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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점순이는 알게 되었을까?

마음을 표현하는 법, 마음을 느끼는 법

by 레몬트리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쪼이었다” 김유정 소설 <동백꽃>의 첫 문장.

아기새(딸)가 다니는 국어학원은 소위 족집게 시험대비 학원이라기보다는 수능이나 시험에 나오는 시나 소설을 최대한 다 읽고 이해해 가면서 문해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 곳이라, 교과서에 나오는 당대의 유명한 소설을 반강제로 완독을 하고 감상을 정리해야 하는데, 아기새는 동백꽃의 점순이가 주인공 '나'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 게 맘에 들지 않는 눈치다. 점순이가 다른 방식으로 좋아하는 표현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이야기를 했다.

점순이와 나의 감정, 사회적 위치의 차이, 연애의 밀당, 주도권 등이 수탉의 싸움으로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지만, 언제나 지고 마는 분한 '나'의 마음, 딸아이는 본인이 주인공이라도 된 듯 분해 죽겠다는 반응이다.

그럼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처럼 지고지순하게? 했더니 또 그건 답답해서 싫다는 반응 ㅋㅋ

트와이스의 "YES or YES"를 신나게 부르고, 가볍게 시작하고 또 가볍게 끝나기도 하는 요즘시대, 요즘 아이인 아기새에겐 소나기의 소년처럼 제대로 표현 한번 못한 지고지순한 사랑도, 점순이의 과격한 괴롭히며 관심 끌기 방법도 이해가 되질 않겠지.


동백꽃.jpg


하지만 아기새를 포함한 요즘의 아이들은 받는 사랑에 익숙하게 자라왔고,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나의 그 시절보다 인간관계에서 혹은 이성관계에서 훨씬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 같기도 하다.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직접 눌러쓴 편지를 주고받으며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하던 옛 시절에 비해, 요즘은 카톡이나 인스타 DM으로 형용사나 부사 따위는 볼 수 없는 단답형으로 대화를 하고,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대신하는 시대가 돼버렸다.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섣불리 오해하거나 경솔하게 판단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학원 같은 반 친구 녀석이 몇 달 전부터 아기새에게 밤마다 "자니?"를 시전 하며 요즘말로 플러팅, 썸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아기새와 관계가 서먹해지고 멀어져 버리고 말았다.

처음엔 무시하기 미안해서 아기새가 몇 번 대화에 응했는데 이후로 야구 보러 같이 가자던지, 시험공부할 때 굳이 먼 동네 사는데 아기새 다니는 스카로 오겠다던지, 인스타에 의미심장한 글귀를 남긴다던지 하며 아기새에게 관심을 표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녀석이 직접적으로 고백을 하진 않았으니 아기새도 설레발치며 거절을 하는 건 머쓱했는지 몇 달을 아예 무시하지도 못하고 신경은 쓰이지만 부담스러워 점점 대답을 줄이고, 침묵을 늘려가며 나름의 거절 의사를 표했던 것 같다.

며칠 전 궁금해서 "OO이랑은 요즘 어떻게 지내냐" 물어보니,

아기새가 아주 난처한 표정과 목소리로 "아 몰라. 불편해 죽겠어. 이제 눈치를 챘는지 갑자기 어느 날부터 눈도 안 마주치고, 화난 애처럼 굴더라고..." 잘못한 게 없는데 사이가 불편해진 게 억울하다는 아기새.

"네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니 서운하고, 심술 도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났을 거야. 그건 너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 친구의 마음도 이해는 해줘.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데 억지로 사귈 수는 없는 거니, 그냥 너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똑같이 대해주고. 행여나 다른 친구들한테 이런 이야기 떠들지 말고~ 이런 이야기는 둘만 간직하는 거야. 너를 위해서도 그 친구를 위해서도... 알겠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아이나 어른이나, 옛날이나 요즘이나 사랑이란 감정 앞에선 중간이 없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 간직하다, 버리다 / 기억하다, 잊히다...

