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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Feb 05. 2021

과외학생이 대학에 합격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뻔한 말



    그러니까, 여느 때와 다름없던 평일 오전.


    [언니 오랜만이에요!!]

    [사진]

    [저 붙었어요] AM 10:46


    정시 원서 접수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없던 J에게서, 반가운 카톡이 왔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한 장의 사진과 함께.


   OOO수험생은 2021학년도 △△대학교 정시모집 일반전형 A학과에 합격하였습니다.


    침대에 늘어져있던 나는 사진을 보자마자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너무 좋아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고서 빠르게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헐]

    [우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축하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AM 10:47


    손이 조금만 더 빨랐다면 더 많은 말을 담아서 보냈을 건데, 당장 이 기쁨을 전달하려니 감탄사 수준의 말만 늘어놓게 된다. 치솟는 입꼬리를 주체 못하고 합격 사진을 또 한 번 본다. 굵은 글씨로 빨간색까지 칠해진 표시가 거짓말 일리는 없는데, 왠지 꿈같아서 자꾸만 보게 되었다. 붙었구나, 우리 J가. 진짜로 대학에 가는구나.


    [언니ㅜ진짜로 수고하셨어요ㅠㅠㅠㅠ감사합니다] AM 10:48

    [울 J가 고생 많았지]

    [오늘은 맛난 거 먹구 이제 푹 쉬어] AM 10:48


    라이언이 신이나 엉덩이를 흔드는 이모티콘과 함께 J는 감사인사를 다시 한번 전했다. 다음에 만나면 맛있는 거 사줄게, 하니 그럼 언니 만나는 날만 기다리고 있을게요! 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풋풋한 기운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수업 때 늘 하던 약속을 드디어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수시 모집에 몽땅 떨어지고서 우울해하기에 밥 얘기는 꺼낼 새도 없었는데 말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음 놓고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쁘면서도, 어쩐지 조금 찡했다. 그간 말도 못 하고 불안해했을 마음을 알아서.


    나는 현역 때, 그러니까 열아홉 살 수능 직후에 수시로 넣었던 대학 다섯 개를 줄줄이 떨어졌다. 한 세 개까지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네 번째부터는 결과를 확인하는 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냥 성적 맞춰서 대학을 가야 할까? 아니면 재수를 하는 게 나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마지막 두 대학의 결과 발표가 남은 날, 알바를 하던 와중에 가장 낮게 썼던 대학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사장님 몰래 결과를 확인했다. 또 불합격이었다. 나는 바게트 빵을 썰며 재수 학원은 어디가 좋을지 나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마지노선이었던 대학이 떨어졌으니, 마지막 하나 남은 발표는 볼 것도 없었다. 떨어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때 오빠에게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빨리 결과 확인하라고. 수험번호를 알고 있는 오빠가 재촉을 하니 혹시 이번만큼은 다른 결과가 나온 걸까 하는 얕은 희망이 샘솟았다. 나는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결과창을 열었다. 정말 거짓말처럼, '축하합니다.'라는 문구와 '합격'이라는 글자가 빨갛게 떠있었다. 결과를 확인함과 동시에 긴장이 탁 풀리며 눈물이 펑펑 쏟아져나왔다. 알바생의 갑작스러운 눈물바람에 놀라달려온 사장님도 소식을 전해듣고는 함께 기뻐해주셨다. 우리 알바가 대학을 붙었다네요. 손님들에게 자랑까지 대신해주면서.


    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면 항상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는 데 그만한 예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떨어지는 날도 있고, 넘어지는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치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자고. 그래도 안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보다, 이렇게 해야 잡을 수 있는 기회라 여기자고. 그리고 그 끝에서는 꼭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던 일들이 뜻대로 안 풀리면 자기 자신부터 의심하게 된다.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내 선택이 애초에 잘못되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사람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한다. J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모의고사보다 낮게 나온 수능 성적표를 받았을 때, 예비 1번을 받았음에도 수시에서 결국 떨어졌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쓴소리를 듣고, 결과를 궁금해하는 나에게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야만 했을 때. 나는 아이의 마음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나도 오래전 겪어보았고 또 여전히, 그 생각에 울적해지곤 하니까.


    끝없는 취준의 길에 들어서면서 나는 모순덩어리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희망을 주고 싶어 했으면서, 포기하지 않게 그들을 이끌어주려고 그렇게 애썼으면서 정작 나에게는 그런 노력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J의 카톡이 더욱 반갑고 찡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맞아. 이렇게 끝까지 견디면, 소중한 트로피를 손에 쥘 수 있는 거였어.


    다시 한번, 나만은 나 자신을 의심하지 말자고 다독인다. 적어도 나만은 나를 믿어주자. 서류에서 떨어져도, 면접에서 떨어져도 그게 내가 부족한 사람이어서는 아니니까. 아직은 때가 아님을 인정하면 된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 지금 멈추어선 안 된다고 스스로의 등을 밀어준다. 그래서 이 길의 끝이 어딘데? 하는 물음이 목 끝까지 차면, '아쉬움이 남지 않을 때까지.'라고 이야기해준다. 내가 사랑하는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내가 가장 믿는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때까지는 포기하지 말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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