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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비 Mar 18. 2019

한국영화를 읽다_마음의 고향(1949)

'A Hometown in Heart'

얼마 전 별세하신 故최은희 배우를 좋아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산 배우를 동경할 수 밖에요. 그 중에서도 이 작품, <마음의 고향>에서의 최배우는 특히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영화는 절에서 자란 소년 도성이 최배우가 연기하는 '서울아씨'를 동경하고 그녀를 따라 서울에 가고자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마치 <은하철도999>의 메텔처럼 외지에서 와서 나를 외지로 안내해 줄 신비로운 연상의 여인인 서울아씨의 역할이 최배우에게 잘 어울려서 더욱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나 봅니다.



공간과 성의 대칭성


영화 『마음의 고향』은 절과 서울이라는 명확하게 대비되는 공간을 상정합니다. 절은 불도의 공간이자 남성 집약적인 공간이죠. 이곳의 권력자인 주지승은 불교라는 종교 이데올로기로 도성을 비롯한 전체 무리에 영향을 끼치고, 그가 지배하는 절은 주지승이 가부장으로 군림하는 집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 집은 불완전한 집입니다. 박명진에 따르면 ‘집은 물리적 공간 이상으로 가족구성원들로 인해 형성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집이 가족을 구성하기도 하’는데 절은 스님들과 도성을 하나의 물리적 공간 아래 두는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도성은 그 안에서 기대되는 가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절은 종교수행을 위한 공간이라는 강한 목적성 아래 여성성을 배제한 ‘남성들의 집’입니다. 이곳의 남성들은 비록 실제로 아버지의 역할을 위해 길러지지는 않으나 불경을 익히고 불법을 준수하며 종교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종교적 가부장으로 길러지는 셈이죠. 그러나 아직 권력사회에 편입되지 않은 아이인 도성은 이데올로기가 삭제하고 있는 모성을 그리워합니다. 이때 도성이 상정하는 ‘여성들의 집’이 바로 서울입니다. 아씨가 온 곳이 서울이고, 도성이 어머니가 있는 곳이라고 여기는 공간도 서울이죠. 그리고 도성은 서울의 삶을 심부름을 하지 않고 대학 공부를 하는 자유롭고 문명화된 공간이자 모성의 공간으로 상정합니다. 도성에게 미지의 세계인 서울은 한 번도 체험해 본 적 없는 미지의 모성과 닿아 있는 것입니다.



소년의 욕망과 자아 찾기


KMDB, kmdb.or.kr


모성에 대한 욕구는 사랑에 대한 욕구일 뿐 아니라 자아 찾기의 욕구입니다. 도성에게는 성姓이 없습니다. 성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의 가족공동체에 속한다는 의미이고 문명세계의 일원이라는 의미인데, 문명을 벗어나 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성은 없고 법명만 존재합니다. 도성에게 성이 없다는 점은 도성이 정체성의 뿌리를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존재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서울아씨는 어떤가요. 그녀는 안씨 가문 사람으로 도성이 미망인의 수양아들로 들어간다면 서울이라는 문명 공간에서 안씨 가족공동체에 소속될 가능성이 열립니다. 이 점에서 서울아씨는 도성이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KMDB, kmdb.or.kr


도성이 그리워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어머니지만, 본원적인 불만족은 불교로 상징되는 아버지적 권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동네 아이들과 놀 수 없고, 사냥을 할 수도 없고, 어머니를 만나러 갈 수도 없는 세계에서 도성은 벗어나고자 하며 그렇기 때문에 도성이 스님을 향해 ‘불경만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도성이 욕망하는 것은 단지 어머니의 품만이 아니라 여성성에 대한 에로스적 호기심, 자신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욕구, 미지의 세계에 관한 욕망까지의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어머니’는 도성의 여정에 붙이는 큰 제목 같은 것이죠.



불교와 죄, 그리고 개인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이는 부모가 욕망하는 것을 따라서 욕망하는 모방 과정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인식하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도성은 어머니가 욕망하는 것이라고 추정되는 물건-부채-을 얻기 위해 불교에서 금기시하는 살생을 저지르는데, 이는 주체적인 욕망의 세계에 진입하고자 어머니의 욕망을 거쳐 아버지의 권력에 대항하는 모티브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 대항은 얼핏 실패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머니를 위해 산짐승을 죽여 불당에 숨겨놓은 것 때문에 주지승이 서울에 가도 좋다는 허락을 철회하기 때문입니다. 업業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불교의 이데올로기가 다시 한 번 도성을 억류합니다. 그러나 도성은 결국 주지승의 말을 거역하고 스스로 산을 떠납니다. 도성은 불교와 절로 상징되는 부성의 억압을 거부하고 정체성을 찾아 아버지의 산을 내려가는 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KMDB, kmdb.or.kr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A Hometown in Heart> 입니다. 영화는 산을 내려가는 도성을 비추며 끝나는데 도성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서울에 당도는 하는 것인지 관객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어쩌면 소년이 찾는 고향은 물리적인 서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있는 곳도, 태어난 곳도, 친어머니가 있는 곳도 아닌 마음에 그리는 고향, 'A hometown in heart'야말로 소년의 목적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소년의 여정은 마음 속에 그리는 것을 찾아 끊임없이 번뇌하고 걸어나가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문헌

마음의 고향.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211

박명진. (2003). 한국영화와 가족 담론-1960년대와 2000년대를 중심으로-. 우리문학연구, 16, 11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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