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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재발 치료 10주 차

by 소망이

써 놓았던 글을 부지런히 글 발행 요일과 상관없이 발행했어요. 만약 제가 그러했듯이 현재 우울증 증상으로 힘들어하시거나 재발하여 절박하신 분이 제 글을 읽고 계시다면 약을 꾸준히 먹으면 낫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궁금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현재 시점에서 현재 상태를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미리 쓴 글을 몰아서 발행하는 것은 어렵겠네요. 이제는 한주가 지나야 한주동안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우울증 재발 치료 만 9주를 채우고 10주 차를 시작하기 하루 전날입니다. 어느덧 두 달 반 약을 먹었습니다.


현재는 약을 먹을 때, 그리고 선생님들이 안부인사를 할 때 ‘아~ 나 우울증 재발해서 약 먹고 있지.’라고 생각할 뿐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아직 신경안정제 아티반정은 계속 먹고 있으며, 잘 잔다고 해도 여전히 1~2번은 깨서 화장실에 다녀오곤 합니다. 이 증상은 우울증이 없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업무도 편안하게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식사 시간에 나누는 대화도 이제는 편안해졌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친정엄마 생신축하를 저희 집에서 하기도 했습니다. 숙주나물 하나 무치는 것도 힘들어 못하던 제가 등갈비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양념을 사고, 등갈비 핏물을 빼고, 데치고, 양념 넣고 요리하는 것을 넉넉히 해냈습니다. 저의 우울증 소식을 듣고 많이 아파하고 기도해 주시던 친정엄마가 저의 얼굴을 보고 기쁜 나머지 우시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기뻐하기만 하셨습니다.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즐겁고, 우울증 외에 일상이야기를 찾아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미디어 다이어트‘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의 뇌가 일반인보다 자극에 취약하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생각해 보니 테트리스 게임이 처음 나와서 제 또래 친구들이 모두 그 게임에 빠져있을 때 저도 한번 한 적이 있는데, 그날 자려고 누웠는데 계속 테트리스 조각이 내려와 맞추느라 잠을 설쳤었네요.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간, 퇴근 후 집안일을 마치고 자기 전까지의 시간에 늘 드라마를 보거나 핸드폰 스크롤링을 했었는데 요즘은 종이책을 읽거나, 멍을 때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두 딸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확실히 자극의 강도가 순해지니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머리가 맑은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 드라마를 열정적으로 볼 때에는 책을 읽어도 금방 집중력이 흩트러지곤 했는데, 미디어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다시 책이 재미있고 몰입이 됩니다. 벌써 몇 권의 책을 완독 했습니다.


고3, 초6 두 딸은 엄마가 드라마 보기나 글 읽기에 열중해 있지 않고, 그냥 있으니 신나서 자잘 자잘 소소한 학교이야기와 친구 간의 이야기를 말해주네요.


참, 브런치에 들어오는 횟수도 줄이니, 가끔 들어올 때마다 새로 올라온 작가님들의 글이 더 잘 읽히고, 음미하게 됩니다.


아직 약은 그대로이지만, 의사 선생님이 줄여주실 때까지 저는 줄여달라고 입도 벙긋 안 할 겁니다. 우울증은 처음 겪어도, 두 번 겪어도, 세 번 겪어도 늘 많이 힘든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겨울이 올까 봐 속상했는데, 추워지던 날씨가 요즘 다시 따뜻해져서 마음껏 선선한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고 선생님들과 운동장 한 바퀴를 돌며 나누는 대화도 좋고,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과 만나는 것도 좋습니다.

이 감사하고 좋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하는 그 마지막 날까지 약은 계속 먹을 생각입니다.


제 글을 지금 읽고 계시는 모든 분들과 조금 남은 이 가을 아픔이 살살 흐릿해지시길, 회복을 느끼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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