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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이 Nov 21. 2019

2015 도쿄국제도서전 츠지무라 미즈키 대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책과의 인연

<2015 도쿄국제도서전 독서추진 세미나>

· 일시 : 7/4(토) 10:30~11:30

· 제목 :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책과의 인연 (원제 : “私”をつくる、本とのつながり)

· 대담자 :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 프리라이터 다키이 아사요

· 장소 : 도쿄빅사이트 회의동


* 거의 인터뷰처럼 다키이 아사요 씨는 질문하고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는 답하는 식이었어요. 다키이 아사요 씨의 질문은 생략하고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답변만 메모와 기억에 의지해 작성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작성했기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 수도 있어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흐름이 뚝 끊기기도 하고요. 괄호 안은 제 의견 혹은 추가로 찾아낸 정보를 기재한 것입니다. 의역, 덧붙인 내용도 있습니다. 존칭은 거의 생략했어요.


그동안 강연, 대담, 독자와의 만남 등을 많이 했는데요, 이렇게 천장이 높은 곳에서 많은 분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처음이라 긴장돼요.


어렸을 적 단짝 친구, 도라에몽

어렸을 때부터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어요. 매주 금요일이면 방과 후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이 녹화해 놓은 도라에몽을 보는 게 낙이었지요. 그때는 접시와 머그컵 등 도라에몽 관련 캐릭터 상품이 많이 나오던 때였어요. 저는 1980년생인데요, 도라에몽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처음 개봉된 해도 1980년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도라에몽과 저는 동급생이나 다름없지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같은 반 남학생이 도라에몽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듣고는 ‘당연히 누구나 좋아하는 도라에몽인데 왜 일부러 소리 내서 말한담’ 하고 생각했지요. 그 남학생은 제가 모르는 도라에몽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더라고요.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다른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그 남학생과 아직도 사이좋게 연락하고 지낸다고 합니다.)


『얼음고래』 의 장제목은 도라에몽 오마주

『얼음고래』의 토대가 되는 소설을 고등학교 2학년 때 썼어요. 그 당시에는 도라에몽 관련 내용은 없었고요. 출판할 때는 이야기 속에 도라에몽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장제목에 도라에몽의 도구를 도입했는데요, 그 까닭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도라에몽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따뜻한 가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하나는 도라에몽을 좋아해서 무크지 읽는 걸 좋아했거든요.(무크지 얘기는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한 소설 읽기의 즐거움

어렸을 때, 마을 도서관에서 왜건에 책을 실어 집 근처 공민관(마을회관)으로 보내주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그동안 차량 한 대분이었던 책이 방 하나를 차지하지 뭐예요! 어찌나 기쁘던지!

처음에는 그림책부터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서서히 어려운 책에도 도전했지요. 한자에 루비가 달려서 읽을 만했거든요. 읽고 난 후 감정이 고양되는 책이 있었는데요, 바로 에도가와 란포의 소년탐정단,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아가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이었죠. 어린이용으로 리라이팅 된 책을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다음에는 호러를 좋아하게 되었고요. 사람이 죽는 이야기를 좋아했나 봐요(웃음). 도서관에서 이것저것 읽어본 끝에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알게 되었답니다.

책을 고를 때는 표지와 제목으로 골랐어요. 에도가와 란포의 소년탐정단 시리즈는 수십 권에 달하죠. 집이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제목에 ‘삼각관’이 들어가는 책을 골랐답니다.


첫 소설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초등학교 3학년 때, 책등이 핑크인 틴즈 노벨이 유행했어요. 반 여자애들은 그 책에 영향을 받아, 좋아하는 남자애와 자신을 엮어서 연애소설을 쓰기 시작했죠. 하지만 전 그때 오노 후유미의 악령 시리즈, 지금의 고스트 헌트에 푹 빠져있었어요.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할 때 반드시 서로 좋아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거든요.(고스트 헌트에 이런 내용이 나오나요?) 이 책을 읽고 나도 악령이나 부유령이 등장하는 소설을 써봐야겠다 싶어서, ‘떠도는 악령 속에(さまよえる悪霊の中に)’라는 호러 소설을 썼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목이 참……(웃음).


거미줄처럼 확장되는 독서 세계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를 읽고 판타지의 세계에 입문했지요. 다나카 요시키의 아르슬란 전기, 창룡전을 읽다가 이번에는 이 책이 나온 고단샤노벨이라는 판형(브랜드, 라벨)을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작가별로 읽다가 판형별로 찾아 읽는 방식으로 확대한 거예요.

