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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Jan 29. 2021

나는 종종 로또에 당첨된다

비록 로또를 사본 적은 없지만




  "팀장님은 로또 해보신 적 있으세요?"


  얼마 전 경품 당첨으로 받았다는 팀장님의 새 휴대폰을 구경하다가, 불현듯 질문을 꺼냈다. 왠지 이런 거 당첨되는 사람은 유난히 운이 잘 따르는 것 같다고. 로또도 분명 당첨되었을 거라는 무언의 확신을 가진 채 묻자, 답변은 금방 돌아왔다.


  "있지. 자주는 아니고 분기별로 한 번씩? 아, 맞다. 지금 당첨된 거 하나 있을 텐데."


  헐. 대박. 나 로또 당첨자를 코 앞에 두고 앉아있었구나! 입이 떡 벌어진 내게 팀장님은 허허 웃으며 덧붙이셨다. 5000원 당첨된 거야, 5000원. 5000원이든 몇 억이든 당첨은 당첨. 신기하다는 눈빛을 보내는 나를 느꼈는지, 팀장님은 지갑을 뒤적이시더니 그 안에서 로또 종이 한 장을 꺼내셨다. 나는 냉큼 몸을 테이블에 붙였다. 아, 오해하면 안 된다. 훔쳐가려는 게 아니고 궁금해서였다. 살면서 로또 종이를 처음 본다는 내 말에 팀장님은 친절히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자동이며, 수동이며. 숫자 몇 개가 같으면 3등, 몇 개는 2등, 다 맞으면 1등 이런 것들을.


  "와, 엄청 신기하다."


  친구들과 입만 열면 로또 당첨을 외치는 주제에 실은 단 한 번도 로또를 사본 적 없는 나는, 신문물을 접한 원시인 마냥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핸드폰으로 로또 당첨을 확인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신 팀장님은 실제로 지금 보고 있는 종이가 5000원에 당첨된 것까지 확인시켜주셨다. 저도 다음에 한 번 사봐야겠어요. 말을 마치자 팀장님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가방에서 펜 하나를 꺼내셨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이거 너 줄게.


  "네? 저 주신다고요?"


  "응,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니까. 이거 오천 원으로 바꾸고, 그중 천원은 네가 직접 로또 한 번 사봐."


  혹시 당첨되면…. 말을 끄는 팀장님께 나는 질세라 답을 붙였다. 반 떼 드릴게요, 반! 내 터무니없는 말에 팀장님은 웃으셨다. 그렇게 말해서 실제로 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그냥 당첨되면 알려만 달라면서. 팀장님은 꺼낸 펜으로 로또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셨다.


 'Good Luck ~ From. △△'


  나는 받은 로또 종이를 곱게 반으로 접어 가방에 넣었다. 말씀하신 대로 꼭 한 번 로또를 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 종이를 현금이랑 교환해야 하는 거죠? 물으니 아마 그럴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집에 가는 길에 곧장 바꾸려던 계획을 조금 수정했다. 종이 위에 적힌 문구가 아까웠다. 행운의 종이처럼 당분간 들고 다니다, 특별한 날에 바꿔야겠다. 예를 들어 돼지꿈을 꾼 날, 아니면 그냥 유난히 행복한 날.


* * *


  재작년 대외활동에서 멘토님으로 만나 뵈었던 팀장님은 그 활동이 끝난 이후로도 당시 멘티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며, 여러모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오늘도 그랬다. 우연찮게 잡힌 식사 약속을 시작으로 꼬박 세 시간에 가깝게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그중에는 내 취업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어떤 일을 할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이 바뀌는, 때로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내게 팀장님은 덤덤하면서도 다정한 응원을 보내주셨다.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셨다. 괜히 신경 쓰이게 해드렸나 싶어 죄송한 마음 반, 감사한 마음 반을 담아 인사를 드리니 팀장님은 아무렇지 않은 투로 말씀하셨다. 넌 믿을 만한 아이니까 그렇지. 잘하잖아.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순간 울컥한 표정을 감출 수 있어서.


