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49)
시커 스톤을 가이드 스톤에 인식시켰다. 시커 스톤 인증 알람이 울리며, 워프 지점이 등록되었다.
그런데 워프 마크가 파랗게 물들자 리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익숙한 얼굴이군…“
앙칼진 듯 비꼬는 듯한 말투는 여전했다. 하긴, 영혼으로 존재할테니 변한다면 말이 안 되겠지?
“뭐, 네가 여기에 올 거란 생각은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100년은 너무 길잖아."
아무리 그래도 100년은 너무 길었다고? 흣. 그래도 나를 기다렸다는 건가….
그는 확인하듯 내게 물었다.
“가논에게 빼앗겨 버린 메도를 되찾으러 온 거지?”
시커 스톤에 떠오른 내부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도의 조종을 하려면 역시 내부 구조가 담긴 맵부터 손에 넣어야 했다. 모든 신수는 형태나 안의 구조는 달라도, 기동 장치를 인식시켜야 하는 시스템만큼은 같은가 보다. 리발의 설명도 미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그 특유의 빈정거림만 뺀다면!
"그러면... 우선 내부 구조가 담긴 맵을 손에 넣어 봐. 저게 맵 정보가 담긴 가이드 스톤이야. 저기까지 갈 수 있으려나?"
리발의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그래, 갈 수 있다. 어디 지켜보라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바로 가이드 맵을 찾아 나섰다.
신수 바.메도는 바람의 힘을 쓰는 리발의 신수답게 여러 통로를 통해 바람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상승 기류를 타고 올라가야 하거나, 혹은 흐르는 바람의 힘을 이용해 기동 장치를 찾아야 했다. 거기다 중간 중간 원념의 눈이 숨어 있어서, 조심하여 다녀야 했다는 건 덤이다.
바람의 힘으로 상승 기류를 탈 수는 있었지만, 스테미나 부족으로 원하는 위치까지 가기가 어려웠다. 정말 여러 번 시도했는데... 중간 중간 놓여져 있는 보물 상자에서 아이템을 얻으면서 미니 가디언과 싸우고 나니 가이드 맵까지 갈 수 있었다.
가이드 맵을 받고 나자, 이제 메도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비틀면서 날 수 있게 되었다. 거기까지 가자, 다시 리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수 맵을 구했으니 이제 기동 장치를 찾아야 메인 기동 장치를 가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리발은 이러한 내용을 알려 주면서, 역시나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후후, 못 하겠단 소리는 안 하겠지?"
그래.. 네 말대로 날개도 없는 하일리아인인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못하겠다고 할까? 어림도 없지. 신수 바.메도는 곧 되찾게 될 거야!
나는 리발의 비아냥거림은 신경쓰지 않고 신수 내부의 기동 장치 4개를 찾았다. 제어 단말 4개 찾기는 신수 바.루타보다 어렵지 않았다. 루타가 코끼리여서 좀 오르락 내리락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메도 내부와 외부는 바람을 잘 타면서 패러세일 컨트롤만 잘 해낸다면,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제어 단말을 기동시키자 리발은 '꽤 한다'는 말을 했다. 그도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면서, 빨리 메도를 되찾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꽤 하는군! 제어 단말은 이걸로 끝이야! 메인 제어 장치를 기동시킬 수 있게 되었어!"
리발은 내게 지도를 보면서 메인 제어 장치로 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아직 안심하진 말라고.." 라고 말했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메인 제어 장치를 기동시키면.. 커스 가논이 나올 테니까... 이번에는 어떤 커스 가논일까?
신수 바.메도의 메인 제어 장치는, 테바와 함께 메도로 와서 베리어를 걷어냈을 때 봤던 - 메도의 등 부분 가운데에 있었다. 평평한 날개 위에는 바람이 나오는 구멍도 여럿 있었는데, 그 가운데 봉오리같은 메인 제어 장치가 있었다.
흠... 이정도 높이에 바람도 상당하고.. 추위도.... 어마어마하군! 시간은 이미 저녁 나절이었다. 전투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을 것 같아 나는 찬 공기를 가르며 메인 제어 장치로 다가가 시커 스톤을 인식시켰다.
예상하던 대로 봉오리에서 원념의 매케한 기운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그 사이로 살기가 흘렀고, 그 덩어리는 내 앞 공중에 뭉치더니 여러 덩어리로 나누어졌다. 각각의 덩어리는 고대 병기의 모습으로 속속 실체를 드러냈는데...
그렇게 나타난 것은 오른손 대신 포탄을 쏘는 병기를 장착하고, 역시 다리가 없이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바람의 커스 가논' 이었다.
