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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비 May 13. 2019

한국영화를 읽다_깊은 밤 갑자기(1981)

한국 가정공포극에 드리운 시선

선희는 외딴 양옥집에 사는 가정주부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어느 날 데려온 가정부 미옥과 남편의 관계를 의심하여 미옥을 죽이기에 이르죠. 이 영화는 한국적인 가정공포극의 특징을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홀로 고립된 여성이 공포스러운 미지의 존재로부터 위협을 당하는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이 존재는 억울하게 죽은 한과 무속신앙과의 연결고리까지 가지고 있는 다분히 한국적인 귀신입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선희를 믿을 수 없는 화자 Unreliable Narrator 내세워서 관객이 결말의 모호성을 더욱 극적으로 받아들일 여지에 처한다는 점입니다. 선희는 1. 실재하는 미옥의 귀신에게 빙의당한 것일 수도 있고 2. 죄의식 때문에 정신착란을 일으켜 미쳐버린 것일 수도 있죠. 작품의 모호성은 공포라는 장르를 더욱 견실하게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미옥과 선희의 관계에 대한 양상 역시 ‘가정의 수호자인 성녀' 대 ‘가정의 침입자인 악녀'라는 이분법적인 분석에서 벗어나 두 여성 간의 모종의 동일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합니다.



집은 어떻게 공포의 알레고리로 작용하는가


<깊은 밤 갑자기>에서 선희는 집안일의 일환으로 장을 보거나 가정의 위험에 대해 토로하고자 친구를 방문하는 등 집과 관련된 일로만 외출을 하고, 극히 단시간 안에 가정으로 회귀합니다. 가정주부의 역할은 가정을 지키고 앉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종의 메멘토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도시화된 서울을 중심으로 펼쳐진 신중산층 계급의 가부장제도에서 여성의 역할은 잃어버린 시대의 가부장제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가부장제도를 가정에 이식하는 일은 근대에 와서 남편이 일을 나간 사이 가정주부에 의하여 수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통 가부장제도를 복원하는데 실패한 가정은 본질적으로 모순을 애써 외면한 채 떠안고 있는 위태로운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 위태로운 모순이 공포라는 장르적 표현을 만날 때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프로이트적인 기이함 uncanny을 집 안에 불러들입니다.


이러한 가정의 기이함은 한국식 양옥이라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한 근본 부족한 신중산층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양옥집은 다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구조는 영화의 구조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데, 다층으로 된 양옥집은 가족 구성원 내의 권력이기도 하고 가족이 사회에서 지니는 중산계급으로서의 권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권력의 수직적 분리를 극대화하는 구조적 장치가 바로 계단입니다. 계단은 위와 아래를 연결해주는 동시에 계단 아래는 1층, 위는 2층이라는 물리적 분리를 상정하는 도구입니다. 물리적 분리는 물론 신분상승 욕구에 대한 알레고리로 작용합니다.


<깊은 밤 갑자기>의 2층 양옥집은 정보와 감정의 불균형을 의미하는데, 이 정보와 감정의 불균형은 이 영화에서 ‘불안증,’ ‘정신착란’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선희 주변을 떠돌며 영화의 주요 모티브인 의심을 구현합니다. 아내는 2층에 있는 동안 1층에 자고 있는 미옥과 관계를 가질 것을 불안해합니다. 불륜 행위에 대한 의심은 선희가 층계를 오르내릴 때에 흥미로운 방식으로 시각화되는데요. 층계를 내려오는 선희를 보여줄 때, 카메라는 그 위에 하나의 프레임을 더 씌웁니다. 서로 얼굴을 맞댄 채 흡사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는 뱀의 동상 가운데로 계단과 선희를 배치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선희가 가정부의 공간인 1층으로 입장할 때 그녀는 두 뱀에게 잡힌 쥐 마냥 치정에 대한 의심의 덫에 사로잡힌 희생물이 되는 거죠. 덫의 작동은 영화의 흐름을 따라 서서히 진행됩니다. 주의 깊은 관객은 미옥이 위에서 선희를 내려다보는 장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눈치챌 것입니다. 처음 집에 진입했을 때 옷 입은 선희 앞에 발가벗겨진 채 놓였던 미옥은 이제 그 발가벗은 섹슈얼리티를 무기 삼아, 짧은 옷을 입고 과시하며 베란다 위에서 시종일관 선희를 바라보고 웃습니다. 화분을 떨어뜨리는 등 실질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수직적 위협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KMDB, www.kmdb.or.kr


