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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기억 - 대재앙의 그 날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29)

by 김엘리


카카리코 마을 주변을 벗어나 모닥불을 피웠다. 밤에는 아무래도 스탈 몬스터들의 공격이 많으므로, 야영을 한 뒤 출발하기로 했다.


다시 아침이 되었다. 지도를 보며 강을 건너고 계곡을 넘어서 라넬 로드를 찾아 떠났다. 산 위에서 문을 찾아야 잘 보일 것 같았기에 힘겹게 등산을 하고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패러세일링을 하며 아래로 내려오다 보니, 사진 속에서 본 그 문을 기대보다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아!



이렇게 단번에 찾는 건가? 생각하며 땅에 착지하여 주변을 살펴보는데 - 사진처럼 주변에 눈이 쌓인 산이 없다. ... 사진 속 풍경은 서쪽이 아니라 반대인 동쪽 입구인 모양이군... 지도에서 방향을 체크하고 동쪽 방향으로 뛰어갔다.


라넬 로드라는 곳도 카카리코 마을마냥 요새 분위기다. 좁은 협곡 사이에 벽돌로 쌓은 튼튼한 길이 있는데... 그 사이사이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고대 유적의 흔적이 절벽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사람이 다닌 흔적은 별로 없고, 돌벽 바닥에는 이끼가 무성히 돋았다. 이런 건 대체 누가 언제 만든 구조물일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군데 군데 나무 상자와 철 상자가 있길래 뭐지? 하고 몸을 낮추었다. 이런 상자들이 있으면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있기 마련이므로,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블루 보코블린과 레드 보코블린이 한 마리씩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공중에서 활로 공격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하고 주변 벽을 타고 올랐다. 몬스터들은 아직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적당한 간격이 될 것 같다 생각했을 때 뛰어내리면서 화살을 겨누었다.



이렇게 공중에서 활을 겨누면 집중도가 높아져 적을 맞추기 쉬워진다. 한 번 공중에 뛰어올랐을 때 화살을 여러 발 날리면 좋지만, 아직 체력이 약해서 그정도까지 공중에 머물기는 어려웠다. 화살을 한 대 맞춘 후 땅에 착지하자마자 칼을 휘둘러, 덤벼드는 블루 보코블린을 처치했다.



블루 보코블린을 쉽게 처치할 수 있었던 건 좋았지만, 들고 있던 병사의 검이 곧 부서질 것 같다는 알림이 떴다. 아... 무기들이 내 기대보다는 오래 버텨주지 못하는 게 스트레스다. 내가 잠들어 있었던 100년간 무기의 발전은 없었던 걸까? 무기들의 내구도가 너무 약하다...


길을 내려오면서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전리품으로 루피를 챙기기도 했다. 이럴 땐 기분이 좋긴 하지만, 보상은 크지 않았다. 투덜거리며 이제는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벽돌길을 올라가는데, 계단길로 이어지는 중간에 망을 보는 붉은 보코블린을 발견했다. 뭐지? 하는데 - 헉.. 붉은 보코블린 아래 처음 보는 블랙 보코블린이 있었다!


아무래도 위에서 적이 몇 마리인가 살펴봐야겠다 싶어 다시 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러나 유적 사이사이가 좁고 벽이 높은 데다 숨을 수 있는 곳이 많은 협곡인지라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에라 모르겠다 - 그냥 뛰어내려가 화살을 마구 쏘면서 보니 다... 다섯 마리나 그 주변에 몰려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일단 내게 덤벼드는 2마리를 따돌리기 위해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거리가 좀 벌어졌을 때 쯤, 타이머 폭탄을 던져 녀석들을 유인하고 폭탄을 터트리는 식으로 공격했다. 생각보다 유효 공격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아서 몬스터에게 공격을 많이 허용했지만, 어찌어찌 블랙 보코블린을 처치할 수 있었다. 후... 평소에 생명력을 채우기 위한 요리를 미리 해 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다시 경사가 심해지는 비탈길을 따라 위로 뛰는데, 앞에서 어쩐지 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길 옆에 서 있는 기둥들 중 하나를 타고 올라갔다. 기둥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가려고 했던 길 중간에 커다란 모리블린 한 마리가(그것도 블랙...) 누워서 자고 있었다. 블랙이라면,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 중 가장 강한 녀석이었다. 주머니에 강한 무기가 별로 없는 지금은 녀석을 깨우기보다는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나는 땅으로 다시 내려가지 않고 기둥 위에서 패러세일을 펼쳐 날았다.


