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차량기사님과 미니사과
아기새가 밤늦게 집에 들어오자마자 부스럭부스럭 식탁 앞에서 비닐봉지를 꺼낸다.
얼굴엔 엄청 자랑하고 싶은 표정을 한껏 그려내며
"미니 사과! 차량 기사님이 주셨어!"
자랑스럽게 꺼내든 비닐백 속에는 아주 귀여운 미니사과 두 개가 들어있다.
"너만 주신 거야? 이번에도?"
"응! 시험기간이라고 집에 가서 공부할 때 먹으라고 내릴 때 주셨어"
자길 응원하며 주신 거라며 엄마는 주지도 않고, 혼자 먹기도 아깝게 예쁘게 생긴 미니사과를 아삭! 하고 한입 베어 물고는 오물거리며 자랑을 한다.
처음이 아니다.
주 3일 내외로 학원 등하원을 도와주시는 차량 기사 어르신이 아기새를 따로 챙겨주신 건,
중간중간 쿠키며, 사탕 같은 간식을 따로 챙겨주시기도 하고, 폭염이 무서웠던 어느 여름엔 그 차량을 타지 않는 날인데 다른 차를 놓친 아기새를 운전하시다가 중간에 발견하곤 태워주시기도 하고,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던 날엔 우산을 빌려주시기도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세상이 워낙 흉흉하기도 해서 처음엔 의심의 눈초리로 아이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기도 하고, 혹시나 싶어 차량이 내리는 곳에 가서 일부러 기다리고 있다가 얼굴을 뵙고 눈도장을 찍으며 인사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벌써 5년을 본 사이니 처음의 의심은 기억이 가물거리고 지금은 너무 감사한 아기새의 인연이 되어계시다.
어떻게 기사님과 그렇게 친해졌어를 물어보면 대단한 사건이 있던 건 아니었고, 처음엔 기사님께서 아기새에게 인사를 잘한다고 칭찬을 하셨다고 한다.
"아니, 인사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랬더니 아기새 왈, "엄마 애들이 기사님께 인사를 잘 안 해. 차량 타면 그냥 인사도 안 하고 휙 타고, 내릴 때도 그냥 휙 내리는 애들이 많아. 인사하는 애들이 별로 없어"
"엥?" '인사를 왜 안 하지?' 그야말로 문화충격
들어보니 애들이 사춘기가 되면 머쓱하고 무뚝뚝해지니까 말수가 줄면서 어릴 땐 인사 잘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턴 모른 척 눈을 피하며 인사를 안 하는 경우도 있고, 오가며 피곤하니까 무표정하게 타자마자 눈감고 자는 아이들도 있고, 또 말 그대로 인사성이 없는 아이들도 있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니 아이들도 무뎌져서 그냥 우르르 차량을 타고 우르르 내리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 와중에 꼬박꼬박 인사를 하는 아기새가 기특해서 칭찬을 몇 번 해주셨고, 칭찬에 약한 아기새는 또 그게 기분이 좋고, 그 칭찬이 좋은 경험이 되어 긍정적 행동의 강화효과를 주었겠지.
그러니 신이 나서 어느 날은 본인이 마실 음료수를 사면서 기사님도 하나 사다 드리고,(엄마에겐 그런 적도 없는) 아이들이 죄다 뒷자리로 구석으로 앉는데 자리가 없는 날엔 스스럼없이 기사님 옆자리 조수석에 앉아 재잘거리다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친해졌다고 한다. 물론 다니던 학원을 오래 다녀서 기사님이 안 바뀌고 오래 본 '시간의 정'도 있었을 테고.
차량기사님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수백 명의 아이들과 스쳐 지나가면서 유독 생글거리며 반갑게 인사해 주는 아기새가 손녀처럼 귀여웠던 것 같고, 아기새 역시 매일 보는 기사님이 다른 친구들 몰래 챙겨주시는 간식이나 한마디라도 더 따뜻하게 건네주시는 안부인사에 사랑받는 기분, 응원받는 기분을 느꼈겠지.
그런 것이 인연의 시작이자 인연을 이어가는 일상의 조각들일 터.
그러고 보면 내 품의 자식이라고 함께 데리고 다니고, 나로 인해 만들어진 인연 속에 늘 함께였던 아기새는 이제 과연 '그런 시절이 있긴 했었나' 싶게 제법 혼자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안 들고 갔는데 어쩌지, 하며 학교 1분 컷 단지로 이사까지 했었던 엄마를 뒤로하고, 쉬는 시간 틈틈이 탁구시합을 하던 체육선생님께서 다른 친구들 몰래 빌려주시는 우산을 자랑스럽게 쓰고 오거나, 자주 가는 학원가 어묵가게 사장님이 분실물 우산 많다며 공짜로 우산을 주셨다며 깔깔대며 이야기한다.
