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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이 Jan 11. 2019

강아지, 이럴 줄 알았냐고!

강아지들은 처음부터 산책 나가서 쉬야하고 똥 싸는 거 아니었어?

강아지는 강아지니까 강아지답게 크는 거지.

    마루와는 태어난 지 2개월을 꽉 채우고 만났다. 그리고 다짐했다. 

함께 재밌게 살아야지!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별 거 없었다. 똥오줌은 산책 나가면 싸고 올 테니 산책 부지런히 다녀야겠다, 와 함께 산책 다니면 살도 빠지고 일석이조겠네, 정도였다. 그래서 마루를 데리고 온 다음날부터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예방접종 이전의 산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직 항체 형성이 되지 않은 어린 강아지들에게 풀밭의진드기나 다른 동물의 배설물은 매우 위험한 감염원이 될 수 있다'는 의견과 '도심에 사는 강아지들에게 아파트 앞이나 공원 정도의 야외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으며 예방접종 때문에 사회화를 포기하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더 위험하다'라는 의견이 서로 맞서고 있거든요. 마루는 2개월에 함께 하기 시작해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 1차 예방접종을 했습니다. 산책은 함께하기 시작한 다음날부터 시작했고, 길고양이의 똥을 주워 먹으면서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마루는 매우 운이 좋았던 건지도 모릅니다. 가능하면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일주일 정도 적응기간을 거치며 1차 접종을 한 뒤 산책을 시작하는 게 여러 위험을 줄여주는 방안일 수 있습니다. 일주일 가량 집에만 있기보다 목줄, 또는 가슴 줄을 하고 현관 앞에라도 나가 사료 주워 먹기를 한다면 접종 이후 산책과 강아지 시기의 사회화에 도움이 됩니다. 어린 강아지들은 의외로 바깥을 무서워하거든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는 2개월의 마루.

    마루는 11월에 태어나 1월에 함께하기 시작했으므로 옷 정도는 입혀야 할 것 같아 2500원짜리 옷을 사서 입혔다. 가슴 줄도 H형 가슴 줄을 한 채 산책하고 싶었지만 얼마나 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가슴줄을 사려면 가슴 둘레를 알아야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빠르게 두꺼워질지 알 수 없어 근처 펫 마트에서 사이즈가 맞는 가슴 줄을 하고 나갔다. 마루가 밖에 나가 신날 거란 생각에 기대를 잔뜩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나간 산책에서 마루는 잘 걷지 않았다.

아니 왜? 강아지들은 당연히 밖에서 걷는 걸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뿐만 아니라 마루는 며칠 동안의 산책에서 단 한 번도 볼 일을 보지 않았다. 보통 '나가자'고 하면 신나서 꼬리 치고 빙글빙글 돌며 짖고 난리 날 뿐 아니라 밖에 나가자마자 다리 치켜들고 소변부터 보는 게 강아지, 라고 생각했던 나는 혼란에 빠졌다. 결국 얼마 걷지 못 하고 돌아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검색창에 정확히 '2개월 강아지 산책 시 소변'으로 검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검색에서 의외의 내용을 알게 됐다.

맙소사. 강아지들이 이렇게 겁 많은 존재였어?
    아직 여러 경험이 충분하지 못한 강아지들은 바깥세상에서의 자극이 낯설어 배변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훈련사들의 이야기를 여러 글에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게 '강아지 사회화'라는 내용들이었어요. 2개월에서 4개월까지의 기간 동안 강아지들은 휴지가 물을 빨아올리듯 긍정적인 경험으로 자기 세상을 꽉 채우고 자신감을 뚝뚝 흘릴 수 있는 시기래요. 그 기간 동안 강아지들은 가급적 부정적인 경험(고통과 공포에 대한)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때는 언제나 즐거운 기억과 함께여야 사회화가 잘된 강아지로 자라난다고 합니다. 
    아픔과 고통을 느끼는 것도 이갈이를 시작하는 4개월 무렵 이갈이를 통해 처음 시작해야 나중까지 버틸 수 있는힘을 기를 수 있다는 마법 같은 시기가 바로 강아지 사회화의 시기예요. 이 시기 강아지들은 무척 겁이 많고 조심스러워서 보상(간식 및 칭찬)과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긍정적인 사회화가 진행되도록 천천히 기다려주셔야 해요. 밖에서 걷거나 볼 일을 보지 않는다고 다그치거나 화내기보다 걸음을 멈추면 기다려주고 한꺼번에 많은 경험보다 집 앞 보도블록, 화단 등에서 함께 앉아 무언가를 하면 간식도 주고 칭찬도 해 주는 활동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마루는 간식을 꼭 가지고 나가 수시로 잔디나 화단에 뿌려주고 땅파기를 해도 칭찬, 이름을 불러서 돌아보면 칭찬, 옆에서 잘 걸어도 칭찬해 주었어요. 그런 후에도 며칠이 지나서야 소변을 보기 시작했어요.

