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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Sep 29. 2021

둔한 여자의 임신 확인기2

나는 왜 남편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었던 걸까?

신랑은 이미 출근했기에 카톡으로 임신테스트기 사진을 보내줬다. 곧바로 전화가 왔다.


웅 방금 해 본 건데, 요 근래에 내가 잠도 너무 많이 자고 그랬잖아. 이상해서 해봤는데 두줄이네.

폰 너머 신랑은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며 팀장님까지 끌어안을 기세였는데 나는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났다. 왜? 기쁨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아니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왜 남편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었던 걸까? 우리 둘이 함께 만든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

임테기만으로는 언제 임신이 된건지, 임신한 지 대체 얼마나 된 건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퇴근 후에 신랑과 산부인과를 방문하기로 했다. 다행히 집 근처 산부인과가 월요일에는 8시까지 운영한다길래 곧바로 예약했다.

신랑은 산부인과 자체가 처음이라 어버버하는 모습이었다. 초진이며 오늘 아침 테스트기를 써 봤더니 이러이러해서 방문했다고 하자 바로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초음파 기기가 들어오자마자

아기가 보였다!

너무 명확한 태아 형태의 아기를 보니까 또 눈물이 왈칵 났다. 초음파에 정신이 팔려 몰랐는데, 신랑도 울컥했다고. 태아 심장 소리를 들려주는데, 내 몸 속에 지금 심장이 2개 뛰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웅장해졌다. 팡팡팡팡팡! 심장 소리가 우렁차기도 해라. 길이를 쟀더니 1.9cm였다. 꼬물꼬물한데 머리와 손발이 구분돼 있었다.

벌써 8주 3일째라고.

세상에 이걸 이제야 알다니 이 둔감함을 어째. 저 너무 무심한 사람인가요... 했더니 생리 주기가 불규칙하거나 양이 적은 사람들 중 - 나는 둘 다 해당된다 -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신다. 중간에 착상혈이 살짝 비칠 수 있는데, 그걸 생리로 오인해서 임신했다는 생각을 못 할 수 있다고. 어쩐지 이번 달 생리 양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생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벌써 8주라니. 무조건 절대안정이 중요한 시기고, 먹고 싶은 거 많이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웬만하면 누워만 있어라, 커피는 너무 억지로 참지 않아도 된다, 스트레스 안 받는 게 중요하다, 대신 날것은 좀만 참아라. 원장쌤은 너무 자상하게 필요한 설명만 쏙쏙 해 주셨다. 원장쌤으로부터 임산부 유의사항 적힌 종이 받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신랑의 눈은 촉촉히 젖어있었다. 나 역시 울컥했다. 우리는 부모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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