온도의 차이와 무게의 차이, 기울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감정은 늘 저 끝과 이 끝 사이에서 어느 한편으로 기울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랑한다, 좋아한다의 반대편으로 기울면 필연적으로 반대편이 품고 있는 서운하고, 괴롭고, 아프고, 화나는 감정과도 대면해야만 한다.

하지만 반드시 대면하고 극복해야 하는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가진 무게이자 숙명.

그러니 내가 너를 좋아하고, 네가 나를 좋아해 주길 원했지만, 그러지 못한 그 친구도

그동안의 감정을 접고 돌아서서 반대편을 향해 가는 길에

깡통이나 돌멩이라도 발로 차고 싶게 서운하고 심술이 났겠지.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는 방식은 다양하다.

특히 아이를 키워보니 그전엔 몰랐던 상대의 관심을 끄는 방법,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걸 배우게 된다.

어떤 날은 배가 아파, 열나는 것 같아 꾀병 또는 엄살을 피우며 엄마의 관심을 구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엄마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가며 신경을 살살 긁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엄마 사랑해?" 하면 "아니!!"라며 안 그런 척, 아닌척하며 애간장을 녹이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은 현관문 소리에도 와다닥, 달려와 품에 안기기도 한다.

마음 아프거나, 신경 쓰이거나, 애태우거나, 벅차오르거나

이 모든 것이 엄마의 관심을 끌고,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임을 알지만, 아이는 점점 성장하면서 스스로 배운다. 울고 떼를 쓰는 것으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방법은 엄마의 사랑을 여전히 느낄 수는 있지만, 엄마의 행복한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걸.

사랑은 나의 만족감보다 상대방의 행복한 모습을 볼 때 그 마음이 더 벅차고, 충만해지는 것임을..

드디어 점점 땡깡과 꾀병은 줄고, 좀 더 의젓한 모습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힌다.

어느 날 문득 수건을 개어놓는다거나,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소금빵이라고 내밀거나, "오늘 예쁘네" 말 한마디에 입이 귀에 걸린 엄마 얼굴을 만들어 낸다거나. 짜증 낸 다음날 "미안해" 쪽지를 슬쩍 남겨놓는다거나.

그렇게 더딘 걸음이지만, 나만 좋은, 내 기준의 사랑이 아닌,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고 배워나간다.




오은영 박사님은 어느 육아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이 나를 아프게, 힘들게 하는데도 그 사람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런 아픔 후에 상대방이 주는 사랑의 표현이 평상시에 받는 사랑의 느낌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크고 소중하게 느끼게 되어 그런 감정의 반복에 길들여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서적으로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이나, 부모의 체벌 이후에 아이가 오히려 부모의 껌딱지가 되는 경우들.... 하지만 그런 관계는 건강한 사랑이라기보단 애증과 집착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그 기저는 불안으로 만들어진 관계라 늘 불안정하고 위험한 관계임을 경고했다. 사랑은 서로에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에너지를 공유해야지, 끝이 없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적으로 서로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건 결코 사랑이 아니라는 것.



초등학교 6학년 때 남자짝꿍이 정말 한 학기 내내 동백꽃의 점순이처럼 나를 괴롭힌 적이 있다. 책상 위에 선을 그어놓고 옷소매라도 튀어나오면 뭐라고 하고, 툭툭 치기도 하고, 어찌나 행동이 과격하고, 거칠고 사나운지 어렸을 때도 교과서처럼 고지식한 모범생 병이 심했던 나는 엄마한테도, 선생님께도 이르지도 못하고 꾹 참았지만, 아침마다 학교 가는 게 스트레스인 날도 많았다. (그 당시엔 학교폭력이란 게 없었지만 지금 같아선 엄마들이 학교에 항의를 했을 것 같은)

그런데 초등학교 졸업쯤에 집으로 편지가 한통 왔는데, 그 아이가 구구절절 쓴 두장의 편지에는 사실은 1년 내내 나를 좋아했었는데, 너는 알고 있었니?라는 고백 편지였다.

