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조(채권, 재산권의 소멸시효) ①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②채권 및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은 2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오늘부터는 또 흥미로운 개념인 소멸시효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일단 이 부분을 공부하기 전에 채권, 물권 등 관련 개념을 먼저 간단히 알고 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법체계는 어떠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이익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권리로서 재산권이라는 개념을 두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금전으로 평가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재산권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금전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재산권의 목적이 됩니다.
그리고 '재산권'의 유형에는 물권, 채권, 무체재산권이 있습니다. 물권(物權)이란 말 그대로 물건에 관한 권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앞서 물건의 개념에 대해 공부했기 때문에 무엇이 물건인지는 알고 있지요.
제98조(물건의 정의) 본법에서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
따라서 물건은 일단 유체물 또는 자연력이므로, 물권도 유체물 등에 관한 권리가 될 것입니다. 어떤 부동산을 갖고 있다, 그러면 그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 있는 겁니다. 어떤 부동산에 전세권 등기를 해서 살고 있다, 그러면 그 부동산에 대한 ‘전세권’을 갖고 있는 겁니다. 어떤 부동산을 담보로 잡았다, 그러면 그 부동산에 대한 '저당권'을 갖고 있는 겁니다. 이와 같은 권리들이 모두 물권에 속하는 권리들입니다. 우리의 민법은 소유권, 점유권, 지역권, 지상권, 전세권, 유치권, 질권, 저당권의 8가지 종류 물권을 명시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어차피 물권 편에서 다룰 것이므로 여기서는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형체가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주스로 황금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합시다. 이 기술은 형체가 없습니다. 철수의 머릿속에 있는 정신적인 아이디어일 뿐입니다. 그 기술이 적힌 책이나 도면 같은 것은 엄밀히 말하면 그 '기술' 자체라고는 할 수 없지요. 이러한 무형의 재산권에 대한 권리가 바로 무체재산권(無體財産權)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특허권, 저작권 같은 것이 무체재산권의 일종이라고 하겠습니다.
채권(債權)은 '빚 채'의 글자를 씁니다. 직역하자면 빚에 관한 권리입니다. 빚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돈을 빌린 후 갚아야 하는 빚도 있고, 대신 일을 좀 해줘야 하는 빚이 있을 수도 있고, 자기가 가진 물건을 넘겨 줘야 하는 빚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권리가 채권입니다. 물권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물권은 물건에 대한 권리라는 것, 채권은 사람에 대한 권리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권은 지구상에 인류가 단 1명 남아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A 부동산의 소유권은 철수 1명만이 지구에 존재한다고 해도 성립하는데 이론적으로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채권은 안됩니다. 최소 2명은 있어야 합니다. 철수가 영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면, 영희라는 '사람'에 대하여 자신이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철수는 채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희는 채무자가 되는 거겠지요.
채권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하여 발생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우리가 지금까지 자주 언급했던 '계약'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자신의 부동산을 영희에게 팔기로 하는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철수는 영희에게 자신의 부동산을 넘겨 줘야 하는 채무가 있는 것이고요, 영희는 철수에게 계약으로 정한 금액의 돈을 줘야 하는 채무가 있는 겁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철수는 영희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채권이 있는 것이고요, 영희는 철수로부터 부동산을 인도받을 수 있는 채권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채권을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무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소멸시효에 관한 내용으로 들어가 봅시다.
제162조제1항은,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시효(時效)는 시간과 효력을 의미하는 한자를 사용합니다.
시효란 일정한 사실 상태(예컨대, 어떤 자가 채무를 부담하고 있지 아니한 것 같은 사실 상태, 어떤 자가 소유자인 것 같은 사실 상태 등)가 일정 기간 계속됨으로써 법률상의 일정한 효과, 즉 권리의 취득이나 소멸을 일어나게 하는 법률요건이라고 합니다(법령용어사전).
시효 중에서 기간의 경과로 '소멸'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소멸시효이고, '취득'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을 취득시효라고 합니다. 제162조는 여기서 소멸시효에 관하여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표현이 어려운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1억 원의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러면 영희는 철수에게 빌린 돈을 이자를 쳐서 갚아야 할 채무가 있는 것입니다. 철수는 채권자입니다. 그런데 철수는 영희가 돈을 갚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달라고 말하기가 왠지 귀찮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갑니다. 제162조제1항에 의하면, 그렇게 10년이 경과하면 철수의 채권은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되어 버립니다. 이제 철수는 영희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고, 영희는 철수에게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누구 마음대로 채권을 없애 버립니까?"