바람의 커스 가논이 포효하며 내 앞에 서자, 리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조심하는 게 좋을걸? 100년 전에 내가 방심하는 바람에 가논이 만든 그 녀석에게 당해 버렸거든."
리발은 그 전투가 다시 생각났는지... 내게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는 전혀 의외의 말을 했다.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복수를 부탁해!"
리발... 그의 자존심에 차마 말할 수 없을 말... 그래, 이젠 이해할 수 있다. 말하기 싫어도 네 입으로 내게 해야 할 말... 그리고 그만큼 네가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은 바람의 커스 가논의 퇴치구나! 나는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바람의 커스 가논의 공격 형태는 뭘까? 일단은 녀석의 첫 공격을 기다리는데 리발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녀석의 사격은 정확해! 조심하도록 해!"
리발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람의 커스 가논은 오른손의 포를 들어서 연속 난사를 했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따라서 포를 쏘았지만, 리발의 말대로 그렇게 정확하지는 않았다. 흠... 뭐지? 100년동안 바람의 커스 가논도 잠자고 있어서 감각이 떨어졌나?
주변에는 부서지기 일보직전으로 보이는 돌기둥들이 여기 저기 서있는데, 그 뒤로 가 있었더니 일절 공격의 여파가 없었다. 커스 가논은 나를 공격하지 못하자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는데, 나 역시 기둥 뒤에서 나와 커스 가논이 어디서 나타날지를 열심히 보았다. 그러다 상승 기류가 나오는 바람 구멍에 섰을 때였다. 내 바로 눈앞에서 다시 형태를 만드는 커스 가논을 보고, 나는 패러세일을 펼쳤다.
공중에 올라가 활을 들고 커스 가논에게 폭탄 화살을 날렸다. 한방만 맞았을 때는 별 데미지가 없어보여서 연속으로 2번 폭탄 화살을 날렸더니, 바람의 커스 가논은 땅으로 떨어졌다. 리발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이 기회야!"
나는 빠르게 뛰어가서 커스 가논에게 창 찌르기를 연속으로 넣었다. 커스 가논은 체력을 잃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커스 가논이 어디서 나타날지는 몰랐지만, 두번째 공격도 역시 공중에서 활로 공격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 바람 통로로 달렸다.
바람을 타려고 환풍구 위에 서 있는데, 커스 가논이 눈앞에 다시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패러세일을 펼쳐서 공중으로 떠올라 화살을 쏘았다. 폭탄 화살을 다시 연거푸 쏘자 커스 가논의 체력이 급 떨어졌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질 줄 알았던 커스 가논은 자신의 형태를 다시 바꾸기 위해 몸을 감추더니 메인 조절 장치 앞으로 돌아가 나타난 후, 새로운 공격 패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커스 가논의 머리 뒤쪽에 솟아 있던 4개의 뿔이 공중에 날아오르더니, 삼각형 형태의 에너지 그물을 만들었다. 리발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사각에서도 공격이 와! 조심하도록 해!"
사각이던 아니던, 커스 가논에게는 화살이 정답이라 생각한 나는 가장 가까운 바람의 환풍구를 찾아 공중으로 올라갔다. 포탄 트라이앵글을 피하면서 폭탄 화살을 쉬지 않고 계속 바람의 커스 가논에게 겨누어 쏘자, 커스 가논은 그대로 맞더니 그 형태를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원념이 바람의 커스 가논에게서 흘러나와 사라지더니, 커스 가논은 형태를 지탱하지 못하고 보라색 빛과 함께 폭발하고 말았다.
휴... 끝났다...
이제 메인 제어 장치만 가동시키면, 메도도 다시 되찾게 된다. 생명의 그릇이 내게 날아왔으므로 그것을 받은 후, 나는 시커 스톤을 가져다가 제어 장치에 갖다 대었다.
붉은 빛의 메인 제어 장치는 푸르게 변했다. 고대 가마에서 피어오르던 푸른 불꽃처럼, 에너지가 그 봉오리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리발이었다.
"오호, 정말 쓰러뜨린 거야?"
"왠지 분한데....."
의외로 굳은 표정을 하고 내게로 다가오는 리발이었다.
그렇지만, 이내 그는 표정을 좀 풀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뭐...... 덕분에 내 영혼도 해방되고 메도도 되찾았어. "
그리고는 슬쩍 웃었다. 리발이 이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본다. 나를 바라보며 그는 리발다운 소리를 했다.
"너 치고는 꽤 분발했는데?"