10대와 20대에는 다나카 요시키, 아야츠지 유키토의 소설에 푹 빠져 지냈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해설을 쓴 소설을 찾아 읽었어요. 또 아야츠지 유키토와 같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를 찾아보다 미야베 미유키를 발견했지요. 아야츠지 유키토가 추천문을 쓴 교코쿠 나쓰히코의 『우부메의 여름』을 읽고 제 독서 세계는 점점 확장되었답니다.

작가로 데뷔하고 나서 어느 날 시상식(?) 자리에 참여했어요. 그런데! 그곳에 아야츠지 유키토 선생님은 물론 미야베 미유키 선생님 등등 제가 좋아하는 작가 선생님들이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 좋아해요, 팬이에요!”라는 말을 돌아다니며 모든 선생님들께 전했더니, “저 애는 아무나 다 좋아하나 봐”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게 아니라 그 자리에 제가 좋아하는 미스터리 쪽 작가 선생님들만 모여 계셨던 거예요.


아야츠지 유키토와의 만남

그러다 유메마쿠라 바쿠, 키쿠치(?)…… 그리고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을 만났어요. 어린이용으로 리라이팅된 소설 외에 현대 용어로 쓰인 미스터리를 처음 만난 거예요.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거예요. 사건의 진상을 알고 난 후 너무나 놀라워서 책을 떨어뜨린 경험이 있지 않나요? 제 이름인 츠지무라 미즈키(辻村深月)에서 ‘츠지(辻)’는 다들 아시다시피 아야츠지 유키토(綾辻行人)의 ‘츠지’를 따온 거예요. 그리고 미즈키(深月)는 『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의 등장인물 ‘미즈키’에서 따왔죠. 아야츠지 유키토 선생님은 단번에 “키리고에지?” 하고 알아채시더군요. 그 말씀이 곧 허락이겠거니 생각하고 지금까지 츠지무라 미즈키라는 이름을 쓰고 있답니다.

야아츠지 유키토의 세계관은 섬세하고 정갈해요. 잔혹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도 말이에요. 야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은 ‘나도 현실 세계를 나만의 말로 구축하고 싶다’고 생각하게끔 해주었어요.

그동안 야아츠지 유키토 선생님의 작품 중 제가 선정한 1순위는 『십각관의 살인』이었어요. 몇 년 전 선생님이 그것을 갱신해주었지요. 바로 『어나더』였어요.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내 마음속 1순위를 갱신해주다니 팬으로서 온몸이 떨릴 만큼 놀랍고 기쁜 일이죠.


반항심에 양서를 읽지 않기도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은 미스터리, 호러, 만화책을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좀 더 제대로 된 책을 읽으라며 혼내셨죠. 어른이 된 지금 그때 그분들이 추천해주었던 책을 읽어봤더니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그때는 반항심에 그들이 권하는 책은 절대로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든요. 만약 그 당시 어른들이 그렇게 강하게 나오지 않았다면 진작 이 재미있는 책들을 읽었을 텐데, 하고 아쉬워해요. 어른들이 쓸데없는 짓을 한 거죠(웃음). 제 소설을 시험 문제 지문에서 처음 접하고 실제로 책을 찾아 읽어봤다는 독자도 있어요. 신기해요.


첫 미스터리는 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3학년 때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의 상권을 썼어요. 작품 발표 후 ‘궁지에 몰린 고3의 심정’, ‘학교의 폐쇄적인 느낌’, ‘삶의 괴로움’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차가운~』을 쓸 당시 고3이었던 제 심정이 녹아들어갔나 봐요. 고3 때 상권만 써놓고 대학에 입학했지요. 대학 생활이 어찌나 즐겁던지 한동안 소설 쓰기와 멀어졌어요. 어느 날, 대학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이 두꺼운 A4용지 다발은 뭐냐”고 묻길래 내가 고등학교 때 쓴 미스터리라고 알려주었더니 집에 가지고 가서 읽을 테니 빌려달라는 거예요. 빌려주었죠. 그 A4용지 다발을 다 읽은 친구가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니 계속 써달라고 해서 『차가운~』의 하권을 썼답니다.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야말로 미스터리의 매력

최근 연애소설과 가족소설을 발표했는데요, 미스터리를 워낙 좋아해서 여기에도 등장인물의 비밀을 넣는 등 미스터리 요소를 장치했어요. 이 작품들을 발표하고 난 후 미스터리 작가가 쓴 연애소설, 가족소설이라는 선전 문구를 접했는데요, 그때마다 정말 기쁘답니다. 또 사인회에서 만난 팬이 “마이너지만 정말 좋아해요”라는 말을 해주었어요. 그 말을 듣고 흐뭇했지요.(또 무슨 얘기가 있었는데 더 이상은 생각이 안 나네요.)