철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일까요? 철수의 잘못이라면 자신이 가진 채권을 너무 오랫동안 행사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소멸시효라는 제도를 두는 취지에 대해서도 학설이 분분한데, 종래에는 사회질서의 안정과 '권리 위에 잠자는 자'에 대한 제약으로서 존재한다는 견해 등이 있었습니다. 철수도 영희도 채권의 존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다가, 나중에 40년쯤 지나서 둘 다 90세쯤 되었을 때 갑자기 철수가 "아 맞다, 너 나한테 1억 원 빚지고 있었지! 당장 갚아" 이렇게 나오면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영희는 자신이 갚았더라도 갚았던 사실 자체가 가물가물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소멸시효 제도는 어느 정도 채무자의 보호를 위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러한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재산권을 박탈해 버린다는 것이 너무 과하다는 비판도 있으며, 모든 권리를 영구히 무제한으로 둘 경우 채무자에게 부담이 될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 채권자에게도 실 익 없는 권리를 존속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견해가 제기되는 등(강인원, 2018)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처음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소멸시효 제도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지 아니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소멸시효와 관련하여 비슷해 보이는 어떤 개념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제척기간입니다. 기억이 안 나는 분들은 제146조를 다시 한번 보고 오세요.
제146조(취소권의 소멸) 취소권은 추인할 수 있는 날로부터 3년내에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내에 행사하여야 한다.
제척기간과 소멸시효는 둘 다 어떤 기간의 경과로 권리를 소멸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상당히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둘은 서로 다른 개념으로 구별이 필요합니다. 우선 제척기간의 경우, 위에서 말한 제146조에서의 취소권과 같이 권리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어떠한 법률효과가 발생하는 권리에 '주로' 적용됩니다(반드시는 아닙니다). 취소권자가 취소권을 쓰면 그냥 취소의 효과가 발생하지, 상대방의 동의를 기다려야 한다든가 다른 요건이 필요하다든가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유형의 권리를 형성권이라고 합니다. 제척기간은 주로 형성권에 적용됩니다.
반면, 소멸시효의 경우 특정인이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행위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에 주로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영희에게 돈을 빌려준 철수는, 영희에게 돈을 갚으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철수가 돈을 갚으라고 한다고 영희의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여져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 철수에게 주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형성권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어떤 행위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청구권이라고 합니다. 흔히 청구권은 채권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물권에서도 발생할 수는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추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하튼 소멸시효는 주로 청구권에 적용됩니다.
제척기간과 소멸시효의 두 번째 차이점은 중단의 가능성입니다. 제척기간은 중간에 멈춘다는 개념이 없고, 예를 들어 3년의 제척기간이면 그냥 3년의 경과로 권리가 없어집니다. 그러나 소멸시효는 어떠한 사유가 발생하면 중간에 멈추었다가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곧 관련 조문이 등장할 것이므로 그 부분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척기간은 그 기간이 경과한 시점부터 장래에 대해 권리가 소멸하지만(장래효), 소멸시효는 그 기산일로 소급하여 권리가 소멸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소급효). 이에 대해서는 역시 뒤에 관련 조문이 나오므로 그 부분에서 자세히 공부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제척기간과 소멸시효가 다른 제도라는 점만 이해하고 지나가시면 충분합니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제162조제1항에 따르면 일반적인 채권의 경우 행사하지 않고 10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로 없어지게 됩니다. 반면 채권 또는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의 경우 2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역시 소멸시효에 걸리게 됩니다(제162조제2항). 여기서 권리의 '행사'란, 권리의 내용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의사표시를 하거나(형성권), 어떠한 행위를 청구하는(청구권)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유권의 경우 어떤 사람이 그 물건을 소유한다는 절대적인 권리이므로 행사하건 말건 소멸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소유권은 당연히 소멸시효의 대상이 되지 아니합니다.
오늘은 채권의 소멸시효와 채권 또는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의 소멸시효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채권과 물권의 간략한 개념, 제척기간과 소멸시효의 비교, 형성권과 청구권 등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빼놓고 지나가기 어려운 부분이라 설명이 많이 길어진 점 죄송합니다. 오늘 공부한 내용은 충분히 복습하셔서 꼭 이해하고 지나가시길 당부드립니다.
내일은 3년의 단기소멸시효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국가법령정보센터 법령용어사전, http://www.law.go.kr/, 2019. 9. 6. 확인.
강인원, “소멸시효 제도의 존재의의 및 소멸시효 중단사유로서의 승인에 대한 소고”, 「인권과 정의」 제478호, 2018, 70면.
김제완·백경일·백태웅, “권리행사기간: 소멸시효와 제척기간에 관한 연구”, 법무부, 2009, 117-126면.
20.1.2. 작성
23.1.2.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