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dness War'의 흥망성쇠와 스트리밍 시대의 새로운 표준
Sound Essay No.44
스트리밍 앱에서 플레이리스트를 듣다 보면, 종종 당황스러운 순간을 마주합니다. 70~80년대의 명곡을 듣다가 볼륨을 적당히 맞춰놓았는데, 다음 곡으로 최신 아이돌의 댄스곡이나 힙합 음악이 나오는 순간, 귀가 찢어질 듯한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볼륨을 줄이게 되는 경험 말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단순히 녹음 기술이 좋아져서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지난 30여 년간 음악 산업 전체가 참전했던 보이지 않는 전쟁, 바로 '라우드니스 워(Loudness War, 음압 전쟁)'의 결과물입니다.
"남들보다 더 크게, 더 자극적으로!"
모든 아티스트와 음반사가 이 구호 아래 소리의 볼륨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는 경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의 끝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이 글은 현대 음악 사운드의 변천사를 통해, '큰 소리'가 과연 '좋은 소리'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전쟁의 원인은 인간의 청각 심리에 숨어있습니다. 음향 심리학에는 '더 큰 소리가 더 좋게 들린다(Louder is Better)'는 오래된 명제가 있습니다. 동일한 음악이라도 볼륨을 살짝 높여서 들려주면, 사람들은 그 소리가 더 풍성하고, 더 힘이 있으며, 더 고음질이라고 착각합니다.
라디오 시대의 경쟁: 시작은 라디오였습니다. 라디오 채널을 돌리던 청취자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 방송국과 음반사는 다른 곡보다 자신의 곡이 조금이라도 더 튀어나오게(Pop-out)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CD와 디지털의 도래: CD라는 디지털 매체가 등장하면서 이 욕망은 고삐가 풀렸습니다. 아날로그 매체(LP, 테이프)와 달리 물리적 한계가 거의 없는 디지털 환경에서, 엔지니어들은 '리미터(Limiter)'와 '컴프레서(Compressor)'라는 무기를 사용해 소리의 파형을 꽉꽉 눌러 담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재생 장치의 볼륨을 건드리지 않아도, 내 음악이 경쟁자의 음악보다 압도적으로 크게 들리게 하는 것. 이것이 '라우드니스 워'의 본질입니다.
소리를 무작정 키우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디지털 그릇의 크기(0dBFS)는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의 가장 큰 부분(피크)이 천장에 닿아 더 이상 커질 수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작은 소리를 억지로 키워서 큰 소리와의 격차를 없애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이 바로 '다이내믹 레인지(Dynamic Range)'입니다. 다이내믹 레인지란 '가장 작은 소리'와 '가장 큰 소리' 사이의 격차, 즉 소리의 '낙차'를 의미합니다.
위의 파형 이미지를 비교해 볼까요?
과거의 음악 (상단): 파형이 뾰족뾰족하고 여백이 많습니다. 작은 소리는 작게, 큰 소리는 크게 표현되어 소리의 '숨 쉴 공간'과 리듬감이 살아있습니다.
현대의 음악 (하단): 파형이 마치 '벽돌(Brickwall)'처럼 꽉 차 있습니다. 작은 소리도 크고, 큰 소리도 큽니다. 모든 순간이 클라이맥스처럼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아래는 마돈나의 "Papa Don't Preach" 라는 곡의 시기별 리마스터링 파형을 비교해 놓은 사진입니다. 앨범이 발매된 1986년도 마스터링의 파형과 2009년도 리마스터링 파형을 비교해보시면 이해가 더 쉽게 되실꺼예요.
무엇을 잃었는가?
다이내믹 레인지가 사라진 음악은 '강약 조절'이 없는 연설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함만 지르는 음악을 들으면, 청취자의 귀는 금방 지치고 피로해집니다(Listening Fatigue). 드럼의 타격감(Punch)은 뭉개지고, 보컬의 섬세한 숨소리는 굉음에 묻힙니다. 소리는 커졌지만, 음악이 가진 감정의 깊이와 입체감은 납작하게 짓눌려버린 것입니다. 메탈리카의 앨범 <Death Magnetic>(2008)은 이 전쟁의 정점을 찍은 앨범으로, 심한 사운드 깨짐 현상 때문에 팬들이 오히려 '기타 히어로' 게임 버전의 음원(덜 압축된 버전)을 찾아 듣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이 소모적인 전쟁에 제동을 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의 발전, 바로 '스트리밍 서비스'였습니다.
유튜브,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같은 플랫폼들은 들쭉날쭉한 음원들의 볼륨을 일정하게 맞추는 '라우드니스 노멀라이제이션(Loudness Normalization)'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기준치(예: -14 LUFS)보다 큰 소리는 강제로 줄이고, 작은 소리는 키워서 모든 곡이 비슷한 레벨로 들리게 만드는 기능입니다.
이 시스템 하에서는, 무작정 소리를 키우는 것이 더 이상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이내믹 레인지를 희생해가며 꽉꽉 눌러 담은 '벽돌 파형'의 음악은, 플랫폼에 의해 강제로 볼륨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더 힘없고 밋밋하게 들리게 됩니다. 반면, 적절한 다이내믹 레인지를 가진 음악은 볼륨이 보정되더라도 특유의 펀치감과 공간감이 살아있어 훨씬 더 좋게 들립니다.
시스템이 '큰 소리'에 페널티를 주기 시작하자, 엔지니어들은 비로소 무의미한 볼륨 경쟁을 멈추고 다시 '음질'과 '다이내믹스'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라우드니스 워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모든 것이 강조되면, 아무것도 강조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크기만 한 소리는 소음일 뿐입니다.
음악의 감동은 '큰 소리' 그 자체가 아니라, 작았던 소리가 커질 때 느껴지는 그 '변화'와 '낙차'에서 옵니다. 폭발적인 후렴구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 앞의 잔잔한 도입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여백'과 '숨결'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사운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은 더 이상 미터기의 숫자를 높이는 데 목숨 걸지 않습니다. 대신, 소리와 소리 사이의 침묵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작은 소리의 섬세함을 어떻게 살릴지를 고민합니다. 진정한 박력은 무작정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깊은 침묵을 뚫고 나오는 단 한 번의 울림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소리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배웠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