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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Jul 17. 2022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나는 늘 무엇이 되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늘 학교에 한 학기에 한 번씩은 적어냈던 장래희망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명사화된 직업을 쓰는 공간이었다. 이상할 것도 없이 너무나도 당연히 '무엇'이 될까를 생각하며 알고 있는 직업군에 한 아이의 꿈을 껴맞춰 나갔다. 의사, 선생님, 변호사, 대통령, 과학자 등등 다양한 직업을 적어냈고 결국 꿈이란 광활하고 넓은 세계를 흔히 그 당시 또래들이 알고 있는 몇 개의 한정적인 직업으로 명사화된 틀에 가둬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혹시 나의 적성이 내가 알지 못하는 직업과 잘 맞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요즘은 유튜버가 꿈인 아이들 많다고 한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벌써 옛날이 되었고, 이렇게 온라인 세상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1인 기업, 무자본 창업이 많아질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의 아이들이 컸을 때 또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하게 예측하고 잘 대응하기 위한 방법들을 선구적으로 모색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니 '무엇'이 되겠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전에 '한 끼 줍'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경규와 강호동, 이효리가 길거리를 지나가던 와중에 초등학생 아이 한 명과 담소를 나 에피소드가 있었다. 호동은 이에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거냐?"라고 물었고 이에 이경규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하고 말하자 이효리는 "뭘 훌륭한 사람이 돼. (하고 싶은 대로) 아무나 돼."라고 얘기해주었다. 그 당시 역시 이효리답게 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 꼭 사회에서 바라보는, 남들이 기준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이루어나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겠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꿈=명사'의 공식에서 탈피하진 못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로 여전히 고민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이 사고의 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꽤 최근의 일이다. 은영 박사님의 금쪽 상담소에 박찬민 전 아나운서와 그의 딸 박민하 양이 출연했었는데 민하 양은 최초 배우 출신 올림픽 출전 선수가 되고 싶고 유명한 작가가 되어 자신이 쓴 책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출연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패널들도 나도 '어린 나이에 저렇게 구체적인 꿈을 갖고 목표를 이루어나가려고 노력하다니 대단하네.'라는 반응이었다.


그 뒤의 오은영 박사님의 조언이 이어지기 전까지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타이틀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한
비중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 한 문장을 듣는데, 그동안 얼마나 '타이틀'(명사)에 집착하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동사)를 간과하고 무심히 여겼는지를 느꼈다.




초등학생 때는 나의 명사는 의사였고 중학생 때는 선생님,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는 아나운서였다. 김주하 아나운서와 백지 아나운서를 보면 저렇게 멋진 뉴스 앵커가 되고 싶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가 있으니 난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겼다. 이루려고 노력만 하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교 전공도 관련학과로 택하고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일찌감치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도 하고 한국어 능력시험 준비도 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했다. 아니 그렇다고 착각했다. 그 당시의 난, 돌이켜보면 아나운서가 되고자 하는 이유나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지, 그와 더불어 어떤 사람으로서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외부의 이야기에 쉽게 흔들렸고 기어코 '내가 이것을 진짜로 원하고 있는 것인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같이 준비를 하던 친구와 언니, 오빠들에 비해 나의 열정과 의지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스스로 이 부분을 인정하게 되면서 고등학생 때부터 꿈꿔왔던 길을 포기했다.


그때의 나는 이미 대학 졸업반이었기에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깊게 생각해볼 겨를 없이 괜찮아 보이는 회사, 모집 분야 중에 전공 무관이거나 전공과 그나마 관련이 있어 보이는 직군으로 이곳저곳 지원서를 냈다. 길게만 느껴졌던 취준생의 과정을 겪고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며 대학교라는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 속으로 첫 발을 내디뎠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떠한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 나만의 지도를 그려보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정해놓은 선택지 안에서 내 선택이라 착각하고 골라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뒤로 네 번의 다른 산업군의 회사를 일하게 될 거라곤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직장을 옮기고 적응하면서 종종 '나는 왜 그냥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일을 찾으려는 걸까?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그럭저럭 잘 다니는 것 같은데.. '하며 고민하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지금이 20대라면 좋겠고 10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기에 좋은 시기일 테지만 30대 중반의 지금,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통해 어떻게 하고 싶은지 동사에 주목하는 지도를 그려가는 중이다.


그리고 믿는다. 지금 찍고 있는 수많은 점들이 조금씩 이어져 선이 되고 면이 되어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조금씩 넓혀주고 다채롭게 빛내줄 것이라는 것을. 지나온 시간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그 안에서 어떻게 성장했고 무엇을 배웠는지 기록하면서 현재의 나를 만든 과거와 만나고 앞으로의 나를 그려보고자 한다.


 번 회사를 옮기면서 직장생활에서 경험했던 일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취업을 준비 중인 분들이나 입사를 앞둔 분들, 그리고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이 글이 자그마한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란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있을 때 우리의 걸음걸음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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