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44)
그렇게 들어갔던 티나.쿄자의 사당은 '힘의 시련 상급' 사당이었다. 가디언 중에서도 파워와 체력이 가장 센 것과 대결해야 하는 사당... 전투에 힘껏 임하다 보면, 복잡하고 꼬인 것 같은 생각은 날아간다.
무기를 2개 다 쓰긴 했지만, 이전에 다른 사당을 깨다가 얻은 '뇌전의 검' 덕분에 비교적 쉽게 끝낼 수 있었던 전투였다. 사당 가디언들은 특히 전기나 불의 공격, 고대의 돌기둥에 부딪히거나 하면 약점이 많이 드러나는 편이어서 이번에도 그런 부분을 열심히 활용했다.
극복의 증표를 얻고 언덕을 넘어가니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새가 자꾸 눈에 밟힌다. 전보다는 가까이서 보니 그냥 새가 아니라, 누군가 만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것... 신수겠지? 저것이 만약 신수라면... 이 주변에 신수와 관련된 마을이 있겠지. 하지만 마을은 방문하기 전엔 지도에 표시되지 않으므로, 마을처럼 보일 지형을 잘 찾아보는 게 관건이었다.
길을 가다 풀이 수북히 자란 곳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풀을 베었다. 풀을 베다 보면 원기메뚜기가 잘 튀어나오고 고고도마뱀도 자주 보이므로 여행 중간 중간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지역은 원기메뚜기가 잘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풀을 베다 보니 기대하지 않은 식량이 펑- 등장했다.
'타반타 밀'이라고 하는 그 새로운 요리 소재는, 여기저기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 나올 때마다 잘 챙겼다. 그렇지만 원기 메뚜기가 너무 안 나와서 답답했다. 풀이 이렇게 많이 자라는데, 메뚜기는 왜 없지?
산등성이를 넘어가다가, 아주 독특하게 생긴 바위를 보았다. 바위의 윗부분은 마치 새 머리처럼 생겼다... 신기하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바위 주변에 뭔가 집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흠... 망원경으로 다시 보니 역시 그냥 바위는 아닌듯해 보였다. 저곳이 혹시 마을인가?
당장 건너가서 확인해 보고 싶지만, 주변에는 연결된 다리도 없고 해서 건너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 생각하고 지도를 열었다. 지도상으로는 저 마을로 가는 길은 내가 서 있는 곳과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것 같아서 그쪽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움직였다.
가다가 보니 비행 훈련장이라는 팻말과 설산 등산로라는 팻말이 교차되어 있는 걸 보았다. 비행 훈련장...은 지금 가볼일이 없고, 설산 등산로? 지도를 다시 보니 설산 등산로 방향이 내가 가야 할 쪽이었다. 그런데, 왠지 '설산'이라는 말이 걸렸다. 설산이면 눈이 내린다는 거 아닌가? 여긴 아직 안 추운데... 저기만 넘어가면 눈이 내린다는 거야? 설마...
하지만 그 설마가 맞았다. 조금 더 산비탈을 내려갔더니 바로 눈이 쌓인 지역과 연결된다! 내가 하이랄 사람이기는 하지만, 정말 하이랄 왕국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급격하게 기온이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인가...
뭐, 춥다면 일단은 방한복을 입어야지 싶어서 가지고 있는 방한복을 입고 눈이 쌓인 곳으로 뛰어내려갔다. 그런데....
그렇게 입었음에도 불구, 추위는 극복되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방한복은 1단계 방한복이라 그 이상의 추위는 버틸 수 없다는 시커 스톤의 경고 알림이 떴다. 지금부터는 추위에 생명력이 소진된다는....!!! 뭐라고???
주머니를 열심히 열어 따끈따끈초 관련된 음식이 있나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진작에 모두 먹어버렸지.. 그래.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어.... 아... 이럴 줄 알았으면 하나라도 요리를 해 두는 건데.... (이럴 줄 알았나?)
