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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엘리 Feb 06. 2024

네번째 기억 - 고대 돌기둥군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43)


대요정 시저의 샘에서 방향을 살짝 틀어, 산비탈을 올라오는데 시커 스톤의 사당 센서 반응이 점점 커졌다. 이 위에 사당이 있는 모양이다 싶어서 비탈길을 올라갔는데...



시커 스톤의 알람이 또 다르게 울렸다. '고대 돌기둥군'이라는 지역 이름이 뜬 것이었다. 고대 돌기둥군....? 유적지가 맞기는 한가보다 하고서 돌기둥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가운데로 들어갔다.



올라가자마자 '티나.쿄자의 사당'을 발견했는데 ... 사당에 바로 들어갈까 하다 보니 왠지, 낯이 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싶어서 나는 시커 스톤을 켰다. 이 장소는 기억의 앨범에 담겨 있던 장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시커 스톤을 켜서 앨범의 그림을 열었다. 커다란 새가 날고 있는 모습과, 사당의 모습까지.. 똑같았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사당에 붉은 등이 들어와 있지 않다는 점 뿐이었다.




사진과 이 장소를 비교하면서 보고 있으니, 젤다 공주가 눈 앞에... 아니, 정확히는 사당 근처를 두리번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래... 점점 기억이 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사당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젤다 공주는, 가이드 스톤 주변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유물 조사에 매진하여 잠도 잊고 고대의 책을 펼쳐보았던 젤다 공주의 모습도 스쳐지나갔다.



그때는 그 돌이 가이드 스톤이란 것도 알지 못했을 거다. 아마도. 유물 조사에 대해서 젤다 공주가 특별히 알려준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는 나였지만, 당시에 젤다 공주는 알아내고 싶은 무언가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연결하지 못해서 애태웠다는 것이 기억났다.



기억 속 젤다 공주는 들고 있던 시커 스톤을 가이드 스톤에 대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젤다 공주는 다시 한번 확인하려고 시커 스톤을 한번 더 대어 봤지만 가이드 스톤은 어떠한 불도 들어오지 않았고, 전혀 반응이 없었다. 공주는 혼자 중얼거렸다.


"역시 반응하지 않아....."



젤다 공주는 혼잣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 형태의 유물은 퇴마의 검에 선택받은 자를 위한 시설.... 그건 틀림없는데..."


사당에 대한 기록이 고대 문헌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그걸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으니...



젤다 공주는 답답해하면서 짜증을 냈다.

"정작 중요한 기동 방법을 모르겠어...."



한숨을 쉬면서, 다시 사당을 돌아보던 그녀는 한탄하며 말했다.


"어떻게 하면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시커 스톤을 꼭 쥐고 여기 저기를 돌아보는 그녀... 그러다 젤다 공주는 갑자기 자신의 뒤쪽을 돌아보았다.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말이 히힝하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말에서 내리는 것 같다. 그런데, 그걸 바라보는 젤다 공주의 표정이 아주 차갑게 변했다.



그녀는 말에서 내린 사람을 쏘아보고 있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말에서 내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앗? 그럼 젤다 공주가 사당을 조사하는 건 내 기억이 아닌데....?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누구의 기억을 보는 거지....?



어쨌거나 기억 속, 눈 앞의 젤다 공주는 나를 향해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오늘은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을 텐데요."


전에 없이 차갑고 쌀쌀맞은 태도였다. 기억을 보고 있는 나조차도 어리둥절할 정도로... 그러나 기억 속 나는 그런 건 별로 개의치 않는 태도였다.



젤다 공주는 눈을 흘기면서,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나에게 호령했다.


"아무리 국왕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당사자인 제가 호위는 필요없다고 말하잖아요!"


