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28)
입구에 서 있는 두런을 본체만체하고 나는 계단을 서둘러 뛰어 올라갔다. 임파에게 빨리 가서 사진기에 담긴 그림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임파는 자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임파에게 가서 바로 시커 스톤에 대해 물어보았다.
"임파!"
내가 이름을 부르자 임파는 고개를 들어 온화한 미소를 보였다.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천천히 입을 떼며 프루아에게 잘 다녀왔느냐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심했다는 듯,
"프루아한테 휘둘렸다던데 의외로 건강해 보이는구먼."
휘둘리다니 무슨 뜻이지....? 프루아가 귀찮게 '체키'를 시키긴 했지만... 음... 또... 장난을 걸긴 했지만 특별히 프루아에게 한 방 먹은 건 없는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며 임파는 그저 흐뭇해했다.
이미 프루아의 전갈을 받았는지, 임파는 내게 시커 스톤의 그림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나는 시커 스톤을 켜서 복구한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임파는 그림들을 보자마자 감탄하며 말했다.
"오오... 이건 틀림없는 100년 전 젤다님의 사진!"
그리고는 프루아가 말한 대로 의견을 내놓았다.
"공주님의 추억이 남은 이 사진의 땅을 돌아보면 그대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먼."
"이 사진들은...."
내가 운을 살짝 떼자, 임파는 예전을 돌아보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렇지. 그 사진들은 젤다님이 하이랄 왕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적 조사를 하거나, 각 부족의 마을에 가면서 찍은 기록들이네. 그대는 그때 언제나 젤다님을 호위하며 그림자처럼 옆에 있었으니 젤다님의 기억은 곧, 그대의 기억이기도 하지...."
"그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사진의 장소를 찾으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네..."
임파는 눈을 감으며 천천히 이야기를 했다.
그러더니 눈을 뜨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그대에게 할 말이 있네... 사진의 땅을 한 곳이라도 찾아가는 것에 성공한다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나..."
의아하게 왜 그래야 하는지 임파를 쳐다보자, 임파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대에게 주고 싶은 게 있거든... 꼭 전해줘야 할 물건이지..."
기억을 찾으면 주겠다는 그 물건이 뭐지? 나는 임파에게 그게 뭐냐 물어봤지만, 임파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사진의 장소가 어딜지 한번 잘 생각해 보라며, 아마 네 지역의 신수를 해방하다 보면 기억도 찾게 될 거라고 말했다.
늘 정답을 주는 것 같아도 뭔가 숨기는 것 같은 임파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떠나기 전에 임파의 집에서 뭔가 챙겨갈 것이 없는지 둘러보다 밖으로 나왔다. 기억의 장소는 어떻게 알아보면 좋을까... 고민하는데, 임파의 집 앞에서 만났던 칸기스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반가워했다.
칸기스 할아버지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주먹을 불끈 쥐면서 내가 꼭 들어야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오오, 자네로군! 마침 잘 왔어! 내 말 좀 들어 보라고!"
그는 대요정의 샘이 어디 있는지 대략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 후로 대요정의 샘에 대해 내 나름대로 조사해 봤는데...드디어 의심되는 곳을 찾았다네!"
하지만 그는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어서인지 좀처럼 샘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림이라도 좋으니 어떻게 해서든 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 대요정의 샘 위치를 알고 있는 나는, 칸기스의 말에 동의해 주었다. 위치를 알려 줘야 하나 어쩌나 하는데, 칸기스 할아버지가 먼저 제의를 해 왔다.
"지금부터 또 가 보려고 하는데 관심 있으면 자네도 함께 가겠나?"
나는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자신이 알아낸 걸 자랑하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길안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칸기스 할아버지는 젊은이다운 좋은 대답이라고 나의 말에 기뻐하며 먼저 앞장섰다.
칸기스 할아버지는 여행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언덕을 힘차게 올라갔다. 꽤 빠른 속도로 오르기에 할아버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바짝 붙어 가도록 노력했다. 시커족이 오래 산다고 하니, 그만큼 기력도 오래 가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비탈길을 빠르게 올라가더니 왼편의 언덕길로 꺾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쪽은 카카리코 마을의 이스트 동산으로 가는 길이다. 할아버지가 길을 제대로 찾았다고 생각하는데, 사당이 있는 곳 입구에 다다르더니 갑자기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섰다.
