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어제부터 날씨가 흐리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고 있다. 운 좋게 창가 자리를 차지한 나는 이륙 직전 비에 젖은 활주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짐을 넣고 자리를 잡는다며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기내는 승무원의 이륙 안내와 함께 안정을 찾아갔다. 사위는 고요했고, 바깥은 어두웠다.
활주로에 있던 이가 한쪽 팔을 들어 사인을 보냄과 동시에 비행기가 공중으로 뜨기 시작했다. 우우웅, 하는 거대한 소음과 함께 지상이 멀어져 갔다. 먹먹해지는 귀를 느끼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귀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압력과 함께 비행기는 높게 높게 올라갔다. 나는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피로해진 눈을 쉬어줄 참이었다. 감은 눈 너머로 다시 승무원의 안내가 들려왔다.
"현재 기류가 불안정하여 기체가 흔들리고 있사오니 자리에…."
* * *
공간이 협소한 비행기 좌석 특성상, 편하게 잠이 들기란 어렵다. 애써 눈을 감고 숙면을 유도하던 나는 이륙 후 십오분 만에 눈을 떴다. 옆좌석 승객은 이미 깊게 잠이 들었는지 꺾인 고개가 내 쪽을 향해있었다. 나는 비행기 모드가 걸린 휴대폰을 의미 없이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구름 위로 기체가 올라와있었다. 난기류도 어느 정도 벗어났는지 덜덜 거리던 것도 잠잠해진 참이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시간이 참 안 가는 대신 사색을 즐길 여유가 생긴다. 요즘은 물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을 물멍, 불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을 불멍이라고 한다는데 하늘을 바라보면서 멍 때리는 것은 뭐라고 하지? 하멍? 멍하니 창밖을 구경하면서 겨우 그런 생각을 했다. 지상에서는 고개를 꺾어야 겨우 볼 수 있는 하늘을, 이렇게 같은 눈높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색다른 경험이다. 이왕 깬 거 눈에나 많이 담아두자고, 나는 창밖을 내내 응시했다.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김포에 가까워질 무렵, 창밖을 보던 나는 슬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비행기 창가 자리에 앉을 때마다 늘 하는 의식 같은 거였다. 바깥 풍경 찍기. 오늘은 출발할 때 날씨가 흐려 안 찍을 참이었는데 지금 하늘을 보니 찍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구름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날씨 따라 하루 종일 축축하고 눅눅했던 마음이 어딘가 모르게 해사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파란 하늘을 이렇게 좋아했는지 새삼 신기할 정도로. 그렇게 흐린 날씨였는데 막상 위에서 바라보니 하늘은 여전히 높고 여전히 파랗기만 했다. 여전히 밝고, 여전히 화사했다. 탁한 구름에 가려져 이 푸르름을 오늘은 넉넉히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만큼. 이 비행기 아래의 사람들은 올려다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만큼.
다행인 점은, 어쨌든 이 하늘은 영원한 것이고, 구름은 찰나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 구름이 다 옮겨가거나, 지상으로 원하는 만큼 비를 쏟아붓고 나면 이 위로 숨겨졌던 하늘의 푸르름이 다시 빛날 것이었다. 지금은 조금 어둡고, 또 조금 흐리지만, 결국에는 맑게 개일 것이었다. 나는 어쩐지 그 사실만으로 위안을 얻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모든 섭리가 우리네 인생과도 같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구름 아래 있는 우리들은 미처 보지 못하겠지만, 구름 위는 이렇게나 맑다. 매일이 오늘처럼 흐리고 비가 올 것만 같아도 사실은 이 또한 지나쳐가는 날씨에 불과하다. 우리는 언제나 맑고 푸르다. 가끔 구름이 껴 흐려진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가 없을 만큼.
당신의 맑음은 가린다고 해서 영원히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그 빛을 발할 것이다. 당신과 당신 주위를 화사하게 비출 것이며, 오래갈 온기를 흩뿌릴 것이다. 그러니 찰나의 것은 찰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찰나의 당신도 귀하지만, 영원의 당신은 그보다 더 귀하기 때문에.
지금도 창밖에 비가 내린다. 덩달아 내 기분도 조금 울적한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울적한 마음이 들어도 괜찮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대신 비가 개인 날에는 잠시 밖으로 나와 맑은 하늘을 바라보길 바란다. 그 드높고 맑은, 푸르고 빛나는 당신을 기쁘게 만끽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