그렇게 몬스터 한 마리를 패스하고 땅에 내려와 보니, 반대편 석문이 있는 쪽에 도착했다. 문 너머에 거대한 산이 서 있는 걸 보니, 이 장소가 사진 속 그곳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시커 스톤을 열어 사진 속 장면과 지금 내 앞의 풍경을 비교해 보았다. 구름이 다르게 껴 있지만 그 외에는 똑같은 모습이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다 눈 앞에 있는 라넬산 동쪽의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사진과 정말 비슷한 구름이 문 위를 지나가는 것이 보이는데.... 어엇... !



눈 앞에 젤다 공주와 나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 사라졌다! 환영인가.....? 아니다. 기억이 나는 거야....!



나는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거짓말같이 이 장소에서 일어난 일들이 마치 어제일처럼 기억났다!



그래... 나는 그 때 젤다 공주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던 젤다 공주 뒤를 지키며 나는 조용히 그녀를 따라 걷고 있었지... 우리 앞에는,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게 느껴지는데, 그럴수록 젤다 공주의 낯빛은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저녁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 아름다운 장소였건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젤다 공주가 왜 이렇게 힘이 없고 지쳐있었던가... 그건... 그녀가... 그래! 라넬산에서 수련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거의 하루종일 여신상 앞에서 기도를 했다.... 그것이 그녀의 수련 방법이었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은 4명의 영걸.... 아, 그래. 영걸인 건 알겠는데... 누가 누구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젤다 공주가 영걸들을 만나자마자, 그 중 가장 몸집이 큰 영걸이 더 없이 다정한 눈길로 젤다 공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 어떻게 됐어? 신의 산에서의 수행은?"



그의 질문에 젤다 공주는 고개를 차마 들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가로저으며... 기대한 바는 얻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주변으로 다른 영걸들이 다가왔다. 젤다 공주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만으로도 그 때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모두들 젤다 공주를 걱정하고 있었다..


기억 속 젤다 공주... 아. 그랬다. 젤다 공주는 이런 사람이었다... 목소리만으로는 그녀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런 기억의 장소에 오니 그녀의 모습이 확실히 떠올랐다. 가녀린 모습이지만 뭔가 해내야 한다고 늘, 자신을 다그쳤던 사람...긴 금발 머리, 커다란 눈매... 짙은 눈썹... 나보다도 더 뾰족하게 솟아 보이는 귀....



젤다 공주가 죄송하다고 사과하자, 다들 안타까운 눈빛을 보였다. 그 중 새 인간(아마 리토족이겠지)인 영걸이 젤다 공주에게 한 마디 건넸다.



"각성하지 못했군.... 봉인의 힘...."

그가 말했던 봉인의 힘이란 건 뭐였지? 아.... 생각이 날 듯, 말 듯.... 젤다 공주는 그가 한 말에 더욱 고개를 떨구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기대하고 있었는데.... 되지 않았다며... 절망의 눈빛을 보이는 젤다 공주였다.



그런 그녀를 아주 침착하게 지켜보고 있던, 진짜 키가 큰 영걸 한 명이 있었다. 그녀는 다른 영걸보다 훨씬 관록이 있어 보이는 위엄을 풍기고 있었는데... 아마도 겔드족의 영걸이겠지...?



그녀는 겔드족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화려해 보였고 강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루비보다 더 붉은 빛을 띄고 있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녔고, 눈동자는 초록빛이어서 큰 대조를 이루었다. 닐카로워 보이는 눈매는 냉철해 보였으며, 큰 금귀걸이와 여러 장식은 위엄을 높였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와는 반대로 젤대 공주에게는 아주 부드럽게, 젤다 공주를 감싸안는 말을 했다. 마치 젤다 공주의 어머니처럼....



"우리 공주님... 최선을 다했잖아? 그래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리고 이 산에서의 수행이 전부는 아니잖아...."



"... 의외의 것을 계기로 봉인의 힘이 눈뜨게 될지도 모르고 말야..."


그러니 너무 기운을 잃지 말라는 말을 건네며, 그녀는 젤다 공주에게 충분하다는 사인을 보냈다. 겔드족 영걸의 말을 함께 듣고 있던 ... 붉은 물고기 영걸은.... 젤다 공주님의 바로 앞에 가서 섰다. 아마도 그녀 역시 젤다 공주를 위로하고 싶었던 거겠지...


젤다 공주는 그 겔드족 영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우르보사."

아... 겔드족 영걸 이름이 우르보사였지... 맞다.



사람들의 어떤 말로도 위로받지 못하고 있는 젤다 공주.... 나는 그런 그녀를 정말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군.... 그래. 나는 그녀에게 어떠한 위로도 해 줄 수 없어, 답답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수련을 하루 종일 지켜봤으므로,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붉은 물고기 영걸이 젤다 공주에게 다가섰을 때, 젤다 공주는 여전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물고기를 닮은 그 영걸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붉은 영걸은, 매우 자그마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매우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따듯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다 그녀는 물의 기운이 가득찬 여러 보석을 몸에 치장하고 있었는데, 쉽게 볼 수 있는 보석은 아니어서 눈길이 갔다.