할아버지는 너무 기뻐서 생각보다 무리한 모양이었다. 오늘만큼은 꼭 가서 보겠다고 하더니... 언덕을 오르기엔 너무 힘들어서 서 이상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쉬었다 가면 어떠냐 하였더니 자신은 그림이라도 보면 된다며 대신 찾아가 봐 달라 하였다.
그러더니 자신은 쉬어야겠다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할아버지를 그냥 남겨두고 사당 뒤쪽의 이스트 동산으로 넘어갔다. 풀숲을 지나 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들어갔더니 낮에 들렀던 대요정의 샘이 보였다. 가서 시커 스톤을 들고 적당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은 후, 다시 칸기스 할아버지에게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아까 그 자리에 앉아 아직도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정말 특이한 장소를 찾아내고 싶은 욕망이 큰 사람인가보다. 내가 다시 말을 걸자, 대요정의 샘을 꼭 확인하고 싶다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찾았어요."
내가 대요정의 샘을 찾았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눈을 번쩍 크게 떴다.
"뭐! 찾았다고?! 저, 정말인가?"
할아버지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어서 그림을 보여달라고 재촉했다.
나는 시커 스톤을 바로 켠 다음 할아버지에게 사진을 보여 주었다. 대요정의 샘이 잘 보이도록 신경써서 찍은 사진이었다. 대요정의 샘은 실제로 보는 것 보다 생동감이 약했다. 더 반짝거리는 빛이 가득하고.. 향기로운 냄새도 가득한데... 아. 그림에 향기가 남지는 않지... 흐.
칸기스 할아버지는 대요정의 샘 그림을 보더니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가 중얼거린 말로는 대요정의 샘을 봐서 좋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름답다면 아름답지만.... 좀... 더 이렇게... 신비롭고 고상한 느낌일 거라고.... 흠...."
상상하던 것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까? 할아버지는 찾아주어 고맙다고 말하길래 시커 스톤을 집어넣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감탄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용케도 찾았군그래.. 역시 젊은이는 달라."
그리고는 살짝 미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수고해주었으니 무언가 보답을 하고 싶은데... 마침 가진 게 없어서 말야...."
그리고는 할아버지는 뭔가를 열심히 생각하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무릎을 탁 치면서 크게 말했다.
"그렇지! 자네 여행하는 여행자라 하지 않았는가? 혹시 가 보고 싶은 장소는 없나?"
"난 하이랄을 여행해 왔으니 궁금한 장소가 있다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네."
아... 칸기스 할아버지의 말에 젤다 공주가 찍었다는 사진들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기스 할아버지에게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다시 시커 스톤을 켰다.
"혹시... 이 근처에서 가까운 장소가 이 사진들 중 있을까요?"
칸기스 할아버지에게 사진 몇 장을 넘겨 보여주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한 사진을 보더니 손가락을 들어 사진을 딱 가리켰다.
"이건 ... 커다란 문과 그 안쪽에 설산... 그래, 그곳이야!"
"여길 아세요?"
칸기스 할아버지는 자신있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 마을에서 동쪽으로 쭉 가면 커다란 설산이 있어. 라넬산이라고 하는 산이지. "
라넬산은 하테노 마을에서도 멀지 않아서 지도에서 확인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아버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 그 라넬산 기슭에 있는 넬드래곤 설원 서쪽에 그 문이 있을 거야..."
그리고는 이 주변에 오래된 유적처럼 보이는 건축물들이 있는데, 문이 아주 크므로 지나칠 수 없을 거라 했다. 찾기는 어렵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칸기스 할아버지는 자신은 충분히 쉬었으니 이만 내려가 보겠다고 했다.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할아버지는 언젠가 또 만날 수 있다면 그 때 인사하자고 하고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를 배웅하며 나는 다시 비탈길을 내려가는 그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조용한 달밤... 상현달이 떠 있었다. 나는 이대로 길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생각해 이스트 동산의 위쪽 언덕으로 올라갔다. 비가 오지 않는 맑은 하늘. 구름이 스르륵 흘러가고, 풀벌레 소리가 사방에 가득한 밤의 정경은 아름다웠다. 특이하게도, 카카리코 마을 위쪽 봉우리에는 은밀초가 그득히 피어 있었다. 바람에 종을 흔드는 것 같은 은밀초를 바라보며 잠시 서 있었다.
라넬산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있다는 그 커다란 문 주변에서... 나는 기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기억이 그곳과 연관되어 있을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염려된다기 보다는 왠지 두근거렸다. 새롭게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린 것이니... 나는 라넬산을 향해 수풀을 헤치며 언덕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