  생각해보면 나는 습관처럼 몸을 웅크리는 사람이었다. 나 자신이 작은 사람이라 여겨지는 때가, 볼 품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잦았다. 그럼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최대한 몸을 웅크려 구석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아무도 나의 부족함을 몰랐으면 좋겠다, 아무도 나의 보잘것없음을 알아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상처 받지 않으려 하는 모든 행동들이 때로는 모순적으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그러나 그 자세가 마냥 오래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웅크리고 있으면, 곁에 와 등을 쓸어주는 사람이 꼭 한 명씩 나타난다. 왜 이러고 있어, 얼른 일어나. 괜찮아. 이렇게 속삭이며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든다. 무릎과 허리를 펴 일어선다. 용기를 내어 군중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은 항상 다르지만, 그 손길이 무척 따뜻함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곁에 있는 난 행운아가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이들을 내 인생의 로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구 상의 수많은 사람들 에서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은 로또보다 더한 확률을 따르지 않나. 그러니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수없이 많은 낙첨들 속에서 행운처럼 나타난 그들은, 내게 당첨권과 같다고.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를 아껴주는 지인들 모두가 그런 존재임이 분명하다고.


  누군가는 그럴 거다. 저 사람은 주위에 저런 사람도 있으니 복 받았다고, 부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생각에 이어 자신의 처지를 혹여 불운하게 여길까 염려스럽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도 꼭 해주고픈 말이 있다.


  언젠가 시험을 못 본 과외 학생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시험도, 입시도, 인생도 결국 운이라고 말이다. 그럼 운을 타고나야만 성공하냐는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인생은 당첨 제비를 뽑는 것과 같아서 네가 꽝을 여러 번 뽑으면 그만큼 남아있는 것들 중 당첨 제비 개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그러니 실패를 거듭한다는 것은 결국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나는 씩씩하게 말해주었다.


언제나 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 마.

계속해서 시도하다 보면 당첨되는 날이, 그러니까 모아둔 운이 따르는 날이 꼭 생기니까.


  삶도 그렇다. 꼭 로또나 당첨 제비를 뽑는 것처럼 우리의 운을 시험하곤 한다. 때때로는 낙첨이고, 또 때때로는 당첨이다. 물론 그 와중에 당첨이 더 잘 되는 사람, 덜 되는 사람이 나뉜다. 우리는 그걸 타고난 운이 다른 거라며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나는 어쩐지 생각이 다르다. 행운의 여부를 우리가 완전히 결정지을 수는 없어도 그 가능성은 높일 수 있다. 긴 줄을 기다려가며 로또 명소에서 로또를 사는 이유는 무엇이며 한 장만 사도 될 로또를 여러 장 구입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모두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이 행운을 붙잡을 바로 그 확률을 말이다. 모든 관계도, 인생도 그렇다. 각자의 운의 확률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앞선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인내, 웅크려있다가도 몸을 일으켜 세울 용기,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시도하는 끈기. 모든 것들이 당신의 당첨 제비 수를 늘리고, 행운의 확률을 높인다.


 그러니 지금 곁에 손 내밀어주는 사람 하나 없다고, 나는 부족하고 뒤처진 사람이라고, 세상의 어떤 운도 나를 따르지 않는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았으면 한다. 행운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를지언정, 불운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영원히 혼자여야만 하는 사람도 없으며 영원히 외로워야 하는 사람도 없다. 아직까지도 손에 쥐어진 당첨권 한 장이 없다면, 줄을 기다렸다가 다시 손을 뻗으면 되는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는 더 큰 확률로 당첨 제비가 잡힐 것이다. 돈이든, 성과든, 사람이든, 마음이든, 내가 간절하게 기도했던 것들이.


  나는 로또를 한 번도 사본 적 없지만 로또에 종종 당첨된다. 숱한 좌절의 날들 속에서 간절히 기다린 행운을, 따뜻한 손길을 접하게 된다. 모두에게도 그런 행운이 닿길 바란다. 아주 우연히, 그러나 운명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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