그뿐인가
초등학교 때 6학년 때 선생님은 아기새보다 세 살 아래의 아들을 키우는 부모님으로서 아기새에게 종종 (아니, 자주ㅋ) 연락해서 과목별로 어느 학원이 어떤 스타일인지, 요즘 아이들에겐 어디가 반응이 좋은지 학원가 꿀정보도 받아가시는 것 같다. 어떤 학원은 아들을 따라 보내기도 하시고, 반대로 아기새는 스승의 날, 시험 끝난 날, 방학식 날 같은 틈만 나면 벌써 3년이나 지났는데도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꼬박꼬박 학교로 간다.
물론 늘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 같은 아름다운 에피소드만 넘쳐나는 건 아니다.
이런 아기새도 시샘하는 친구들에게 상처받는 말을 듣고 와서 세상 꺼질듯한 한숨을 쉰 적도 있고,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고래 사이에 낀 새우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불평을 쏟아낼 때도 있고, 제법 머리가 커진 아기새의 시선에서 어른들의 (주로 아직은 학교선생님이겠지만) 앞뒤 안 맞는 언행이나 감정에 치우친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할 때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법과 제도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기의 주장을 하거나 논리적인 비난을 할 때도 있다.
또 때론 영양가 없는, 의미 없는, 아니 엄마로서 걱정이 되는 '선'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도 보인다.
순전히 엄마의 욕심으로는 조금 더 예의 바르고, 조금 더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길 바라지만, 때론 화장하는 모습을 보거나 이성 친구를 사귀는 걸 들었을 때 조금 위태위태한 친구와도 집에 와서 아이돌 댄스연습을 하기도 하고, 그 친구에게 화장을 배워와서는 책상 위를 화장대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아이고 두야...)
인간관계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하면서 넌지시 엄마의 의견을 보태기도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그 친구에 대한 부정적인 말은 금지! 그랬다간 나와 아기새의 '선'만 휘청이기에
스스로 깨닫고, 느끼길 바라며 그저 지켜봐 준다.
그렇게 아기새는
예전에 오롯이 엄마의 품 안에서 엄마의 판단과 선택 아래 주어졌던 환경이 아닌,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변수 많은 환경에서 좌충우돌 우여곡절의 사건들을 경험하며, 엄마에게 (다 이야기하지 않을뿐더러) 이야기를 해도 해결해 줄 수도 없는 복잡 미묘한 여러 감정들을 마주하며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그렇게 돌 무렵의 아장아장 걸음마를 연습하던 그때처럼
요란한 티도 내지 않고 정서적인 걸음마도 한걸음 한걸음 떼더니,
이젠 제법 성큼성큼 걷기도, 폴짝폴짝 뛰기도 하며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
마치 어릴 때 마리오게임에서 가장 쉬운 난이도를 넘기면
반드시 오고야 마는 어려운 미션을 마주하듯
낑낑대고 투덜대면서도 자기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뛰어넘고, 피해 가며
한 단계 한 단계 레벨을 올려가고 있다.
내가 처음 부모님께 독립을 하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가던 날,
부산역 대기실에서 손을 흔들며 들어가는데 뒤를 돌아보면 영영 못 볼 것도 아닌데 마치 다신 못 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슬픈 표정의 아빠가 서계셨다.
황소처럼 큰 눈을 가지신 아빠가 눈시울이 빨개져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몇십 년이 지나서도 그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고 잊을 수가 없는데 나는 아빠의 우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도 했지만 시집가는 것도 아니고, 이민 가는 것도 아니라 서울 부산 KTX로는 3시간이면 갈 거리인데 아빠가 왜 이렇게 슬퍼보일까, 왜 우실까, 그렇게 내가 걱정스러우셨을까.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마 단순한 헤어짐의 슬픔이나 아쉬움과 같은 감정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 하나로 묶여있던 딸과 내가 이제는 각자의 삶으로 갈라지는
그런 '끝'과 '첫' 사이에서 자식의 뒷모습을 보는 '기특하면서도 서운한' 마음,
그리고 기대와 걱정이 뒤섞여 동시에 차오르는 마음이었음을.
