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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기버기 Aug 08. 2019

사회가 빚어낸 인간, 그들의 감정 표현법

부모에게 태어나 사회가 만들어내는 인간들은 어떤 식으로 감정을 말하라고 강요받아 왔을까? 상담심리학을 기초로 말해보고자 한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기초로 말하자면 우리가 어릴 적 느꼈던 상실감이나 분노, 절망 등 강력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커서도 그대로 고착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성격 형성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그런 성격과 개개의 상처를 치료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이를 발전 가능성과 자기 효능감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와 감정을 어떻게 명료화시키고 표현시킬지에 대해서 상담자가 거의 모든 노력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서구에서 들어온 상담심리학과 한국사회의 정서는 맞지 않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해결책은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감정의 표출, 슬프면 울고 화나면 분노하고, 미안하면 사과하고 이런 당연해 보이고 단순한 행위를 역사적으로 규범적으로 한국사회에서는 철저히 억제하고 통제되어 왔다.(물론 미국이나 다른 나라도 다른 방향으로 이런 일은 있어왔다.)


나는 남성이지만 페미니즘을 인정한다. 그들의 바이블처럼 여겨지는 '제2의 성'의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자아이는 직간접적으로 여성성을 강요받는다. 그들의 감정표출의 수단은 여성의 순종이라는 외압 속에서 분노보다는 슬픔과 눈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얘기는 남성 역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자아이는 남자다움을 강요받고 울고 웃는 자연스러운 감정조차 억제받아 왔기에 그런 감정들의 표출 수단으로 분노를 선택하게 된다. 분노는 남자들의 특징이라 생각하는 사회 때문에.

그래서 아버지 세대의 많은 남성들은 화를 내는 것이 획일화되어있다.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정말 화를 낸다기보다는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들이 얽혀있는데, 미안할 때도, 부끄러울 때도, 어색해도, 자기가 잘 못해도 화를 낸다. 불쌍하게도 그들은 자기 안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들은 늙어가고 죽었다. 다시 말하지만 감정들은 고착된다. 그것을 직시해서 명료화시킨 뒤 흘려보내야만 한다.


이런 고리타분한 사회적 통념이 역사적으로 오래 지속되다 보니 주체적인 여성은 비난받았고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그런 고착된 통념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반면 지금 주위의 남성들을 보면 '여성은 보호해야 할 존재고 나는 책임감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나가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여성과 연애를 하는 것을 힘들어하기도 한다. 스스로 세운 '여성을 보호해야 하는 남성'의 기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해서 '사랑하지만 헤어지자'같은 드라마를 찍기도 한다.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꽤 최근까지 '남자는 울면 안 돼, 우는 건 창피한 일이야'라고 생각해서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을 참고 몰래 훔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내려놓고 감정표현에 자유롭게 펑펑 울어보니 더욱 공감대를 형성하며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감정들도 활성화되어 간다고 느껴졌다. 프로이트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아들러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하지, 옳고 그름은 무의미하다. 감정을 직시하고 표출해내는 것. 그것만으로 인간은 정화(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단순하다고 생각이 들 만큼 감정 표현에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만큼 빛나고 매력적인 모습 뒤에는 더욱 건강한 정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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