미옥이 점점 권력을 쌓아 올리면서 위층으로 이동한다면 그녀의 죽음은 하강의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미옥이 천장 다락방을 청소하다가 아래로 하강하는 장면은 신분상승의 실패를 드러냅니다. (적어도 선희가 생각하기에) 남편을 차지하려고 한없이 주부의 권력에 도전하던 가정부는 그 대가로 집의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으면서, 신분 상승 욕구의 발현과 좌절이라는 모티브를 구현합니다. 부가적으로 “요사이에는 아파트 계단에서 떨어져 실족사하는 사람이 많다는”형사의 지나가는 말은 도심 곳곳에서 이 알레고리가 재현되고 있다는 먼 암시로 들릴 여지도 있겠네요.



가정주부의 공포: 하녀의 죽음


주부의 지휘 아래 억압되어 있던 평범한 집과 계단이 공포가 귀환하는 공간으로 재구성되기 위해서는 촉매가 필요합니다. <깊은 밤 갑자기>에서 선희의 적은 일차적으로 외부자인 하녀를 상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공포 장르의 특성이 본격적으로 가미되면서 ‘무당의 딸’이라는 설정이 추가되고 이로 인해 이야기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이 설정이 미옥이라는 캐릭터에 모호성을 부여하기 때문이죠. 불길한 힘을 지닌 무당의 딸과, 부모 잃은 가여운 어린 여성이라는 미옥의 두 정체 사이에서 관객도 선희도 진짜가 무엇인지 짚어내기가 곤란해집니다. 선희는 자신의 적을 정확하게 규정할 수 없고 이로 인해 본인의 의심 자체가 선희에게 가장 위협적인 상대가 됩니다. 의심이라는 덫은 “모자라는 척하면서 살의를 품은” 미옥에 의해 파인 함정일 수도 있지만, 선희의 상상일 가능성도 영화는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KMDB, www.kmdb.or.kr


선희의 불안은 미옥으로 인해 발현하기는 하지만 미옥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의심의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잔류한 의심은 여귀의 형태로 선희에게 귀환합니다. 무당 분장을 한 선희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선희가 죽은 미옥의 원귀의 모습을 선희에게 덧씌우는데, 이때 원귀가 실재하는 외부적 위협이 선희에게 빙의한 것인지 정신을 놓은 선희가 취한 이상적 행동인지는 관객이 알 수 없죠. 선희가 느낀 불안은 정말로 미옥의 계략과 원한이었을 수도 있고, 온전히 선희의 신경증이었을 수도 있고, 그 중간 어디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깊은 밤 갑자기>에서 가정주부의 불안은 안과 밖 사이, 자아와 타자 사이를 모호하게 짚어냅니다.



가정주부의 진짜 공포: 남편의 시선


위협당하는 여성과 위협하는 여성이 서로 거울상이라는 점을 상정하면, 마지막으로 살펴볼 요소인 남편의 위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두 여성이 계단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동안 남성은, 남성의 욕망은 어디에 있나요. 여성들의 욕망은 아버지가 삭제된 가부장제도의 어둠 속에서 발현합니다. 이때 가정이 무대가 되면, 여성 인물은 가정의 수호와 존속이라는 가부장제도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식된 목표를 욕망합니다. 그리고 적수는 이 욕망을 방해하는 다른 여성이죠. 두 여성은 가부장제도를 둘러싼 남성의 양가적 관점의 재현입니다. 남성의 무의식은 모두 여성 인물에게 물려준 뒤 정작 남성 주체는 욕망이 거세된 인물이 되어 갈등관계에서 제외됩니다. 주부는 남성의 욕망을 대리욕망하는 기표입니다. 여귀는 아버지가 안주인에게 상속한 것의 나머지, 즉 잉여를 상속받은 기표죠. 여성의 무의식은 아버지의 욕망에 의해 분리되어 갈등합니다.