"저기.... 잘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저 생각해 봤어요...! 제가 치유의 힘을 쓸 때 무엇을 생각하는지....그랬더니 그건.... "



그녀의 말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그 붉은 여성 영걸은 치유의 힘을 갖고 있어 남을 치료해 주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 누구더라... 이 사람,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데.... 머리가 좀 아파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가 뭔가 더 말하려 할 때, 라넬 로드 서쪽에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들려왔다.



재빠르게 리토족 영걸이 하늘로 날아올라 전황을 살폈다. 하이랄 성 쪽에서 커다란 폭음이 계속 들려서 모두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붉게 물든 가운데, 상상을 초월한 어둠의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빨갛게 빛나는 섬광이 하이랄 성으로 내리치는 가운데.... 아...



하늘에서 상황을 보던 리토족이 다시 내려왔을 때, 그 장소에 있던 우리 모두는 큰 일이 닥쳤음을 절감했다. 재앙 가논이 눈을 떠버린 것이었다... 예언대로.... 그 불길한 예언대로....


젤다 공주는 절규하듯 흐느꼈다.

"녀석이...... 눈을...... 떴어....!"


젤다 공주의 놀람, 슬픔이 극도로 확대되는 게 느껴졌다. 불안해하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공주 옆에 서 있던 영걸은 - 아... 이 사람도 정말 친근한 느낌인데...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이...- 어쨌든, 그는 공주에게 별 일 아니라는 듯, 차분히 이야기를 했다.



"걱정 마, 공주님! 녀석은 우리들이 어떻게든 할 테니까!"



그리고는 우리들을 모두 둘러보면서 차분히 다음 작전을 이야기했다. 그래.. 우리는 재앙 가논이 깨어나면, 각자 신수로 가서 공격을 준비하기로 했었다.


"좋아, 다들 자기 신수로 가서 재앙을 공격할 준비를!"


그는 이 난감한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 생각했는지, 각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



그리고 다시 확인하듯 이렇게 말했다.

"우린 링크가 가논과 싸울 때 일제히 공격을 퍼붓겠어!"


아.... 그래, 이 기억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나는 지금까지 계속 믿을 수 없었지만....내가 용사로 선택되었던 것이 기억났다. 나는 하이랄의 검사이자 영걸, 또 젤다 공주의 호위 기사이면서... 내 등에 걸려 있었던 마스터...마스터 소드의 선택을 받았던.... 용사였다. 전설에 내려오는 대로, 젤다 공주가 재앙을 봉인하기 전에 바로 재앙 가논과 대적하여 싸우는 임무를 맡았었다.



돌을 닮은 그 커다란 영걸은 내게 아주 믿음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 너는 하이랄 성으로!"


친구라.... 우리들은 서로 친구였구나.... 아... 그랬구나...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런 나를 쏘아보고 있던 리토족 영걸은 뭔가 못마땅해 보였다. 왜... 저 영걸은 저렇게 기분나빠하지?



나를 친구라 불렀던 그 영걸은 우렁찬 목소리로, 나에게 '이제 네 차례야' 라는 사인을 보냈다.


"확실히 지원해 줄 테니까, 마음껏 가논 녀석을 두들겨 줘!"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다시 한 번 끄덕였고, 문제없다는 식으로 주먹을 쥐어 보였었다... 정말 신뢰하고 있었던 친구... 맞다. 그런데 왜, 이름은 기억나지 않을까??



재앙 가논이 포효하는 모습을 절망적으로 보고 있던 젤다 공주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말을 건넨 이는 우르보사였다.


"자, 우리 공주님은 안전한 곳으로....."


그러나 그 말을 듣자마자 젤다 공주는 우르보사의 손을 뿌리치며 모두에게 소리쳤다.



"저도 가게 해 주세요! 아무 도움도 안 될지 모르지만.... 제발....!"



"적어도.... 적어도 여러분과 함께!!!!"


그녀의 결의가, 굳은 마음이 찡하게 전달되었다... 젤다 공주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으리라.. 얼마나 속이 탔을까? 모든 것이 다 자기 때문이라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 기억났다. 젤다 공주는 그때까지 그녀 안에 내재된 봉인의 힘을 각성해야 했다. 전설에서 전해졌던 대로, 퇴마의 검을 든 검사가 재앙을 물리치면, 그 악마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봉인하는 신성한 힘을 하일리아 여신의 후손인 공주가 발휘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젤다 공주는 아무리 수련을 해도 그 힘을 어떻게 쓰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 일 이후 100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공주는 재앙 가논을 자신의 힘으로 누르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그 때는 몰랐던 봉인의 힘을 젤다 공주가 발휘하고 있다는 뜻... 젤다 공주는 그 방법을 언제 깨달았을까....?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떠오른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래.....재앙 가논은 그 때 내가 물리쳤어야 할 상대였고... 내가 그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히는 신수와 가디언이 재앙 가논의 손아귀에 들어가... 우리의 작전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기억이 나자, 임파가 이야기 해 주었던 것과 나의 기억이 맞아들어가는 부분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불어 한가지 더 분명해진 점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전우이자 친구들이었던 영걸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본 것이 그때가 마지막.... 이라는 거... ...