품 안의 자식이 제 갈 길을 찾고, 제 삶의 영역을 만들어가며 홀로 설 준비를 하는 모습이
한없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멀어질까 서운하고, 잘 해낼까 걱정되고, 못해준 것을 떠올리며 아쉬운 마음
만삭으로 아이를 품고 있다 출산 한 다음 날,
우렁찬 울음소리와 힘찬 숨소리로 어미젖을 찾는 아기를 보며 꿈만 같은 행복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공기 빠진 풍선처럼 푹 꺼져버린 배를 만져보며 너와 나를 이어주던 탯줄이 이젠 끊겼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뭔가 허전했던 그때처럼.
아빠의 그날 그렁거리던 눈물은 그런 감정을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야 알게 되는 부모의 마음.
아주 작은 수정란, 초음파 사진 속에 빼꼼 - '점'으로 내게 온 아기새가
탯줄의 '선'으로 이어져 엄마와 딸이라는 인연의 실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아기새는 엄마 품이 다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배워가며
친구, 선생님, 이웃들과 좋은 인연이든, 악연이든 어쨌든 더 다양한 모습의 수많은 '선'으로 관계를 잇는다.
그 인연들의 '선'이 아기새 '점'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키며 만들어 낸 '면'엔 일상의 추억과 경험 그리고 감정이 차곡차곡 채워진다.
하얀 도화지에 까만 크레파스로 선을 그어 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낸 면을 꼼꼼히 채워나갈 때처럼..
그렇게 형형색색 빛깔로 채워진 오늘의 '면'은 어제의 '면'위로, 내일의 '면'은 오늘의 '면'위로
켜켜이 쌓여간다.
아이의 키가 자라듯 매일의 '면'은 쌓이고 쌓여, 또 자라고 자라 자기만의 고유한 색과 모양을 만들어가며 입체적인 '형태'를 완성시켜 간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의 뻗어나가는 선에, 쌓여가는 면에 괜스레 서운하거나 내 것이었노라 집착하고 잡아두면 안 되는 것 같다.
아이의 우주이자 전부였던 엄마 아빠였던 시절은 아름답게 가슴에 간직할 뿐,
어쩌면 아이는 걸음마를 떼던 그 순간부터 부모에게서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을 해도 정녕 부모 자식의 '선'은 세상 무엇보다 단단하고 끈끈하기에
'내려놓음'이 쉽.지. 않.다.
계속 잔소리가 입가를 맴돌고, 자꾸 가자미눈을 하게 되고, 수시로 확인을 하게 되는
여전히 조급한 어미새지만,
잔가지가 바람에 흔들려도 굵은 가지는 버티고 지탱해 내는 것처럼
네가 만드는 수많은 선과 면들 어느 구석이 약해빠져 끊어지거나 무겁게 휘청대거나, 아슬아슬하더라도
네가 가진 '선' 중에 가장 튼튼하고 따뜻하게 이어진 엄마와의 '선'이
너를 버티게 하고, 이겨내게 지켜줄 수 있길 바라본다.
'점'으로 내 자궁에 자리 잡아,
'선'으로 나와 이어진 탯줄로 태어난 내 아기새
부지런히, 촘촘히 그물처럼 '선'을 잇고, 알록달록 빼곡하게 '면'을 채워가며
홀로 獨, 서다 立
독.립.의 날갯짓을 준비한다.
더 이상 너를 내 점으로 온전히 품어둘 순 없지만
고개만 돌리면, 팔만 뻗으면 가장 단단한 선으로 너를 응원할테니,
그러니
수많은 너의 그물에서 선과 면을 부지런히 만들어가며
끊어질까, 약해질까, 흔들릴까
두려워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스스로를 잘 만들어가렴.
덧)
오늘은 관계에 대해 써봤어요
자꾸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에게 집착을 내려놓고자...ㅎㅎㅎㅎ
공부를 잘하거나 얼굴이 예쁜것보다
제가 아기새를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은 어른들께 잘하는 점이랍니다
아마 이건 제 공은 아닌 것 같구요
어릴 때 조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고 친근함을 느끼는
아기새의 살아온 과정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버스기사님과의 소소하지만 행복한 에피소드들이 기특하기도해서 소개해봤어요.
그런데 늘 이렇게 달콤하지만은 않아요
곧 '매운맛' 이야기도 이어질 것 같아요. 우선 추석 연휴 전이니 해피한 이야기로 마무리해봅니다~
따로 인사를 드리겠지만 행복한 추석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