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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Jun 05. 2023

나의 동력이 되어주는 아이의 말

퇴사 그 이후

하늘색이 끝없이 수놓아져 있는 도화지 위로 중간중간 하얀 솜뭉치처럼 구름이 떠 있는 하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따스한 햇살과 일교차로 인해 불어오는 선선한 아침 바람. 이런 날씨가 일 년 중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부디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는 바람이다.


많이 컸는데도 아직도 작디작은 아이의 손이 내 손을 꼭 붙잡고 걷는 유치원 등원길, 길지 않은 거리지만 함께 하는 그 시간에 감사하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에 피어난 웃음을 보고 있으면 그런 아이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칠세라 늘 분주해진다. 버스가 떠날 때까지 유리창을 통해 우린 서로 끝까지 손을 흔들고 하트를 보낸다. 아이는 늘 내가 하는 손짓을 똑같이 따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등원은 남편 담당이었다. 출근 시간이 빨랐고 유연근무를 신청한다고 해도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출근해서는 늘 남편에게 '오늘도 잘 갔지?'라며 아이가 등원을 잘했는지 여부를 물으며 아이보다 먼저 나오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곤 했다. 긴 고민 끝에 퇴사를 했고, 아이와 같이 발맞추어 걷는 등원길 덕분에 하루의 시작이 행복하고 편안하다. 퇴사를 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곧 다른 글에서 이야기할 예정이다.



어느 날 아침, 아이가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엄마랑 함께 가서 좋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엄마가 아침에 버스까지 데려다주고 또 데리러 올 수 있는 거야?"

"응, 이제 엄마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으니까, 엄마는 다른 일을 해보려고 해."

"아, 엄마가 하고 싶다던 그 일?"

"응, 맞아. 엄마가 지난번에 이야기한 거 기억하는구나?"


예전에 한번 아이와 침대에 누워서 잠들기 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에게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5살 아이에게 당연히 진지하게 한 얘기는 아니고 그저 푸념처럼 지나가는 말로, 아이는 이 말에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고 그저 듣고 '아, 그렇구나.'하고 말 것을 알기에 살포시 내비친 속마음이었다. 실제로도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흘러갔기에 아이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을 줄을 몰랐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웃고 기분이 좋지 않은지 나보다도 더 잘 알지도 모른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엄마랑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을 가장 좋아하겠지만 아이는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는 사실에도 기뻐 보였다. 해맑게 밝은 아이의 표정을 보는 내 마음도 괜스레 찡해졌고 '정말로 하고 싶은 그 일을 꼭 해내리라!' 결의에 찬 다짐을 하기도 했다.



아이의 말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따끔하게 반성하게 하기도 한다. 며칠 전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나랑 노는 게 회사 가는 것보다 훨씬 좋을걸?"

아이 옆에 엎드려서 아이가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깨기를 기다리던 나는 예상치 못한 이 말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응, 엄마 희망이랑 같이 노는 게 당연히 더 좋지!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한 거야?"

"아니, 엄마가 나랑 노는 게 힘든 거 같아서. 엄마가 자주 '이제 쉬자. 이제 쉬는 시간.' 이렇게 말하잖아."


아뿔싸. 아이는 낮잠이건 밤잠이건 자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어떨 때는 자자고 하면 슬프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낮잠 자기 전에는 꼭 "나 안 자고 쉴 거야!"라고 말하고 누워서 뒹굴뒹굴하다가 곧 잠들곤 한다. 아이가 '자자, 잘 시간'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엄마 아빠도 '그럼 쉬자, 우리 조금 쉬었다가 다시 또 놀자. 자는 거 아니고 잠깐 쉬는 거야.'라고 말하는 게 너무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 말을 주말마다 듣다 보니 엄마가 힘들어서 그런가?라고 생각을 했나 보다.


"아, 희망이가 그런 생각이 들었구나.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엄마는 희망이랑 노는 거 힘들어서 쉬자고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희망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엄마한테는 정말 소중해. 쉬자는 건 희망이도 즐겁고 신나게 놀다 보면 잠깐 기운 없어질 때 있잖아? 그래서 엄마랑 같이 뒹굴뒹굴하면서 에너지 충전하고 다시 놀자는 거야."라고 말해주며 아이의 속상함을 달랬다. 단어 선택, 표정, 말투.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겠다고 반성한 날이었다. 퇴사 후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포부는 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하고 엄마가 하고 싶은 일로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것임을 잊지 말자. 엄마의 행복이 아이에게도 전해져서 아이가 행복하고 즐겁게 자신의 인생을 그려나가길 바라는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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