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가 빠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이빨들이 출몰했다.
앞니부터 빠져요.
마루가 집에 오고 두 달쯤 지난 3월의 어느 날. 소파에 흰색의 무언가가 있어서 봤더니 마루 이빨이었다. 드디어 이갈이가 시작됐구나! 뭔가 뭉클했다.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는 걸 소파 위의 작은 이빨이 알려주는 것 같아서였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갈이가 시작됐다면 이빨이 잘 빠지도록 도와줘야 할텐데. 강아지의 이빨이 어떻게 빠지는지 감조차 안 잡혔으므로 역시 검색의 힘을 빌었다. 이빨이 빠지는 시기는 제각각이지만 잘 빠지도록 하려면 터그놀이를 해주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주였다. 그래서 열심히 손수건과 장난감을 번갈아 흔들어댔다.
강아지의 유치는 대략 2개월쯤 모두 나서 4개월 무렵부터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이갈이가 시작됩니다. 사람의 아이들이 모든 걸 입에 대고 확인하는 시기가 있는 것처럼 강아지도 이 무렵에는 닥치는 대로 물어요. 손도 물고 머리카락도 물고 발가락도 물죠. 유치가 아무리 작아도 이빨인지라 물면 아픕니다. 턱 힘이 세지면서는 아!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아프기도 해요. 이 시기를 잘 넘기는 좋은 방법은 물었을 때 장난감으로 대체해서 놀아주는 거예요. 그리고 확실하게 거절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장소로 가는 방법도 있죠. 무는 것은 강아지의 표현 방법입니다. 잘못된 표현 방법으로 굳어지기 전에 거절하는 방법들을 검색해보시길 바랍니다.
가구와 벽지, 장판을 갉아대고 뜯는 행동도 이 무렵 심해집니다. 가구를 갉기 전 오랫동안 갉고 깨물 수 있는 개껌 종류를 수시로 제공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모든 강아지들에게 효과적이라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마루는 꾸준히 갉고 씹을 수 있는 사슴뿔이나 건조된 씹을 거리로 가구 갉기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터그 놀이를 할 때는몇 가지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한 살 이전의 강아지들은 관절들이 약하고 근육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1. 터그 놀이를 할 때는 가능한 물고 있는 장난감이나 수건 등을 어깨 위까지 들어 올리지 말아 주세요.
2. 장난감을 두 개 정도 준비하셔서 하나를 물고 흔드는 행동이 격렬해지면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강아지의 흥분이 가라앉길 기다립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놔"라는 말을 하며 장난감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립니다. 강아지가 놓으면 칭찬을 하면서 다시 놀아줍니다. 혹은 강아지가 물고 흔드는 장난감을 놔버리고 다른 장난감을 흔들며 주의를 돌립니다. 강아지는 물고 있던 장난감을 놓고 다른 장난감으로 오게 되는데 그때 신나게 놀아주면 됩니다. 이런 놀이는 강아지의 집착 행동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3. 급격하게 힘을 주거나 꺾으며 놀아주는 게 아니라 지그시 당겨만 줘도 됩니다. 혹은 크게 움직이지 않는 선에서 흔들어 주면 됩니다. 지그재그로 끌고 다니는 행동은 강아지의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마루와 격하게 터그놀이를 하다 수의사 선생님께 들었던 주의사항이예요.)
터그 놀이를 하고 수건을 흔드는 동안 마루의 유치는 우수수 빠지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빠진 이빨들은 앞니였다. 앞니 중 윗니가 먼저 빠졌다. 아랫니는 빠진 윗니가 빼꼼 고개를 내밀 무렵 빠지기 시작했다. 딱히 윗니 아랫니 따지는 게 무색한 건 빠지자마자 새 이빨이 나기 시작해서다. 몹시 신기하고 이빨 줍는 재미(?)가 쏠쏠해서 주워 놓은 이빨들을 싹싹 씻어 지퍼백에 담아 고이 모셔놨는데 휘리릭 앞니가 빠지고 새로 나더니 한동안 잠잠했다.
어금니와 송곳니는 한참 뒤에 빠져요.
