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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야의 마음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30)

by 김엘리


임파의 집을 떠나기 전에 뭔가 챙겨갈 것은 없는지 집안 구석구석과 집 바깥을 살펴보았다. 원래 모험을 앞두고 구할 수 있는 건 모두 챙기는 것이 기본이기에...!


임파의 집 뒤편으로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는 귀한 생선들이 펄떡이며 놀고 있어 몇 마리를 잡았고(사실 잡느라 힘들었다 ...) 바로 집 아래 공간에는 원기버섯들이 자라고 있어 요긴하게 써야겠다 생각하고 챙겼다.


바깥에서는 그렇게 유용한 소재들을 찾았지만, 집 안에는 별게 없었다. 무기라도 없나 이리저리 방안을 살펴보다가 지난 번, 카카리코 마을을 방문했을 때에 임파의 집을 뒤졌던 일이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그때 제대로 여기저기 보지를 못하고 당황하여 빨리 밖으로 나갔더랬는데...


당황했던 일이란... 바로 파야의 일기를 어쩌다 보게 된 일이었다.



그 때도 모험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이 있나 찾으려고 2층에 올라갔었다. 그러다 책상 위에 책이 펼쳐져 있기에 아무 생각 없이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겨보다 후회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파야의 일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때는 일기가 몇 장 채워져 있지 않았다. 일기라는 걸 깨닫고 읽을까 말까 고민했었지만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것 같아 카카리코 마을이나 임파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나 궁금해서 읽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프루아의 일기는 대놓고 보라고 말한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해서, 일기를 접했을 때는 망설임 없이 읽었고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파야는... 나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사람인데...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뭐 대단한 내용이 있겠어? 하는 마음도 있었지...



그런데 의외로 파야의 일기에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어 좀 놀랐었다.


임파, 파야의 대숙모님은 미래를 대비하여, 100년전에 한 검사를 회생의 사당에 잠들게 하였다는 이야길 들었다고 한다. 검사의 이름은 링크.


여기서 잠깐, 파야의 대숙모가 누군지 생각했었지만... 복잡하다 느꼈던 나는 그런 건 무시하고 계속 일기를 읽었다.


그 뒤 임파는 내가 깨어나기를 100년간 기다리고 있었으며, 나를 만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내용.. 그리고 파야는 그런 할머니와 하이랄을 위해, 내가 임파 앞에 빨리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겠다고 쓴 내용이 전부였다.


뭐, 별 내용 없잖아! 했었지만.... 그래도 남의 일기를 몰래 보는 건, 역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므로... 파야가 이 사실을 알기 전에 빨리 사라지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그 때 집안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못 봤던 것이다. 이번에는 꼭 챙길 건 챙기겠다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여기저기를 구석구석 살폈다.


안그래도 임파와 대화를 마치고 보니,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커다란 보주(돌구슬)가 있는 게 보였다. 생김새를 보니 왠지 사당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보주를 좀 더 가까이 살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임파가 의외로 그만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건 우리 일족이 대대로 지켜 온 보주... 아무리 그대라 해도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 돼."


음? 건드리면 안 된다고? 이게 무엇과 연관된 보주인지 임파가 모르는 것이 의외라 생각했다. 하지만...대대로 지켜온 보주라면, 사당과 연관된 게 아니라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잠깐 서 있는데, 임파가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부담스러운 마음에 알겠다고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여전히 파야의 일기가 펼쳐져 있었다. 아니... 파야는 일기를 썼으면 잘 숨겨둘 일이지 ... 사람 마음 흔들리게 또 펼쳐놓았담? 아... 어쩌지? 읽을까 말까? 보면 안 될텐데... 보면....


슬쩍 보니 지난번 보다는 내용이 더 쓰여져 있다... 그런데? 앗.... 임파가 나를 만난 이후의 이야기가??? 나는 나도 모르게 책장을 이미 넘기고 있었다...



[ 파야의 일기 ]

긴 잠에서 깨어나신 링크님은 기억을 잃으신 눈치였어요....

하지만 할머니께선 그래도 기쁘신가 봐요.

저런 할머니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링크님께선 무척이나 늠름하고... 마음에 그리던 용사님 모습 그대로셨어요.


.... 핫? 뭐라고? 임파는 나를 만나게 되어 기뻐했다는 건 알겠는데... 파야가... 나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내용인건가? '마음에 그리던 용사님'이라니... 나를 궁금해 했었던 거였나?



[ 파야의 일기 ]

뾰족하게 솟은 멋진 귀에 흐르는 듯한 금색의 구레나룻...

한 치의 오차도 없는 9대1 가르마...


나를 마주쳐 그렇게 부끄러워하면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더니... 언제 이렇게 자세히 봤다지? 거기다가 '한 치의 오차가 없는 9:1 가르마'라니...... 그랬나? 파야의 일기를 읽고 있으니 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닭살 돋아!!!!



파야가 '어째서인지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는다'라고 쓴 대목에서 나는 일기를 덮어버렸다. 괜히 읽었다. 파야가 내게 호감을 가질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파야와의 황당했던 첫 만남이 생각났다. 허둥지둥 어쩔 줄 모르는 그녀가 이상하게 보였었지.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니.....어쩌지? 싶었다. 파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으니... 그러고 보니 시간은 이미 밤... 혹시 집에 돌아오는 파야와 마주친다면 곤란할 것 같아 나는 서둘러 임파의 집에서 나왔다.


그런데, 임파의 집 입구에 놓여 있던 두꺼비(정확하지는 않지만) 석상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파야를 딱 마주쳤다!



잠시 멈춰 서 있는데, 그녀는 나를 일아보더니 무릎을 꿇고 있던 자세를 풀고 일어나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냐며, 자기에게 볼일이 있냐고 묻는다.


달이 휘영청 밝은 밤, 풀벌레 소리와 그윽한 매화꽃향이 퍼져 있는 카카리코 마을... 어디선가는 구슬픈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평화로운 피리 소리였던가... 파야는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 그녀의 일기를 본 뒤에 마주치다니!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마음을 숨기면서 별다른 할 말이 없어 그냥 뭐 하냐고 물어보았다.



"신령님께 기도를 드리던 중이었어요."

신령님...? 시커족은 하일리아 여신을 섬기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파야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신령님께선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길잡이... 링크님께서 나아갈 길은 우리의 나아갈 길... "



그녀는 모은 손을 자신의 턱에 가까이 대며,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파야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정도밖에 없으니까요..."


조용히 기도를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는 파야는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었다. 나를 위해 기도를 해 주는 사람이 있다... 고마운 일이긴 한데, 나는 차마 파야에게 고맙다는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파야를 뒤로 하고, 나는 돌아섰다.


솔직히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파야에게 그런 마음이 생긴 걸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건… 불편한 감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보면… 나 자신을 찾기도 바쁜데. 파야는 나에 대해 잘 모른 채, 그저 내가 용사라니까 좋게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용사… 하이랄을 구할 사람… 후…앞으로도 지겹게 들을 말이겠지만… 그 무게가 싫다.


발걸음을 옮겨 카카리코 다리가 있는 계곡 쪽으로 휘적휘적 걸었다. 밤의 차가운 공기를 만난 달은 더 없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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