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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May 15. 2023

어버이날 오마카세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두 딸은 매번 낙방과 도전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런 딸들에게 바라는 것이라면 오직 취업에 성공하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그걸 또 내색하기도 쉽지 않다. 3차 면접까지 가기를 몇 번. 탈탈 털리는 멘털을 나름 부여잡고 버티는 아이들에게 학교 다닐 때처럼 어버이날 챙겨주지 않느냐고 귀여운 투정을 부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부부는 올해도 어버이날을 맞아 시댁에 농사일을 돕고 오는 것으로 기념하고 친정집은 식사를 하는 것으로 기념을 했다. 어버이날이 하필 일손이 바쁜 시기이다 보니 어쩌겠는가. 고추모종 2,200개 심고 집에서 만들어간 반찬으로 식사를 차려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나라고 한가한 사람인가. 퇴근하고 마트에 들러 금방 할 수 있는 채소 몇 가지와 고기를 사서 출발하기 전까지 두세 시간 만에 국과 반찬을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엔 북엇국과 콩나물무침과,호박볶음, 멸치볶음, 제육볶음이었다. 기름진 음식보다는 데쳐내서 무치는 나물종류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식성에 맞추다 보니 간단하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반찬 위주였다. 다행히 어머니는 좋아하셨고 맛있게 이틀 동안 다섯 끼를 해결하고 왔다. 

급하게 만들다 보니 인증샷이 없다. 이 반찬은 그 전에 했던 나물 반찬


시골을 다녀온 후 몇명 안 되는 친정식구들과는 준비된 요리로 집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용돈을 드리는 것으로 기념일을 마감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한달에 한 번씩 시골의 농사일을 도우러 가는 우리 부부는 기념일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지만 이런 날 또 안 가면 몇 가구 살지 않은 시골 동네에서의 뒷말은 견디기 어렵다. 물론 시어머니께서는 너희들만 잘 살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지만. 


어쨌든 기념일을 무사히 마치고 정작 어버이날이 되어서는 내가 어버이라는 생각도 못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다. 딸들이 어릴 때는 스케치북에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말을 적어서 동영상을 만들어 감동을 주기도 했다. 용돈을 모아서 커플 티를 사준 적도 있고 꽤 그럴 싸한 음식을 만들어 선물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치열한 경쟁에 지쳤는지 한 번 건너뛰고 두 번 건너뛰더니 이제 몇 해를 건너뛴다.

그런 것을 챙겨 주지 않는다고 투정할 성격도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서 내가 챙겨야 할 부모님만 신경 썼다.  양쪽 어른들 챙기고 가까이 사시는 고모님까지 챙기고 나면 그나마 얇은 지갑은 더 홀쭉해진다. 나는 어버이날을 챙기려는 마음만 있었지 내가 어버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받으려고 한 적도 없다.


올해도 어버이날이 다가왔고 시댁과 친정의 어머님들을 의무감과 약간의 효를 더한 날이 지나고 나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퇴근하고 보니 두 딸의 머리가 싱크대에 닿을 정도로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완성되기 전까지 편하게 쉬라며 등 떠밀어 안방으로 보내는 딸아이들에게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딘가에서 술을 한잔하고 있는 중이었다. 딸들의 상황을 얘기하니 자리를 접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힘들게 만든 꽃같이 이쁘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옛 추억에 젖어본다. 


완성된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야채쌈과 고기쌈이었다. 손끝이 야무진 큰딸이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소고기를 사고 작업을 진두지휘 하며 제 동생과 함께 만든 합작품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다행히 쏟아지진 않았다. 소스에 찍어 한 입 먹어보니 세상에 없던 맛이 혀끝을 감돌았다. 리액션에 약한 내가 사진을 찍어 프로필 사진에 올려놓고 고맙고 사랑한다라고 해놓았다. 엄마는 말로 하면 될 것을 왜 사진을 올리냐고 한다. 


왜겠냐? 자랑하고 싶어서지!!! 

내가 의무감과 약간의 효심을 더한 어버이날 행사를 우리 부모님들도 이렇게 생각하시겠지. 


우린 항상 결과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일희일비하는 우를 범한다. 지난한 이 시간들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있는 내 딸들에게 한 없는 사랑을 느낀다. 몇 십만원 하는 오마카세보다 정성이 듬뿍 담긴 이 요리가 내겐 귀하고 값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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