신간 『아침이 온다(朝が来る)』 관련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작품을 먼저 읽으시길 권합니다.)
최근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불임 치료 끝에 아이를 입양한 가정을 취재하고 자료를 조사해 봤어요. 그런데 뜻밖에 입양 사실을 유치원 교사, 이웃 등에 알리는 가정이 많더군요. 또 아이를 입양한 엄마가 자신은 불임 치료를 거쳤는데도 아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의 생모를 질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 생모가 아이를 낳아준 덕분에 자신이 입양할 수 있었다며, 생모까지 포함해서 자신들의 가족으로 여기는 가정도 의외로 많았습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고, 입양 사실을 아이는 물론 유치원, 이웃에 이미 밝혔다는 설정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지만 미리 조사를 통해서 실제 사례를 적용했다는 사실에 놀라웠어요.)


이 기획은 담당 편집자가 먼저 제안을 했어요. 최근 불임에 관한 기사 등을 접하면서 저도 언젠가는 불임 관련 이야기를 쓰게 되겠구나 싶었는데, 담당 편집자가 불임 치료와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구요. 입양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좋은 기획이어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워낙 미스터리를 좋아해서 이 작품 속에도 미스터리 요소를 넣었는데요, 이 소재로 소설을 쓴다면 작가에 따라서는 입양하는 이야기부터 쓰는 작가도 있겠지요. 저는 미스터리 요소를 넣으려고 아이의 나이를 대여섯 살로 설정하고 평범한 일상에 어느 날 아이를 돌려달라는 전화가 걸려오는 장면부터 시작했어요.


작가가 되기 위해 선택한 길

고등학교 때, 대학 때, 시험을 앞두면서도 미스터리를 읽고 썼어요. 이걸 써내면 왠지 공부도 더 잘 될 것 같았거든요. 대학을 졸업한 후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저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취업활동에 힘을 쓰지 않았어요. 어떤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해야 귀가 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작가가 되기 위해 OL을 택한 겁니다. 오로지 소설만 쓰는 길이 아닌, 직장과 병행하는 길을 택했지요.


프로 작가가 되고 나서 얻은 것과 잃은 것

지난번 대담 때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프로 작가로 데뷔하고 나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는데요, 그때 잃은 것으로 ‘순수함’이라고 답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물론 맞지만 만약 같은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책을 읽을 시간’이라고 답하겠어요. 쓰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읽을 시간이 줄어들었지요. 그래서 작업을 끝내고 나면 내게 주는 상으로 읽고 싶었던 소설을 읽고 있어요. 이번 작업이 끝나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매스커레이드 '호텔'인줄 알았는데 매스커레이드 '이브'일지도 모르겠어요)』를 읽을 거예요. 아직도 못 읽었거든요.

그 대신 얻은 것은 주변에 작가들이 많아져서 재미있는 책을 추천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작년에 온다 리쿠 선생님과 대담을 했는데요, 서로에게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때 온다 리쿠 선생님은 『알렉스』를 추천해주었어요. 지금이야 워낙 유명한 소설이지만 그때는 『알렉스』가 간행된 지 한 달밖에 안 된 때였거든요. 대단하죠? 최근 읽은 소설 중 『알렉스』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향후 계획

『어제의 그림자밟기(昨日の影踏み)』를 펴낼 예정이에요.

지금 새로운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어요. 수험과 보육을 다룬 『클로버 나이트(Clover Knight)』와 역사소설 『도쿄회관과 나(東京會舘とわたし)』를 연재하고 있어요. 『츠나구』의 속편도 연재 중이고요.


후기

츠지무라 미즈키의 육성은 처음 들었는데요, 그녀다운 목소리였어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하더군요. 현명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동안 소설과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상상한 그 모습 그대로여서 친근한 느낌까지 들었어요. 또 기회가 된다면 이번에는 좀 더 작은 무대에서 가까이 만나고 싶어요. 빅사이트 회의동 강의실(?)은 수백 명 규모였거든요. 촬영과 녹음 금지, 독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시간도 없었고요, 일본에서 대담을 듣는 게 처음이라 어리둥절했지만 좀 더 독자랑 소통하는 무대이길 바랐는데, 그 점은 많이 아쉬워요. 인원이 워낙 많아서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 앞으로는 기회가 된다면 작은 무대를 찾아야 할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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