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조(미성년자의 능력) ①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
지난 제4조에서 배웠던 개념들을 바탕으로 행위능력제도를 공부해 봅시다. 의사능력제도를 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의사능력이 없는 자의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했지요? 영희는 영등포구에서 컴퓨터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능력제도를 공부한 영희는 고민이 생깁니다. 손님이 올 때마다 의사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유심히 살펴보게 된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시는 분인데 사실 지능은 5살 정도라서 의사능력이 없는데 컴퓨터를 팔았다면, 그 매매는 무효가 되어 버리니까요. 심지어 취해서 의사능력이 없는 사람인데도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안 취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표의자(의사표시를 한 사람)가 행위 당시에 의사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제3자의 입장에서는 판단하기가 어렵고, 제3자가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 민법은 행위능력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행위능력(제도)이란, 이러이러한 사람들은 '능력이 제한된다'라고 미리 법률로 밝혀 놓고(의사능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의하세요), 그러한 사람들이 한 법률행위는 추후에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알게 하는 제도입니다. 이처럼 행위능력제도에 따라 능력이 제한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자를 제한능력자라고 합니다.
제한능력자는 대표적으로 다음의 3가지가 있습니다.
1. 미성년자
2. 피성년후견인
3. 피한정후견인
이제 우리는 왜 민법 제4조에서 굳이 성년의 나이를 19세로 못 박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행위능력제도에 의해서 미성년자는 제한능력자로 천명해 두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확히 몇 살부터 성년자가 되고 그 아래로는 미성년자가 되는지 쉽게 판단할 수 있도록 기준을 명시해 둔 것입니다. 그 기준이 지금은 19세인 겁니다(예전에는 20세였는데, 민법 개정으로 1살 더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만 19세(민법은 만 나이로 나이를 계산합니다. 한국 나이 그런 거 없습니다)로 성년이 됩니다(제4조). 제5조는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취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법정대리인이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법률에 따라 대리권이 주어진 대리인"을 말합니다.
제911조(미성년자인 자의 법정대리인) 친권을 행사하는 부 또는 모는 미성년자인 자의 법정대리인이 된다.
여기 15세에 불과한 철수가 있습니다. 철수의 아버지는 민법 제911조의 "법률"에 따라 철수의 법정대리인이 됩니다. 철수가 아버지를 마음속으로는 싫어하더라도 소용없습니다. 철수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 아버지는 법률에 따라 대리인이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제5조에 따라 철수는 법률행위를 하고 싶으면 아버지에게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마음속 깊이 경멸해 오던 철수는 혼자 영희(컴퓨터 판매점주)를 찾아가 컴퓨터 매매계약을 해버립니다. "제한능력자(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 동의 없는 법률행위"를 해버린 겁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될까요? 제5조제2항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는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고 했는데, 도대체 누가 취소할 수 있다는 걸까요? 여기서의 취소권자는 미성년자 본인과 그 법정대리인을 말합니다. 즉, 다음의 2가지 경우가 가능합니다.
1. 철수는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 매매계약을 한 것을 후회합니다.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지요. 철수는 이에 컴퓨터 매매계약을 취소해 버립니다.
2. 아버지는 철수가 컴퓨터를 샀다는 사실을 알고 무슨 중학생이 컴퓨터냐면서 화를 내고, 철수의 계약을 취소해 버립니다.
여기서 '취소'가 뭔가 궁금하실 겁니다. 법률에서는 '취소'라는 말도 쓰고, '무효'라는 말도 쓰는데, 양자는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A라는 행위가 2019년 1월 1일에 있었다고 합니다. A라는 행위가 무효인 경우, 그 행위는 당연히 1월 1일부터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B라는 행위는 '취소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이 경우 B 행위는 취소하기 전까지는 유효한 행위인 겁니다.
만약 1월 1일에 있었던 철수의 컴퓨터 구입행위를 아버지가 1월 5일에 취소했다고 해봅시다. 컴퓨터를 팔았던 영희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1월 5일에 취소가 있었으니까 1월 4일까지는 유효한 법률행위였고, 따라서 그때까지 컴퓨터를 쓴 철수의 컴퓨터 사용이익만큼은 돈으로 돌려달라고 말입니다. 이건 맞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취소의 효과는 그 법률행위가 성립한 때로 돌아가 그 시점부터 법률행위를 무효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록 취소 자체는 1월 5일에 있었지만, 해당 법률행위는 성립 시점인 1월 1일부터 무효가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시점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법학에서는 소급이라고 부르며, 취소의 정확한 개념은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법률행위의 효력을 소급하여 무효로 하는 취소권자의 의사표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무효건 취소건 법률행위의 효력을 없게 만들어 버린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무효는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것이라면 취소는 나중에 그 행위의 효력을 소급하여 없앤다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법정대리인과 취소의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문점이 하나 더 남습니다. "이건 컴퓨터를 판 영희에게 너무하는 것 아냐? 죄 없는 영희는 기껏 컴퓨터 열심히 팔아 놓고 무효가 되어 버린 거잖아."
맞습니다. 의사능력제도를 보완하기 위하여 제한능력자제도를 두었다고는 해도, 거래의 상대방(영희)은 언제나 피해를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민법은 제한능력자와 거래한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해 몇 가지 조항을 두고 있는데, 제5조제1항 단서도 그중 하나입니다.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란 무슨 뜻일까요? 이런 행위는 왜 미성년자 단독으로도 확정적으로 유효하게 할 수 있다고 한 걸까요?
예를 들어 철수의 이웃집에 사는 부잣집 아저씨가 평소 강압적인 아버지에게 시달리는 철수를 안타깝게 여겼다고 합시다. 부자 아저씨는 철수를 불쌍히 여겨 자신이 갖고 있던 컴퓨터를 철수에게 주기로 했습니다(증여). 이 행위는 오로지 철수에게 100% 유리한 법률행위로서, 철수는 그냥 컴퓨터를 받기만 하면 됩니다. 컴퓨터의 '소유권만을 얻는 행위'인 거죠. 따라서 철수가 공짜로 부자 아저씨에게 컴퓨터를 수령하는 행위는 권리만을 얻는 행위로서 취소할 수 없는 행위가 됩니다. 철수는 이제 새 컴퓨터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 아저씨가 "컴퓨터를 줄게. 대신, 네가 가진 장난감 레고를 전부 내놔."라고 한다면 그건 권리만을 얻는 행위가 아닙니다(의무도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계약은 역시 원칙으로 돌아가 철수의 아버지가 취소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제한능력자로서 미성년자의 기본적인 개념을 보고, 무효와 취소의 법리 및 법정대리인의 개념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내일은 미성년자에 관한 법리를 추가로 더 공부해 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