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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기버기 Feb 20. 2019

청년 퇴사 문제의 본질


 2018년 청년 실업률은 9.5%로 나왔다. 다들 취직을 못해서 안달이다. 하지만 정작 취직을 한 학생들은 얼마 못 가서 퇴사를 한다. 보통 대학생들이 구직활동을 마음먹고 취직하기까지 평균 13개월이 걸린다. 하지만 첫 직장을 다니는 기간이 18개월이다. (평균의 오류를 감안해야 한다.) 1년도 못 채우고 퇴사하는 비율은 27.7%가 나온다고 한다.


<퇴사 학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강연 프로그램이 히트를 친다. 일본에서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영화도 나오는 걸 보면 한국과 일본에서 청년 퇴사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임을 실감할 수 있다.

영화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중


이렇게 된 요인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1. 기업들의 보수적 요인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실용주의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 같은 경우 메이지 유신 때부터 어떻게든 서방사회를 따라잡기 위해 실용주의적인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때문에 개개인의 생각과 인문학적 소향보다는 상당히 수직적인 교육체계를 통해 빠른 지식의 주입에 집중했다. 그것은 기업문화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인문학과 사상이 점점 중요시되고 있는 현대에는 그런 수직적인 조직체계에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과거의 잔재와 함께 발전해온 기업문화, 즉 잦은 회식, 상명하복, 가족 같은 기업문화를 표방한 사생활 침해와 인권 모욕, 포괄임금제를 이용한 야근, 회의를 위한 무의미한 회의, 젊은이들의 아이디어 무시 등이 해당된다. .


2. 부모들의 과잉보호와 새로운 세대의 특징


존 트웰지의 <I 세대>라는 책을 보면 날 때부터 인터넷에 노출된 'I 세대(1995년생~ 2012년생)'들은 과거의 세대들보다 느리게 성장한다고 말한다. 부모들은 10살이 넘은 아이를 10분 거리의 공원에 혼자 보내지 않고 20살이 되어도 차로 데려다주기도 데리러 가기도 한다. 이는 과거 아이들끼리 놀게 방치했다가 저녁시간이 되면 돌아오는 풍경과는 괴리감이 아주 크다. 그리고 부모들은 내 아이가 화이트칼라의 직종을 얻기를 원한다. 부모들은 10대 혹은 대학 재학 중에 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아이들은 너도나도 '좋은 직장'의 문을 두드린다. 취업의 문턱은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상대적으로 블루칼라의 직종은 인재난을 겪는다. 그렇게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처음 해보는 노동은 낯설고 힘들다. 직장 내 질서나 윤리, 시스템을 난생처음 접해보기 때문에 더욱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를 하게 되는 걸지 모른다.


3. 청년들의 진보적 요인


요즘은 욜로 라이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카르페디엠이란 단어들이 화재다. 이것들은 청년들의 심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와 달리 기업들은 청년들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제로에 가까운 이자율 때문에 저축을 해도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렵다. 이런 '미래의 불확실성은 청년들을 지금 이 순간만을 즐기게 만들었다.' 폭언과 모욕을 받거나 부당하다고 느끼면 퇴사를 하고 다른 회사를 알아보면 된다. 더 이상 돈 몇 푼보다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직장을 찾아다닌다. 어차피 여기서나 다른 곳에서나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과 직장만을 오가는 일상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고 여행과 꿈을 좇는 이들을 우상화시킨다. 잠정적 퇴사를 하거나 장기 휴직을 하고 여행을 다녀온다거나 꿈을 좇는 모험을 하기도 한다.  사실 꿈과 직장이 꼭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퇴사를 한 이들은 정신적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자영업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 결과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 4위. 소비 주체는 없어지는데 소매상만 늘어난 꼴이다.



대기업과 공기업들은 직원을 매뉴얼이라는 기계의 부품처럼 생각한다. 이것은 창조적인 인재를 원하면서 창조적인 생각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이다. 자신의 아이디어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아주 하찮은 업무를 반복하며 개인적인 시간은 사라진다면 위 영화의 대사처럼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극단적인 미래의 불확실성은 공무원 시험의 대란을 불러왔다. 어차피 기계의 부품이 된다면 내 시간과 미래가 보장되는 공무원이 최고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의 지위는 상당히 고평가되어 있다.






사실 지금의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일을 관두고 싶은 것의 본질은 내가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어릴 적 배웠던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를 보자. 청년들이라면 1, 2단계인 안전과 생리의 욕구는 현대 대한민국에서 제법 충족이 되고 있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3단계의 소속감과 안정을 위해서 취업을 하지만 4, 5단계는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에 퇴사의 본질을 두고 싶다. 내가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되려면 어떻게 돼야 할까. 현상적으로 돈을 많이 주면 된다. 내가 노동시간 대비 임금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받는다면 꽤 만족을 할 것이다. 여기서 상대적 박탈감은 인간이 극복할 수 있는 본성이라고 생각하지만 힘들다. 대중적임을 다루는 사회학에서는 '다른 사람 보다'라는 말이 빠질 수 없다. 하지만 돈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과 책임감, 꿈과 희망을 느낀다면 적은 연봉으로도 제법 만족스러운 상태로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을 관두고 적은 연봉을 받더라도 스타트업 기업으로 몰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철학자는 '노동은 인간의 본성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자아실현이 인간의 본성이다'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같이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는 사기업이라면 사원 개개인의 인격과 의견을 존중해주어야 마땅하다. 동양이 서양에게 밀렸던 것은 기술적인 지식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발생시킨 것은 지식의 소통과 변증법에 의해서 생겨났다. 기업은 직원들의 자아실현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원들의 경력과 표면적인 성과에 관계없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공과 사는 확실하되 기업이 그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라.


>>계층간의 소통과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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