더 기억하고 싶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나는 젤다 공주와 함께 하이랄 성으로 향했던 것 같다.. 그랬었는지 아닌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결국 그 이후 모두와 다시 만나지 못했다. ... 갑자기 뭐라 할 수 없는 슬픔과, 답답한 감정이 목구멍을 타고 위로 치솟았다. 콧날이 시큰해지고,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젖어들었다.



시커 스톤을 두 손에 든 채로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눈가에 차오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임파가 내게 했던 말이 다시 귀에 울리는 것 같다. 지금 과거의 기억을 잃은 것이 차라리 축복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그래. 몰랐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 그들 영걸에 대한 내 개인적 감정은 ... 아직 기억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함께 싸움에 나서기로 했던 만큼 그들은 전우였다. 적을 대하고, 싸움에 임할 때 전우는 소중하다.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를 모두 잃었다는 생각에.. 나는 그 자리에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잠시 울고 나자,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시커 스톤을 다시 챙겨 넣었다. 떠오른 기억에 많은 것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젤다 공주와 영걸들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라넬산에서 내려오는 찬 바람이 귓가를 간질이고 뺨을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계속 서 있을 수는 없다. 나는 흘렸던 눈물을 쓱싹 닦고서 다시 길을 나섰다. 이 기억을 토대로 또 다른 것들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내가 갖고 있었던 마스터 소드는 어디에 있지? 그게 있어야... 재앙 가논을 토벌할 수 있을 텐데.... 임파에게 물어보면 알까? 회생의 사당에서 눈을 떴을 때를 다시 되짚어 보았다. 흠... 거기에는 칼 같은 것은 없었다. 어쨌든 기억을 해 냈으니, 나는 다시 임파에게 돌아가기로 했다.



워프 기능을 이용하여 카카리코 마을로 돌아갔다. 바로 임파의 집으로 뛰어내려 들어가니, 임파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임파를 만나자마자 라넬산 동쪽 문에서 있었던 기억에 대해 말했다. 그 대재앙이 시작된 날이 기억났다고 말이다...


임파는 나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있다가 이렇게 운을 뗐다.


"공주님의 기억과 닿아 그대도 조금은 지난 일을 떠올렸구나..."


나는 임파에게 마스터 소드에 대해 물어보았다.

"혹시.. 마스터 소드는 어떻게 되었는지?"

임파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음... 젤다 공주님이 가지고 계셨을 텐데, 어찌 되었는지는 모르겠군..."

잠시 사이를 두고 임파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나를 다독였다.


"재앙 가논을 물리치려면 마스터 소드를 다시 찾아야 하지? 마스터 소드는 퇴마의 검이니... 그렇지만, 아마 젤다 공주님과의 기억이 더 떠오르면 그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 생각하네... 어디 신성한 장소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야."



그리고는 기억을 하나라도 찾으면 다시 와달라 말했던 이유를 꺼냈다.


"까먹기 전에 이걸, 그대에게 건네주어야지..."


임파는 조심스럽게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 내게 건넸다. 푸른 보자기에 싸여 있었던 그것은 옷이었다.


보자기를 풀러 보는 순간 나는 눈을 잠깐 의심했다. 바로, 그 기억 속 내가 입고 있었던 푸른 옷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것은...."


내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임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기억나는가? 이건 공주님께서 맡기신 그대의 옷이네... 영걸인 그대를 위해 맞춤 제작한 특별한 물건이니 소중히 다루게나. 이 옷을 입고 있으면 특별한 기능이 있다고 하네만... 그건 그대가 더 잘 알겠지."


특별한 기능? ... 어쨌든 영걸의 옷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니... 옷을 보는 순간, 왠지 마음이 울컥했다. 영걸들에게만 주어지는, 영걸임을 증명하는 옷... 젤다 공주의 마음이 왠지 그 옷에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승리를 기원하고, 하이랄의 안녕을 위해 그녀가 준비한 옷....


나는 임파에게서 그 옷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임파는 나를 다시 바라보며, 부족장들을 만난 후에 다시 보자고 말했다. 그렇다. 이제 본격적으로, 신수를 본래대로 되돌리기 위한 임무를 시작해야 할 때였다. 나는 옷을 잘 챙겨넣고, 떠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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