그동안 마루는 무럭무럭 자라 5.6Kg의 청소년 강아지가 되었고 앞니를 제외한 어금니와 송곳니는 입 크기에 맞지 않게 무척 자그마했다. 앞니는 튼튼하고 예쁘게 잘 올라왔다. 딱히 이빨 건강을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이 무렵 생식을 하겠다, 라는 생각에 꽂혀 톰 론스데일Tom Lonsdale의 워크 원더스Work Wonders라는 원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생식과 구강 건강은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고 했다. 마침 마루도 이갈이 중이었으므로 흥미진진하게 대강의 내용을 읽었더니 저자는
뼈가 붙은 생고기를 주는 건 강아지의 치아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됩니다. 식단의 20%를 뼈가 붙은 생고기로 급여해주세요. 이가 날 무렵부터 뼈가 붙은 생고기를 주셔도 됩니다. 개들의 치아는 육식 동물에 맞게 고기를 찢고 뜯고 뼈를 부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목적에 충실하게 이빨들을 사용하게 하는 것이 구강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약간의 규칙만 지킨다면 뼈가 붙은 생고기는 치아 건강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몹시 매력적으로 들렸고 다른 어떤 것보다 뼈가 붙은 생고기에 꽂혀 버렸다. 그래서 겁도 없이 오리 도가니 뼈를 사료와 함께 급여했다.
생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분명한 건 영양 균형을 맞추지 않은 생식을 하는 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뼈를 씹어 먹을 수 있습니다. 1kg의 강아지들도 이빨이 났다면 뼈를 씹어 먹을 수 있지만 씹어먹는 걸 싫어할 수도 있고 힘들어 할 수도 있어요. 작은 아이들에겐 특히 익은 뼈나 뼈 간식은 치아 건강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익은 뼈나 뼈간식의 뼈는 자칫 단단하고 날카롭게 부서질 수 있고 통째로 삼켰을 때 몹시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영양 균형을 맞추지 않은 생식은 지나친 칼슘과 인의 높은 비율로 강아지의 신장에 무리를 줄 수 있으며 여러 소화 기관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영양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식단을 상담받으시면 보다 건강하고 신선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 영양학 연구소라는 곳을 검색하고 공부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영양 균형이 맞고 조건이 괜찮다면 생고기가 붙은 뼈는 반려견의 구강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루는 뼈에 붙어 있는 생고기를 뜯어먹기 위해 앞니를 사용했고 어느 정도 뜯어먹은 다음 어금니를 이용해 아작아작 씹어 골수를 먹었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꾸준히 마루에게 씹을 거리(불리스틱, 사슴뿔, 개껌 등) 제공한 건 참 잘한 일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마루는 딱히 가구나 벽지를 망가뜨리지 않고 사슴뿔을 씹거나 불리스틱을 씹었다.
그런데 어느날. 마루가 제일 좋아하는 오리 다리를 줬는데, 다른 곳에 묻어두고 우두커니 앉아 지켜보기만 했다. 밥도 잘 못 먹었다. 무언가 먹을 때마다 눈물이 그렁했고 아파하는 게 보였다. 걱정이 되어 병원을 가봐야 하나, 고민하던 그 때. 어금니가 빠졌다. 어금니는 정말 아파했다. 피도 나고 터그 놀이를 할 때 빠지면 한참을 쩝쩝거렸다. 마루는 이 무렵 구석을 찾아다니며 자주 웅크리고 있었다. 밥도 잘 안 먹고 기운 없이 구석을 찾았다. 마루가 5~6개월이 되기까지 개를 알지 못했으므로 강아지 이갈이가 이럴 줄 몰랐다. 아파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냥 빠지면 새로 나는 건 줄 알았다. 마루가 아파할 때마다 도움이 되지 못 해 미안할 지경이었다.
어느 날은 청소기를 돌리는데 따라락! 하는 소리가 났다. 그 따라락의 정체는 분명 어금니일 거라 생각했다.
청소기 먼지통을 열고 하나 하나 뒤져 어금니를 찾아냈다. 빠진 어금니를 보는데 저게 마루를 그렇게 고생시켰나 싶고 크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어 기분이 이상했다.
이 때부터 마루는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어금니로 살짝 씹어 뭉개고 앞니로 야무지게 뜯어냈다. 3개월이 될 때까지는 박스가 무서워서 후다닥 도망다니기 바빴는데 거기에 간식을 넣어 찾아 먹도록 했더니 고양이마냥 상자 속에 웅크리고 있기도 했다.
마루의 유치는 송곳니를 마지막으로 모두 무사히 빠졌다. 마지막 송곳니 하나까지 다 수집하고나서 치약을 묻혀 깨끗이 씻어 잘 말린 후 지퍼백에 넣어 서랍 속 깊숙히 넣어 놨다. 마루의 짧은 어린 날들을 추억하는 좋은 추억거리였다.