생명력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어서, 급하게 아무 요리나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이 지역을 벗어나는 방법밖에 없다고 속으로 외치며 눈길을 지나가는데... 외딴 지역임에도 불구, 통나무집 하나가 구석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여긴 임시 조난 쉼터 같은 곳인가? 아니면 사람이 사는 곳인가? 시커 스톤의 알림에는 그저 '헤브라 산맥 등산로의 집'이라고만 되어 있는데... 하지만 지금 얼어죽기 일보 직전인 이상 체면 따위는 없었다. 나는 얼른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 정말 감사하게도 집안은 따스한 온기가 돌았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벽난로에는 요리 냄비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엔 불이 지펴져 있었다. 게다가 집안 구석구석엔 마른 장작과 더운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식재료도 있었다. 나는 여신님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일단 가지고 있는 요리와 이곳의 재료를 섞어 방한 요리를 몇 개 만들었다.
요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책상 위에 책이 하나 펼쳐져 있었다. 무슨 내용인가 살펴보니, 일종의 안내서였다. 작성자는 '눈의 여왕 셀미'라고 한다. 셀미? 처음 들어보는데... 어쨌거나 이 산맥의 집은 일종의 피난소로, 갑작스럽게 헤브라 지역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미처 추위에 대비하지 못했을 때 긴급으로 사용할 소재들을 모아 둔 곳이었다.
셀미의 설명에 의하면, 헤브라 지역은 추위 대비 없이 방문했다가는 '사망하는' 곳이라고 한다. 죽을 각오로 준비를 하지 않고 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이와 같은 피난소를 마련했다고....
셀미님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에게 고마운 표시를 한 사람은 나 뿐만은 아니었다. 이 피난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메시지를 뒤편에 적었는데, 어떤 사람은 자신이 쓰고 남은 것을 두고 간다고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나는 잠시 쉬었다가, 방한 요리를 먹은 후에 다시 밖으로 나가 목표 지점으로 향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추위가 더욱 매섭게 느껴졌지만 셀미님 덕에 마련한 요리가 추위를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산악 지대인지라 눈이 내린 곳을 오르락 내리락 하려니 미끄러워서 조심해야 했는데, 몬스터들 역시 곳곳에 출몰하여 전투를 피해가긴 어려웠다. 그래도 불의 화살과 화염의 양손검이 있어서 설산에서의 전투도 비교적 어려움 없이 극복해 나갔다.
눈이 쌓인 곳을 지나 다시 푸릇푸릇한 풀이 돋은 산으로 들어오니 언제 추웠냐는 듯이 온도가 확 올라갔다. 마침 도착한 곳은 '리토의 마구간'. 역시 오랜만에 보는 마구간이라 반갑기도 하고 안도의 마음도 들었다.
마구간 입구에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카시와가 있었다. 카시와는 고대의 노래를 전하는 리토족 음유 시인이다. 그 역시 나를 바로 알아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전해왔다.
"아아, 또 만났군요. 잘 지내셨습니까?"
"그러게. 오랜만이네."
카시와는 이 지역에는 처음이냐 물어보더니 주변 설명을 좀 더 해 주었다.
"이곳은 저의 고향 리토의 마을과 가까워 절로 향수에 젖게 되는군요. 마을에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 두고 와서......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아? 카시와는 자신의 가족이 있구나... 그런데 이렇게 멀리 떠나 계속 여행을 하고 있다니.... 놀라는 나에게 카시와는 자신의 결심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저는 스승님과의 약속을 지킬 때까지 마을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약속?"
그 약속이 뭔지 궁금했지만, 그는 내게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야기 해 줄수 있을 거라 했다.
"그건.... 죄송하지만 지금은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고대의 노래를 전부 전할 수 있게 되면.....제 고향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지요."
그리고는 다시 내게 묻기를, 고대 용사에 관한 노래를 듣겠냐고 물었다. 카시와의 노래는 들어서 나쁠 것은 없었기에 흔쾌히 청하여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들려준 노래는, 임파가 내게 해 준 만년 전의 역사 이야기와 같았다. 고대 병기의 도움에 힘입어 신성한 힘을 가진 공주와 퇴마의 검을 지닌 용사가 재앙을 물리친다는...
카시와의 노래를 듣고, 마구간 입구를 청소하는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손님이신가요?"
"맞아요."