이렇게 안주인과 여귀라는 두 기표는 아버지의 욕망의 연장선상에서만 동작합니다. 두 기표의 갈등은 궁극적으로 작중에 부재하는 남성적 시선의 쾌락을 충족시키고자 설정됩니다. 향유는 말하는 주체에게 금지된 불가능한 욕망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거세된 아버지는 향유를 위해 기꺼이 말하기를 포기하고, 환상을 무대 삼아 여성에게 대신 말하게 하는 거죠.


“주체는 대타자의 결여 속에 환상 대상 a를 놓고 환상을 통해 거세를 견디고자 한다. 대타자의 결여는 한편으로 욕망의 원인이 되면서 동시에 대상이 되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환상 대상 a 다 … 무의식의 흐름은 그러므로 의미와 말보다는 환상을 통해 유지되며, 최종적인 출구는 거세, 즉 죽음이 된다. 그러므로 말하는 주체는 죽음 충동에 시달리며 그것으로 행하 게 되는데 사실상 향유는 말하는 주체에게 금지된 불가능한 욕망에 다름 아니다.” (김석 , 2007)


<깊은 밤 갑자기>에서 남편의 시선은 감시와 부재를 수행합니다. 그의 직업은 나비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입니다. 재단하고 관찰하는 자의 이미지가 이미 그의 직업에 상정되어있는 거죠. 남편의 서재에는 박제된 동물들이 가득한데 <깊은 밤 갑자기>에서 선희는 박제된 동물처럼 가정에 전시된 존재입니다. 작품 초반에 남편이 한 무리의 남성 학자들과 함께 슬라이드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선희는 벽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남성들의 시선을 공유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죠.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대상은 나비인데 이를 선희의 분신입니다. 남편은 나비를 유리판에 박제하듯 선희를 가부장제도 하에 박제하며, 심약해진 선희가 나비 환상을 보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남편과 가부장제도에 대한 비명으로 읽힐 여지도 있습니다.


정작 미옥과 선희의 갈등상황마다 남편의 시선은 배제됩니다. 남편과 미옥의 관계를 둘러싼 미옥의 행동과 선희의 의심이 있을 뿐 남편은 그의 말마따나 “미옥이 문제는 당신이 알아서 해”노선을 취할 뿐입니다. 결국 미옥의 귀신이 귀환하는 갈등의 표면화 순간에 남편은 집을 비우고 화면 밖으로 사라집니다. 이제 남편의 시선이 비운 자리를 관객의 시선이 채웁니다. 슬라이드 속 나비를 보는 남편의 모습이 스크린 속 아내를 보는 관객의 시선으로 확장되는 것만 같아요. 이제 남편=관객의 시선은 가정이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을 극도로 걱정하며 가정을 수호하려 살인까지 불사하는 무서운 모성의 분투와 추락을 관음합니다.




한국의 공포 영화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활발한 발달사를 거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부장제도의 억압이 과잉되고 남성의 시선이 은막 뒤로 사라질 때마다, 한국 공포영화 속 여귀는 언제나 월하의 그 오래된 공동묘지를 뚫고 나와 양옥집의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여주인이 이 층에서 홀연히 내려와 현관문을 열어줄 것이고. 마침내 두 여성이 마주 보면, 두 사람은 또다시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겠죠!




참고문헌


Hyun-suk, Seo. (2009) That Unobscure Object of Desire and Horror:: On Some Uncanny Things in Recent Korean Horror Films. In Horror to the Extreme: Changing Boundaries in Asian Cinema. : Hong Kong University Press.

김석. (2007) 에크리 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출판사.

깊은 밤 갑자기. KMDb.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3532/own/image#dataHashImageDetail0

박해천. (2011) 콘크리트 유토피아. 하이브리드 총서 02. 자음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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