송곳니는 유치가 빠지지 않았는데 영구치가 올라오기도 해요. 터그 놀이를 하다 보면 약해진 송곳니 유치가장난감에 박혀 빠지기도 하는데 영구치가 다 올라오고난 이후에도 빠지지 않는다면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 후 유치를 발치해주시는 게 좋습니다.
이갈이가 끝나자, 마루는 조금씩 의사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씻기기 위해 욕조에 넣어 놓으면 높낮이가 다르게 한참을 울며 꺼내달라는 표현을 하고 앞발을 활용해 원하는 걸 알리려 애를 썼다. 우는 소리, 앞발의 위치를 보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충 알 수 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표정이 무척 다양해지고 고집이 생겼다. 눈만 봐도 마루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대충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갈이가 끝나고 확실히 마루는 컸다. 덩치만 커진 게 아니라 마루의 세계가 함께 크는 것 같았다. 마루의 어린 시절에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되고만 것이다.
튼튼한 이빨의 부작용.
영구치가 나고 얼마 후 부작용도 나타났는데, 산책하다 마음대로 안 되면 줄을 씹어서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빨이 빠지기 전에도 종종 줄을 무는 시늉은 했지만 끊지는 못했는데, 이갈이가 끝나자 본격적으로 줄을 씹어 끊어 놓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처음 줄이 끊어진 건 마루와 함께 나선 첫 여행지에서였다. 숯불에 고기를 구으며 잠시 마루를 묶어 놓았는데, 옆 펜션의 강아지를 보러 가겠다고 줄을 씹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고기를 굽다 마루가 달려나가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 한동안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같이간 친구에게 집게를 맡기고 마루를 잡아 왔는데, 짧지만 자유를 누린 마루의 표정이 그렇게 해맑을 수 없었다. 잠깐의 해방감을 맛 본 때문인지 이후에는 줄 뿐 아니라 가슴줄도 끊었다. 줄을 못 씹게 고무까지 섞인 튼튼한 줄로 바꾸자 씹어서 끊기 쉬운 가슴줄을 끊고 뛰어가려는 마루를 가까스로 잡기도 했다. 그래, 영구치가 줄을 끊을 만큼 튼튼해서 참, 다행이지, 하는 마음에 씁쓸히 새 가슴줄과 리드줄을 구매해야 했던 나날들.
영구치가 난 후 마루는 생고기가 붙은 뼈를 주는 것으로 양치를 대신했다. 사료를 먹을 때와 달리 고기를 뜯고 뼈를 씹은 이빨들은 하얗고 깨끗하게 유지 됐다. 그러다 뭘 잘못 먹었는지 며칠간 장염에 시달리는 마루를 보며 덜컥 겁이 나 생고기가 붙은 뼈를 가끔 주기 시작하면서 이빨이 누래지고 치석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마루를 위한 칫솔과 치약을 주문해 하루에 한 번씩 닦아주기 시작했지만 쉽게 다시 하얘지지 않고 있다.
양치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 '유치가 빠지기 전에 양치질을 하는 건 의미가 없고 그 무렵 사회화가 진행 중이므로 억지로 이를 닦이며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할 필요가 없다', 라는 의견과 '유치 때부터 양치를 해야 익숙해져서 영구치도 잘 닦을 수 있다', 라는 의견이 대표적입니다.
구강 질환은 강아지가 나이 들수록 많은 질병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치아 관리에 신경을 써야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유치 때부터 양치를 통해 관리를 할지, 영구치부터 관리를 할지는 전적으로 함께 사는 사람이 결정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이갈이가 끝나면 훌쩍 커 있는 강아지.
어쩌면 강아지들의 이갈이 시기는 강아지들에게 사람으로 따지면 2차 성징이 나타날 무렵과 맞먹는 정도의 혼란스러움을 겪는시기였던 것 같다. 이갈이 시기의 통증과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은 사람들의 그것과 달리 짧은 기간에 격렬하게 진행됨으로써 강아지의 좁았던 세상을 많은 부분 확장시키는 기간이었던 듯 하다. 확실히 이갈이 시기가 지나고 마루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많아졌다. 강아지 이갈이, 정말 이럴 줄 몰랐다. 마루의 이갈이를 함께 하며 스스로 행동을 확장해가는 마루를 지켜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