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첫 애를 낳아 며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냉장고에 식재료가 거의 없는 상태였는데 어머님이 그 텅텅 빈 냉장고에서 계란과 김으로 김계란말이를 예쁘고 맛있게 해오셨어요. 제왕절개 수술로 첫째를 낳았던 터라 배도 아프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참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지? 대단하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그 딸이 19살이 되었습니다. 집밥 20년 차가 되니 저도 자연스레 이 능력이 생겼어요.
계속 냉파를 해서 이제 냉장고가 텅텅 빈 것 같은데도 다시 또 그 안에 마지막 남아 있는 식재료들로 떡볶이를 만들고 김치볶음밥을 하고, 된장국을 하고 있어요.
물론 떡볶이에는 어묵 대신 조금 남은 양배추와 팽이버섯이 들어가고, 된장국엔 두부가 없지만 20년 집밥의 내공으로 간이 딱 맞으니 아주 식구들이 폭풍흡입을 합니다.
셀 권사님께 원추리나물을 2주 전에 받았습니다. 처음 보는 거고 독성이 있다고 해서 이 주째 냉장고 야채칸에 넣어 놓고 있었는데 첫째가 오랜만에 된장국 먹고 싶다는 소리에 얼른 꺼내서 데치고 찬물에 담가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와~ 진짜 식감도 좋고 시원하니 맛있었습니다.
작년 봄까지는 제가 신랑과 장을 같이 봤는데 볼 때마다 늘 그득그득 식재료와 간식을 사 왔습니다.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장 보러 가는 것도, 가서 무엇을 살지 결정하는 것도 불가능해지자 착한 신랑이 혼자 장을 봐 오기 시작했어요. 이제 회복되어 같이 장 보러 갈 수 있는데 신랑이 혼자 보겠다네요. 혼자 휘리릭 간단히 장 보고 오는 게 좋다고요.
신랑이 장을 봐 오면 식재료가 그렇게 많지 않고 늘 비슷비슷합니다. 목살 1근,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소고기 1근, 숙주 이 정도 식재료에 과일과 간식을 사 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이 식재료들로 어찌어찌 잘해 먹고 삽니다. 식사량이 아주 많지 않아 가능한 것 같습니다.
목살 1근으로는 야채 가득 넣어서 제육볶음 한 끼 해 먹고, 조금 남은 고기와 팽이버섯 넣어 김치찌개를 끓여 또 두 끼 정도를 해결합니다.
소고기 1근은 2/3는 우선 버터 넣어 구워 먹고, 나머지 1/3은 계란, 김자반, 굴소스 넣어 소고기볶음밥으로 변신하여 다음 날 먹습니다.
숙주는 보통 소고기 구워 먹을 때나 볶음밥 할 때 함께 볶아 먹습니다. 숙주나물만 맛있는 줄 알았는데 볶은 숙주도 아삭하니 맛있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벌써 7일 중 5일 저녁식사가 해결이 됩니다.
아침은 해독주스, 요플레, 꿀떡, 과일 정도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점심은 학교와 직장에서 먹으니 평일에는 하루 1끼만 차리면 됩니다.
나머지 이틀 중 하루는 주로 김치볶음밥이나 비빔밥을 합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점심은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저녁은 배달음식을 활용하여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거나, 남은 반찬으로 개운하게 조금 먹고 끝냅니다.
장을 보러 가기 전 날 저녁이 되면 냉동실도 냉장고도 텅텅 빕니다. 그래도 계란 정도는 있지만 계란까지 없을 때에는 ‘아~ 집 바깥으로 나갈 수 없거나, 온라인 장보기가 불가능한 위기 상황이 오면 우리 집은 주구장창 김치와 밥만 먹어야 되겠네’ 위기의식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족 모두 좋아하는 간식선반도 텅텅 빕니다. 라면까지 하나도 없을 때에는 둘째가 계란을 삶아 달라거나 김치전을 해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해요.
친정엄마는 저희 집 냉장고를 부러워하시며 엄마 집 냉동실에 있는 식재료, 다진 마늘, 쪄서 얼려놓은 옥수수 등을 저희 집 냉장고에 가져다 놓고 싶다고 하기도 하세요.
블로그에는 같은 날 제가 쓴 모든 글을 ‘지난 글 보기‘라는 탭에서 볼 수 있어요. 제가 장을 무엇을 봤는지, 어떻게 식단을 짜서 집밥을 해 먹었는지에 대한 이전 글을 읽게 될 때가 자주 있는데 정말 잘 먹고살았더라고요. 그때가 지금보다 훨씬 빚이 많고 경제적으로 힘들 때였는데도 식비 절약의 대한 감이 없었나 봐요. 요즘 식단과의 비교를 위해 2023년 12월 23일 저의 이주일치 식단을 공개합니다. (그때는 한 번 장을 보면 이주일치씩 봤어요.)
12.24 (일) 대패삼겹살 숙주볶음, 갈비탕
12.25(월) 양념꼬막, 토마토미트볼스파게티
12.26(화) 유부초밥
12.27(수) 카레여왕 카레
12.28(목) 갈비탕, 새송이버섯구이
12.29(금) 계란말이, 미트볼조림
12.30(토) 삼겹살구이, 파프리카, 배달음식
12.31(일) 두부부침과 김치볶음
1.1(월) 사골떡국, 떡갈비
1.2(화) 열무비빔밥과 계란프라이
1.3(수) 김치볶음밥
1.4(목) 미트볼조림
1.5(금) 라볶이
과자, 빵과 같은 간식을 안 사면 몸에도 좋고 식비 절약에도 좋겠지만 신랑도, 저도, 두 딸도 모두 좋아하니 아직은 줄일 수 없네요. 찐 절약가 분들은 아예 간식을 안 먹거나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