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

절대 악인들의 말로

사슴인가 말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망한 나라의 역사에는 반드시 절대 악인이 등장합니다.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핍박을 받습니다. 억울하게 죽거나 몰락합니다. 중국 진(秦)나라의 이사(李斯)와 조고(趙高)도 그런 절대 악인의 부류에 속합니다. 진나라는 법가 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상앙(商鞅)은 엄격한 법의 적용을 바탕으로 하는 변법(變法)으로 진나라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기반을 닦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舊怨)이 있던 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국외로 도망을 치려다가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추포되어 거열형을 당합니다. 동문수학한 한비자를 죽인 이사 역시 말로가 좋지 않습니다. 환관 조고와 함께 권력을 찬탈하지만 끝내 권력게임에서 패배하여 저자거리에서 아들과 함께 허리가 잘립니다. 조고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진시황이 죽자 이사와 짜고 황제의 유지를 조작해 만만한 황제를 세우고 전횡을 일삼던 조고 역시 딴 마음을 지닌 부하의 칼에 목숨을 잃습니다. 이들 이사와 조고는 중국 최초의 제국 진나라가 망하는데 크게 기여한 간웅(奸雄)들입니다.      

조고가 유명한 것은 그가 남긴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라는 말 때문이기도 합니다. 태자 부소(扶蘇)가 황제가 되면 자신들의 안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한 이사와 조고는 부소의 동생 호해(胡亥)와 작당해 진시황의 가짜 조서를 만듭니다. 진시황의 죽음을 숨긴 채였습니다. 그들은 변방의 방위군 감군(監軍)으로 나가 있던 태자에게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려보냈습니다. 효심이 강했던 부소에게 불효 불충을 꾸짖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하(夏) 은(殷) 주(周) 시대에는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리고 화옥으로 국본을 삼았노라. 그러므로 누구나 여기에 위배되면 그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 부소는 나라를 위하여 공훈을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광패한 글을 올려 함부로 군부(君父)를 비방하였다.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 부자간의 정의로 보아서는 안 되었다만 나라의 법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호해로 태자를 책봉하고, 너에게는 독주와 단검을 내리노니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여 자결하도록 하라. 그리고 장군 몽염(蒙恬)은 대군을 거느리고 외방에 있으면서 지엄한 국법을 문란시킨 죄가 있어 마땅히 엄벌에 처할 것이나, 아직 장성을 구축하는 대업이 끝나지 않았기에 그대로 유임시키는 바이니 조서대로 시행할지어다.”      

자신의 뜻대로 권력을 잡은 조고는 모든 정적을 다 제거하고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립니다. 하루는 황제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칩니다. “제가 귀한 말을 한 필 얻어 폐하께 바치옵니다.” 그러자 황제는 웃습니다. “허허, 승상은 농담도 잘하시오. 아무려면 내가 말과 사슴도 구별하지 못하겠소? 이건 사슴이 아니오?” 그 말을 듣고 조고는 다시 신하들에게 묻습니다. “그대들에게 묻겠소. 이게 사슴이오, 말이오?” 신하들은 조고의 위세에 눌려 잠자코 있거나 말이라고 대답합니다.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은 나중에 죄를 뒤집어씌워 죽여 버리지요. 자연히 천하가 조고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록위마라는 말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윗사람을 멋대로 주무르고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른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절대 악인 조고의 절대권력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호해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을 황제로 올린 조고는 새 황제의 사주를 받은 자객의 칼에 허무하게 최후를 맞습니다. 황제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던 그의 위세가 망국의 와중에서 아침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제가 이 아침에 조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 아시죠? 나라 안팎이 시끄러운데 요즘도 지록위마가 횡행하는 것 같아서 한 말씀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