    강아지들은 무척 겁이 많고 소심해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강아지, 하면 용맹하게 낯선 사람을 향해 짖고 함께 사는 사람에게 다정한 존재인 줄말 알았던 편견은 그렇게 깨져나갔다. 검색해서 알게된 내용대로 당분간 아파트 밖을 향하는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대신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와 공용 계단에서 간식을 던져 주고 찾아 먹는 이른바 노즈 워크를 시작했다. 길쭉한 미트 버거를 다섯 조각 정도로 작게 쪼개 여기저기 던지고 마루는 찾아 먹는 놀이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바로 앞에 있는 간식도 찾아 먹지 못했다. 왜! 코를 안 쓰는 거야! 라며 안타까움에 소리도 질러 봤지만 알고 보니 코를 쓰는 것도 연습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마루는 하루에 다섯 번, 여섯 번 정도 현관에 나가 간식 찾아 먹는 놀이를 하며 점점 코를 쓰는 방법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삼 일 후. 마침내 마루는 흥! 흐으응! 크엉! 하는 콧바람 소리와 함께 간식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집에 있을 땐 밖에 나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줄 매면 나가는 거 아니야? 하는 개린이와 개린이가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흔한 풍경. 나뒹구는 양말 짝이 낯설지 않다.


산책에 적응하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이 때다. 밖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면 신난다고 생각하는 이때. 근처에 8개월 된 푸들을 키우는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루가 이제 산책을 나갈 예정인데 혹시 같이 산책하지 않겠냐고. 마루를 예뻐하던 지인은 흔쾌히 푸들과 함께 산책에 동참했다.

형형! 나랑 놀아줘!! 꼬맹이는 저리 가..

그렇게 나간 아파트 앞에서 마루는 예전의 경직된 걸음이 아니라 코를 벌렁이며 여기저기 땅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푸들을 만나서 함께 숲길을 산책할 때, 마침내 마루는 푸들이 하는 대로 다리를 들어 나무에 처음으로 마킹을 했다. 푸들은 얼마 안 가 똥도 쌌지만 마루에게 똥은 아직 무리였던 듯 여기저기 다리를 드는 흉내만 내고 있었다. 푸들을 키우는 지인과 헤어지며 집에 들어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루를 안고 혼자 춤을 추었더랬다. 정말 신이 나서. 우리 마루가 드디어 소통이라는 걸 시작하는구나, 하고 벅차올라서.

    물론 지금은 나가서 싸기 위해 집에서 오줌을 모아두는 잔머리까지 굴리는 중이며 나가서 찍는 사진 중 제대로 찍히는 건 주로 쉬야를 하거나 똥을 누기 위해 멈춰 섰을 때뿐일 정도로 산책을 애정 하는 마루. 첫 마킹에 성공하고 집에 온 지 2주가 지나서야 예방 접종을 맞으러 갔다. 물론 아픈 데 없이 정말 건강했고 주사도 잘 맞았다. 병원을 처음 경험할 때도 잊지 않고 마루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가 수시로 간식을 주며 병원은 맛있는 간식을 먹는 곳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무사히 예방 접종도 잘 맞았지만 산책을 나가 똥을 누기까진 며칠이 더 지나야 했다.  두 번째 예방접종은 2주 뒤, 마루는 2주 동안 꾸준히 산책을 나갔고 마침내 야트막한 언덕의 풀이 잔뜩 우거진 곳에 똥을 눴다. 드디어, 밖에서, 똥을 눈 것이다. 몇 주 동안 장식처럼 들고 다니던 똥봉투(일명 똥추)를 벌리며 정말 기뻤다. 마침내 밖이 익숙해진 것이다. 처음 산책을 시작하고 몇 주나 지나서 말이다.

짜식. 드디어.
이제는 냄새 맡기 달견인 마루.
다리를 좀 더 올려야 내가 커 보일 텐데.
다음에 이런 옷은 안 입으면 안 될까? 놉! 비 올 땐 비옷 입어야 돼.
    강아지들에게 '안전한'이라는 경험은 매우 중요한 경험입니다. 불안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함께하는 사람과의 신뢰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신뢰하는 존재 옆에서는 새로운 경험을 할 때 크게 뜸 들이지 않거든요. 그 사람은 위험한 걸 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마루를 지켜보며 든 생각). 그래서 강아지들에게 모든 새로운 경험은 정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때까지 반복적으로 괜찮아, 괜찮아, 를 경험시켜줘야 하는 거죠. 
     2~4개월 때의 강아지는 풍부한 경험을 긍정적인 보상과 함께 하는 게 나중에 여러 필요한 훈련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뿌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강아지의 사회화 시기를 몸소 경험하며 중요성을 깨닫게 됐어요.
이거 찍을 동안 가만있으면 그 간식 줘야 돼!!!

    강아지, 이럴 줄 몰랐다. 당연히 '나가자'라는 말에 신나게 반응하고 나가면 보이는 기둥마다 마킹하며 바깥 세상을 마음껏 즐기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은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고 쌓여 바깥이 즐겁다는 확인을 몇 번이나 한 후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바깥이 안전하며 신나는 장소라는 걸 알려주는 건 보호자의 몫일 줄이야. 알고 보면 강아지들이 겪는 모든 감정과 두려움은 사람만큼 신중하고 다양했다. 마루가 오기전 그런 내용을 알려주는 미디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강아지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건 강아지와 함께 생활해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는 것들이었다.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 보호자와 함께 살게 된 마루. 앞으로 닥칠 많은 난관들은 함께 의지하며 넘어볼 생각이다. 

잘 부탁해,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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