아아. 그녀의 말을 들으니 생각났다. 내가 호위 기사로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그녀는 여기 저기 유물 조사를 다니느라 바빴고,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성을 빠져나가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따라가기에 바빴는데... 그 즈음엔 내게도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버지인 로암 왕이 젤다 공주가 반대하는데도 호위를 세우는 이유를, 젤다 공주는 정말 알지 못하는 걸까? 분명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몰래 빠져나가기만 하는 젤다 공주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녀가 알려주지 않아도 나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것이 내가 할 도리... 그래서 공주가 어떤 유물 조사를 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고, 어떤 책을 읽는지도 슬쩍 봐야만 했다.


그날도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고 먼저 출발했기에, 그동안 내가 나름 알아보았던 정보를 모아 추측하여 이 돌기둥군으로 쫓아온 것이었다. 대략 예상 행선지는 세 곳이었는데, 다행히도 첫번째 예상했던 이곳이 맞아들어 나는 나름 안도하고 있던 차였다. 혼자 있었어도 별 일 없어 보였고,  몬스터의 습격도 받지 않았던 것 같아 안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보자마자 이렇게 쏘아붙이니.. 당황스럽기도 했었다.



젤다 공주는 꽤 기분이 상했는지, 나를 스쳐지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성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전하세요."



뭘 전하란 말인가? 호위는 필요없다고 전하라고?

하지만, 내 판단에는 하이랄 왕이 내게 내린 명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하이랄 성 안에만 주로 있었어서 몰랐던 걸까... 세상엔 알 수 없는 위험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쨌든 젤다 공주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다시 돌아보는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 없다. 한 나라의 공주의 안위는 중요하니까... 그런데 앞서 가던 젤다 공주가 갑자기 뒤를 휙 돌아보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는 공주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화가 잔뜩 섞여 있었다.


"따라오지 마시라구요!"


회생의 사당에서 나를 깨우던 그 목소리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전에 찾았던 기억 중에서, 비오는 날 내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던 젤다 공주의 모습과도 일치하지 않는 모습...  하하... 기억을 되찾으니 오히려 웃음이 나오네...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공주의 태도가 껄끄러웠지만... 그 이후, 나는 아마도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젤다 공주를 따라다니고 호위하는 데만 신경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당시에 왜 .. 내게 그렇게 짜증과 화를 냈을까? 조사하던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아서? 자신의 생각과 실제 유물은 달라서? 내가 젤다 공주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는 게 싫어서? 하이랄 왕에게 이런 저런 보고를 할까봐?



나는 잠시동안 그 일과 연관된 다른 기억이 있는지 돌이켜 보았다. 당시에 호위를 했어도 하이랄 왕에게 젤다 공주의 이런 저런 일을 보고한 적은 없었다. 그저, 젤다 공주를 호위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고 하이랄 왕은 내게 보고하기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딸이 안전하기만을 바란 로암 왕....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나는 갑자기 전혀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 젤다 공주. 혹시 나를 싫어했던 건가? 나라는 사람이 싫었던 것은 아닐까?

왜, 주는 것도 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이유로 내가 싫었던 걸까?


젤다 공주의 호위를 맡게 된 시절, 내 주변 기사들은 나를 은근히 견제했다. 나와는 관계 없었지만, 나의 행동이 부풀려져서 이상한 소문으로 돌고 있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말을 아꼈고, 다른 사람들과는 어울리는 일을 삼갔다. 그럴수록 오히려 나를 더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것을 깨달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미움받는 건 익숙했으니까 젤다 공주가 나를 싫어했다 해도 별 일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젤다 공주의 다정한 목소리를 떠올려 보면 ... 왜인지 알 수 없다. 왜지? 젤다 공주가 당시 나를 싫어할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있다면 그게 뭘까....


그러면서 나는 왜 이것에 마음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네가 정말, 미움받는 데 익숙하다면... 상관 없지 않나? 젤다 공주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왜 중요하지?


당장은 답을 알 수 없는, 스스로에게 드는 의문....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시간이 꽤 지나 있었고, 눈앞에는 아직 극복하지 않은 사당이 서 있었다. 나는 그저 터벅터벅 걸어 사당으로 가 시커 스톤을 갖다댔다.


열린 사당의 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젤다 공주에 대한 나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신수를 다시 되찾으라는 본연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마음에 다시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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