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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재발치료 9주 차

by 소망이

큰 딸과 병원 가는 주차를 맞추려고 15일 치만 처방받았더니 금방 다시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 왔어요. 저는 다시 원래의 나, 편안한 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잘 먹고, 잘 자고, 편하게 일하고, 즐겁게 대화하다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큰 딸은 본인의 여러 가지 중대한 일들로 조금 더 많이 불안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로 갔어요.


큰 딸은 약이 증량되어 프록틴캅셀 10mg이 추가되었고, 저는 7주 차에 갔을 때와 동일하게 처방받아 왔어요. 둘 다 4주 치씩을 받아왔습니다.

둘이 합쳐 진료비 14,000원(한 명당 7,000원), 약 22,900원 총 36,900원 들었습니다.


다행히 날이 많이 춥지 않아서 오고 가는 길이 산책길 같았습니다. 진료 끝나고 병원 근처 베이커리에서 서로 좋아하는 빵 한 개씩 골라 따뜻한 우유와 함께 맛있게 먹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떤 특정한, 강력한 사건이나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책임져야 하는 일이 늘고 업무 부담이 커져서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해소는 못하고, 거절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해서 발병한 우울증이라 그런지 항우울제를 먹으니 매주 정말 10퍼센트씩 좋아져 거의 제가 아는 원래의 저로 돌아왔는데, 큰 딸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누적되어 온 다양한 사건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을 너무 늦게, 공황장애까지 겪고 난 후 치료해서 그런지 만 1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온전히 회복되려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병원 가기 전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도 수시로 하고, 감정도 전혀 못 느끼고, 무기력하고, 뇌의 집중력도 없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없는 상태였는데 그래도 지금은 화나면 화낼 줄 알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집중력도 돌아와서 다시 본인의 미래를 위해 걸어가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다시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은 4주 후인 11월 29일 토요일인데, 그날은 친정엄마 김장하시는 날이라 함께 해야 해서 그 전날 갈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그때 즈음에는 우리 큰 딸도 조금은 더 마음이 편안해져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이번 브런치의 글들을 꾸준히 읽어가시며 여러 가지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부디 본인을 위한 건강한 선택을 하시길 소망합니다. 저도 다시 병원 진료받으러 가기 전 시간들에 저를 위하여 좋은 일을 하나 실천해 볼까 합니다.


바로 <미디어 다이어트>입니다.

‘회복탄력성의 뇌과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고 피곤하면 영상을 몇 시간씩 보며 멍 때리고 싶고, 그러면 쉬는 것 같지만 사실 뇌는 계속 피곤한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 거라는 내용이 나오네요. 제가 취미가 독서였는데 작년부터 독서 대신 넷플릭스 미드 보기로 취미가 변경되어서 주말이면 주야장천 자막 없는 미드를 봤거든요. 제가 원어민도 아닌데 그 영어를 계속 들으며 내용 이해를 하려 노력하니 제 뇌가 쉴 수 없었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한 아무래도 미드니까 사람들 간의 다툼, 갈등, 비극적인 사건 등 정서를 자극하는 슬프거나 무섭거나, 고민되는 내용들을 계속 접하며 저의 감정도 같이 혹사당했던 거더라고요.


오늘 깨달았으니 오늘부터 미디어 다이어트를 하려 합니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만 실천하자면

1. 집에 가서 자기 전 최소 두 시간 전부터는 핸드폰, 패드를 안 보겠습니다. 대신 딸들이 학교생활, 친구관계,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을 맞추고 귀 기울이려 합니다. 둘째는 초6인데 저에게 노래 불러주기를 좋아하거든요. 라이브 공연 본다 생각하고 듣겠습니다.

2.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타고 있는 중에 하던 핸드폰 스크롤링을 안 하고 멍을 때리겠습니다.


저처럼 예민한 뇌를 가진 사람은 자주 뇌를 쉬어주어야 하니까요. ‘멍~’ 때리는 시간을 우울증 치료기간 동안 본의 아니게 많이 가졌었는데 확실히 회복에 도움이 되었어요. 힘들지 않을 때에도 ‘멍~’ 때리며 미리미리 뇌를 쉬게 해 주려 합니다.


글을 쓰는 행위는 책에서 권장하는 취미활동이니 브런치 글은 꾸준히 발행할 수 있겠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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