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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Apr 03. 2024

이 정도면 됐겠지?

나의 "이 정도"는 어디를 근거하고 있는가

아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 퇴근해야겠다.


일로 바쁘던 몇주간이 지나갔다.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근무하는 나의 문장에서 '바쁘다'란 기준은 주에 5일 이상을 22시 이후에 퇴근한 정도를 뜻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바쁘다의 기준이 어떤 정도인지 모르겠다. 어떠한 정도라는 말은 사람마다 그 기준과 상황이 다르니 그 사람의 맥락에 맞게 읽히거나 그 사람의 정의에 따라야 한다고도 볼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쁜 날들을 보낼 때에도 퇴근을 결심할 때에는 항상 '이 정도면 되었다.'란 생각을 하게 된다. 스스로 셀프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어, 쉬어야 내일 또 맑은 정신에 일하지." 그것이 나의 퇴근 동기이다. 하지만 이런 동기를 결정하는 나의 '정도'는 어떤 기준을 잡아야 할까?


고된 일로 간은 피곤하다는 가정 하에 내 퇴근의 정도를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척도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객관적으로 봐도 썩 괜찮은 정도

주관적으로 보면 썩 나쁘지 않은 정도

③ 주관적으로 별로라고 생각되는 정도


나는 지금까지 ②의 정도가 되면 퇴근 시간을 고려하곤 했었다. 일의 경중에 따라 판단 기준이 약간은 구별되겠지만, 마케팅이라는 일의 특성상 시간을 들인 만큼 결과물이나 의사 결정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매일 야근을 해서 모든 일의 퀄리티를 올릴 수는 있지만, 그건 회사도 나도 '안정적인 직장생활'과는 멀어지게 하는 행동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관적으로 보면 썩 나쁘지 않은 정도"를 근거 삼아, 어떤 것이 결정된 이후 디벨롭하는 방향을 선택하곤 했었다. 나의 생활과 일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끊어주는 것도 미덕이라고 느꼈기 떄문이다. 하지만 마케터 6년차인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니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① 객관적으로 봐도 썩 괜찮은 정도"라는 기준에 부합하도록 아웃풋을 내야 하는 순간이 많아져야 한다라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나의 정도를 ②의 기준으로 정한다면, 다른 일이나 프로젝트에 투입할 때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마무리하는 경향을 가져갈 것이다. 나의 판단 근거가 내가 보기에 나쁘지 않을 정도였기에 큰 죄책감은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 "①객관적으로 봐도 썩 괜찮은 정도"을 기준으로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의 작업물을 볼 때면 그때는 항상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나도 더 고민했다면 할 수 있었을텐데"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에 높은 퀄리티의 정도를 기대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많다. 보편적인 직장인들이 그렇듯 한정된 시간 안에서 해야 할 일은 쌓여있기 때문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시기에서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정도의 수준을 가져가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혹시나 나의 기준에 관성적으로 사로잡혀 있지 않은 지 체크해야겠다. 습관은 의지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나의 '정도의 관성' 또한 의식적으로 세팅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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