응??? 나를? 네가??!!

1년 내내 좋아했던 짝사랑의 마음이 내겐 괴롭고 힘든 기억으로 전해졌으니, 아무리 마음이 벅차고 커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나 중심적인 표현 방식은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그러니...

밀당이니 연애의 주도권이니, 썸이니 하며 세상이 바뀌어도,

나는 그저 사랑해! 라며 달려들고, 안기는 사랑하는 이의 살냄새가 좋고, 따뜻한 눈빛이 좋고, 두 손의 온기와 다정한 말투가 좋다.


안심되고, 든든한 사이, 나의 실수나 나의 부족함이 흠이 되어 나를 깎아내리지 않기에

음식을 흘리고 먹고, 웃는 중에 방귀가 나와도 그저 함께 웃을 수 있는 사이.

타인에게는 결점을 보일까, 완벽하고 단단한 모습만 보이려 하지만, 적어도 너에게만큼은 무방비, 긴장 해제.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도 흠이 되지 않을 안락한 사이

하루 종일 일터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다가도, 집에 오면 힐을 던져버리고 맨발에 파자마, 똥머리를 하고 소파에 뻗어 누워 하루의 긴장감을 내려놓는 것처럼 말이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그저 맞장구 쳐주며 "속상했겠다, 걔는 왜 그런데?, 어이구 고생했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으로 판단을 받는 것이 아닌 오롯이 너와 나

- 우리의 세계에서 유일한 내 편이 되어줄 나의 어깨뽕. 마법주문

너에게 나도, 나에게 너도




아무리 화려한 자태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도 살점을 파고들고 아프게 찌르면서,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팽팽한 현악기의 줄처럼 긴장하기보다는,

아무 무늬 없는 깨끗하고 폭삭한 거위털 이불처럼, 비누향기에 포근하고 따뜻하며, 안전하다 안심하는 그런 방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렇게 사랑했으면,

서로의 마음을 지켜주며 그렇게 소박하게 살아냈으면,






점순이와 소년은 어른이 되어 둘 다 그 옛날 어린 날의 미숙함을 후회하고 아쉬워했겠지만,

그런 경험이 드디어 성숙한 사랑을 하는 어른으로 둘을 성장시켜 주었겠지,

"어른이 된 점순이는 알게 되었을까? 사랑하는 법?"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독기를 품고 한 최후의 닭싸움에서 닭은 죽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점순이가 되었다.

"그럼, 너 이다음부턴 안 그럴 테냐?"

"요 담부터 또 그래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테니"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울고 있는 주인공 '나'에게, 점순이는 안심시키는 마지막 결정적인 한방 멘트로

결국 점순이는 '나'의 마음도 얻고, 노란 동백꽃 속에 파묻혔다.


점순이는 사랑에 서투르기 그지없었지만, 아마도 이 날 이후 알게 되었겠지,

상대방과 함께 행복한 방식, 안심을 주는 관계, 조금 더 어른스러운 사랑!



우리 아기새도 좌충우돌 천방지축, 우여곡절을 앞으로도 넘치도록 경험하게 되겠지만,

또 사실은 불혹을 넘긴 나이의 엄마도 아직 잘 모르는 것이 이상한 '사랑'이라는 것이지만,

그렇다 하여도

부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오늘보단 내일 조금 더

성숙하고 배려하는 마음, 제대로 된 사랑을 배워가는 신여성으로 잘 자라주길!




휴,,,

그래도 다행이다.

아기새가 점순이 같은 성격은 아니라서 :)







덧)

올해 초쯤에 써두었던 글인데 최근의 아기새 일화를 좀 더 보태고 다듬어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참말 다행입니다, 점순이 같은 아기새라면... 무서워요 ㅋㅋㅋㅋ


그리구 자꾸 지각연재해서 죄송해요 헤헤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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