한민국 30대의 심신에

한줌 위로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분양 현장에 감도는

특유의 무겁고 쎄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굳혀본 다음 날


출근한 사무실은...



대략 이런 느낌으로 훨씬 더

어질러져 있었다.


이 물건지를 팔기 위한

여러 분양 업체가 모여서 일한다는 이곳.


건설사에서 단기로 잡아준 모델하우스 옆 사무실은

그야말로 최악이었고,

화장실은 최소 1달은 청소가 안 된 듯 보였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처절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전화번호가 꽉 채워진 페이퍼를 보며

전화를 돌리는 신입 영업 직원들.


그들의 전화는 1초도 안 되는 새 끊기기 일수였고

사무실엔 한숨이 난무했다.


그날 내가 그 사무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 네네 고객님, 전화번호 지워드릴게요”


아마도 우리는

전화를 거는 대다수 대중에게

‘스팸처리’가 될법한 일을 하고 있을 테지.


그럼에도

신축 현장을 사랑하는 마음


그보다

서울 역세권 부동산은,

덮어두면 결국 우상향 한다는 믿음


그리고

보험과 달리

부동산은 어떻게든

한 채 한 채, 그 주인을 찾아가야 한다는

개인적인 신념으로


“다른 신입들과 다르게 영업을 해봐야지”


이상한 의지를 불 태우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내가 팔려는 물건은

당장에 시세차익을 기대할 순 없으나

오래 잘-- 갖고 있으면

그돈으로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는

나은 결말을 볼 수 있다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실제로 이 물건에 대한 믿음을 갖고

제대로 알고

영업을 시도하는 신입은

단 한 명도 없어보였다.


“어라.. 나는 되겠다“는 자신감이 차오를 때쯤


교육을 하자며

나를 부르는 본부장.


그렇게 찾아간 모델하우스에서

“버텨보자”는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일단 계약금만 넣고 당장 팔아버려도 이득이에요”


본부장의 교육 내용이

귀로 들어가는 건지

코로 들어가는 건지도 모르게

거슬리는 다른 이들의 영업 멘트들.


당장 팔면?

무조건 손해다.

이 물건은.


알고는 있었지만...

분양 상담사들에게

전문성이란 하늘에 별과도 같이 아득한 것인 걸까.


그들의 멘트는 하나같이

‘금방 팔면’

‘1억이, 2억이’

‘바로 팔면...’


본인들보다 시선이 낮은 이들을 고객으로 두고

‘혹하게’ 만드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나 비싼 ‘고관여 제품’을 두고.


하물며 영업하는 이들에게 이끌려와

이 현장을 찾는 고객들은

이 물건을 사서

‘오----래’

10년, 20년 가지고 있을 여유는 없어 보였다.


계약금과 잔금, 이자를 아울러서

가지고 있는 현금 50% 이상을 지불해야

분양이 가능할 것 같은 고객들이 태반.


그들에겐 중요한 건 환금성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재빨리 자산을 팔고

현금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물건은 쉽게 팔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고로,


여유 자금으로만 사놓고

그저~ 잊고 살다가

때가 오면 적절히 팔아야 하는 물건....

그런 주인이 가져가야 할 물건...


이렇게 나름의 판단을 마친 와중에 들어버린

소름끼치는 영업 멘트.


숨이 턱 막혀버렸다.



“이건.. 되게 무섭고, 무거운 일이다..

일개 30대 초반

겨우 집 한 번 사고 팔아본 조무래기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렇다.

별다른 고민 없이 사고 파는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누군가의 인생을 흔드는

일생일대의 쇼핑 목록


감히

감히


팔아보겠노라 할 수가 없었다.


이 무게감을 모르는 몇몇 업계 종사자들은

하나같이

‘질 좋은 돈’을 벌지 못하고 있었고


통장에 찍히는 그 숫자가 아무리 화려해도

‘바람직한 가치를 주고 내어받는 돈’이 아니기에

그 돈으로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분양 현장의 공기가

화사한 구조물들과 다르게

어딘가... 무거웠던 것이겠지.



‘질 좋은 돈을 벌고 있는가?’


이 물음은 이후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통장에 찍히는 단순한 숫자로

재미 좀 보자고 하는 일은

‘끝이 없다’


다른 게 무서운 게 아니다.


숫자 말고

다른 걸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은

끝이 없다.

희망도 목표도 없다.


그냥 쳇바퀴 돌리듯 계속 그걸 해야 한다.

이미 커져버린 씀씀이에

그 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건 더 무섭다.


만약 내가 부동산에 잔뼈도 굵고 머리도 굵어서

팔만할 물건을 살만한 사람에게 건네는

가치를 제공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분양을 했겠으나

나는 그럴 짬빠가 안 되었다.

그 큰돈을 쥐고 나를 그릇도 안 되었다.


그러니 그 일은 나에게 숫자만 있고, 가치가 없을 터.


작금에 분양 영업을 하는 분들 중

스스로의 알맹이를 체크하지 않는 분들은

이런 걸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내가 타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그릇은

단돈 2000원.


도넛 하나에 2000원 (나는 도넛 가게에서 홀서빙을 한다.)


고로, 2024년 8월 내 돈 그릇은 2000원.


내 눈앞에 있는 고객으로부터

이 2000원을 받는데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

내가 건네는 이 도넛이

2000원의 가치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을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누군가 당신에게 지불하는 돈과 시간에

어울리는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