안그래도 숙박을 하고 갈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님이라 했는데, 이 직원은 손님이라고 하자 마구간 소개를 해 주었다.
"이곳은 리토의 마구간입니다. 참고로 리토라는 건 저기...."
그녀는 마구간 건너편을 가리켰다. 건너편에는 내가 이쪽 지방으로 넘어올 수 있게 해준 이정표나 다름없는 독특한 바위탑이 자리잡고 있었다.
"저쪽에 높은 탑이 보이지요? 저쪽에 사는 리토족에게서 이름을 따왔어요."
그렇구나! 저 특이한 바위에 누가 살고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래서 카시와가 자신의 고향과 이 마구간이 가깝다고 했구나... 정말 다리 하나만 건너면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지척인데...
그간 요리를 많이 소진했으므로, 여기서 요리를 할 필요가 있어서 마구간 앞 솥으로 갔다. 배낭을 꼼꼼하게 꾸려 매고 있는 한 여행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설산등반을 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리토의 마을 북쪽에 있는 헤브라 산맥은 준비를 안 하고 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형씨도 조심하라고 하기에 그러겠다고 대답하고는, 그들이 신경쓰던 말던 여러가지 요리를 했다.
신나게 요리를 하고 나서 시간을 보았다. 저녁나절이 되어 노을이 아름답게 물드는 시각이었다. 마을이라면 그곳에도 여관이 있을 터. 리토의 마을에 바로 들어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자, 그럼 출발이다! 기합을 넣고 새로운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의 경사가 생각보다 깊었다. 이 다리가 없었다면, 리토의 마을은 아무나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약간 출렁거리는 다리를 건너 올라가는데, 리토족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가볍게 인사를 하자, 그는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마을로 들어가다 인사를 하니, 그는 뭔가 일이 있다 생각했는지 자신에게 볼일이 있느냐 물었다.
"무슨 용건 있으십니까?"
용건이라기 보다는... 음... 그냥 리토족이 궁금했을 뿐이라... 약간 당황했다.
"저.. 그저 당신이 누구신지... "
어찌보면 초면에 실례인지 모르는 질문이었지만, 그 리토족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저는 리토족 기잔이라고 합니다."
"리토족...."
내가 리토족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인 걸 알아챘는지 그는 리토족에 대해 알려주었다.
"남자는 활에, 여자는 노래에 강하며 리리토토호에 사는 소수민족... 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당신이 하일리아인이니 이 정도는 알고 계실줄 알았습니다만...."
약간 민망했으나, 그래도 기잔은 개의치 않고 내게 마을에서 머물다 가라고 권했다.
"모처럼 여기까지 오셨으니 마을에 들렀다 가십시오. "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다리를 건너기 위해 올라갔다. 그때였다. 커다란 진동이 느껴지며 다리가 크게 흔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낮추었다.
어디서 이런 굉음과 진동이? 사방을 살피니 하늘에서 '끼이----' 하는 울음 소리가 들렸다. 하늘을 바라보니 그 어마어마한 새가 소리를 내며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늘의 그 새가 일으키는 바람은 대단했다. 이정도 가까이 있으니 자세히 볼 수 있을까 싶어, 망원경을 꺼내 올려다 보았다.
양쪽으로 활짝 펼친 날개가 있고, 두 발이 있으며, 부리 부분이 특히 길게 나온 걸로 봐서 영락없는 새 모양이 맞았다. 아마도 저것이... 신수겠지? 이곳이 리토의 마을이라면... 그런데 이 신수도 문제를 일으켰던 바.루타처럼 여기저기에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가논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시커 스톤을 켜서 다시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임파가 말한 나머지 3곳의 부족 마을 중 하나는 여기가 맞다. 그렇다면 제대로 찾아온 셈이군...
다리를 건너 이제 뾰족한 나뭇잎들이 하늘들이 찌르듯 자라고 있는 작은 숲속으로 들어섰다. 시커 스톤에 '리토의 마을'이라는 알림이 떴다. 이제부터 이 마을에 생긴 문제는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신수에 들어가려면 저렇게 높이 날 수 없는 나는,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할까?
생각할 것은 많았지만 - 일단은 부족장이 누구인지 알아보기로 하고 마을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