리발은 내게 상으로 자신의 능력을 전수해 주겠다고 했다. 리발이 평소에 스스로 자랑해 마지 않던... 상승 기류를 발생시키는.. 까마득히 먼 하늘로 순식간에 오를 수 있었던 그 힘....
"상으로 내 능력을 전수해 주지! 상승 기류를 발생시키는 힘!"
그는 날개를 활짝 펼치며, 자신의 기술을 끌어냈다.
"이름하여 리발의 용맹을!"
리발은 자신의 힘을 모아 하나의 둥근 에너지원으로 응축해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그 뭉쳐진 용맹을 내 가슴께로 밀어 보냈다.
리발의 힘을 받은 나의 몸은 둥실 떠올랐고, 그가 보낸 바람이 내 몸 전체를 감싸안았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사람의 몸을 아주 손쉽게 띄우는, 대단한 바람이었다.
그의 기술을 받았다가 다시 땅에 내려온 나를 보더니 리발은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이제 나는 이 메도를 이동시켜서 가논을 공격할 준비에 들어갈 거야."
그리고는 순순히 나를 돕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 정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던 리발... 하지만 그는 리토를 대표하는 전사로써, 영걸로써 100년 전에 하지 못했던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것이다.
"네가 하이랄 성에서 녀석과 싸울 때 돕기 위해서 말이야..."
그는 나를 바라보며 나니까 해준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하도록 해......!"
큭... 나는 왠지 웃음이 나왔지만 참았다. 그래. 그래야 리발이지.
사실 고마웠다. 그가 내게... 자신이 평생 갈고 닦아 만들었다는 그 기술, 리발의 용맹을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재앙 가논 토벌에는 진심인 전사라는 것....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런 것은 상관 없었다. 리토의 전사로, 그는 충분히 추앙받을 능력을 지녔던 전사... 그리고 우리는 뜻을 함께 하는 동지다. 그의 복수를 내가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리발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나는 늘 리발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발밑에서부터 조금씩 빛이 나타나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이별의 시간이 온 것이었다.
"그럼 이제 가 봐... "
빛에 둘러싸여 점점 사라지는 나를 보며, 리발은 내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
빛이 내 모습을 거의 감싸서 나는 리발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리발의 목소리는 내게 울려왔다.
"그 공주는.... 널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리발은 내가 메도 위에서 사라지자마자, 바로 메도를 출격시켰다. 메도는 다시 포효하며 고도를 점점 낮추었다. 그러더니 그 큰 날개를 펼치며 리토의 마을 꼭대기 바위에 안착했다.
메도는 바위 위에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더니, 튀어나온 부리 앞 부분에 에너지를 집결시켰다. 고대 시커족이 누렸던 문명 속에서 개발된, 마에 대항하는 힘... 그 붉은 빛이 부리 앞에서 번쩍 빛나더니 하이랄 성 방향으로 곧장 날아갔다.
리발은 메도 머리 위에 있었다. 그도 메도와 함께 하이랄 성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메도... 조준을 마쳤구나. 이곳에서 가논을 계속 지켜보며...... 녀석이 싸울 때 가논에게 강렬한 한 방을 먹이는 거야. 그때까지 힘내 줘...."
그는 마치, 가논과 나의 전투가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다는 투로 말했다.
"뭐, 너와 나는 100년이나 이 시간을 기다렸으니... 조금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의 반대편에서는 바.루타가 보내는 조준의 불빛이 보였다. 그것을 바라보던 리발은... 조금은 씁쓸한 듯이 중얼거렸다. 내 귀를 의심할 만한 소리였다.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겠는데......"
"녀석은 날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 신수까지 와서......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냈어......"
"분하지만... 완패다...."
우리는 1:1로 제대로 싸워 본 적도 없었지만, 그는 완패라고 했다. 자신이 해내지 못한 일을 내가 해냈다는 것만으로 말이다.
"링크.... 너야말로 우리들의 핵심이다..."
리발은 그렇게 마지막으로 나를 인정하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내 앞에선 절대 하지 않을 말이겠지. 어쩌면 리발은 자신의 중얼거림을 내가 듣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지만... 솔직한 리토의 전사였다. 이기겠다는 투지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고매한 정신을 지녔다. 그런 그가 나를 인정하다니…진심으로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빛이 점점 사라지면서 시야가 밝아지고 있었다. 리토의 마을에 서 있던 뾰족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리발 광장에 서 있었다. 저 멀리, 신수 바.메도가 내뿜는 빛이 내 눈에도 띄었다. 저 위에.. 리발의 영혼이 머물고 있겠지..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리발에게 마음속으로 경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