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시간이어서 환자가 1 명인가밖에 없어서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어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들은 하도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많이 봐서인지. 진료실 문을 들어가 앉아서 ”안녕하세요 “ 조그맣고 힘없이 이야기하는 저를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제가 힘들게 버티다 온 것을 아셨습니다.
결론은 약 증량
파마파록세틴정 20mg -> 30mg으로 10mg 증가
나머지 약인 아티반정과 밀타정은 그대로, 각각 7.5mg, 0.5mg
3주 후에 보자고 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진료실 문을 힘없이 나서는데 3주 후에는 약효가 돌아 편안하게, 에너지 있게 진료를 보러 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증량해서 약을 먹은 지 4일째 되는 날, 약 먹은 지 24일 차 때 마음이 없는 로봇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혼이 없이 맡은 업무를 처리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느낌.
원래의 저는 교실에 들어가면 목소리 톤도 높아지고, 소리도 커지고, 계속 웃으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스타일인데, 요즘은 차분하게, 잔잔하게 수업을 하고 있어요. ‘혹시 원래의 나는 이런 모습인데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사가 되고 싶어 과하게 에너지를 발산하고, 소리를 높이고, 많이 웃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지난날에 대한 자기 의심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냥 이렇게 차분히, 조용히 수업하고, 말하고 살아가야 되면 그렇게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체념, 포기, 인정하는 마음 또한 들었고요.
다음날(약 복용 25일 차) 거의 한 달 만에 같은 교무실 선생님들과 대화하는 것이 편안했습니다. ‘아~ 이제 약이 효과를 나타내나 보다. 약의 용량을 늘리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며 안심이 되었어요. 사실 이렇게 증량해도 변화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무서웠거든요.
그다음 날에는 업무를 조금 더 하고 싶은 마음에 미리 수행평가 채점도 하고, 나이스에 입력도 했습니다.
저의 몸과 마음을 옥죄던 사슬이 끊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시간 이상 머리를 쓰는 업무에 집중하고 나면 편두통이 생겼어요. 아직 장시간 집중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 시간 집중해서 일했으면 잠시 힐링음악 들으며 머리를 식혀주며 지냈습니다.
드디어 간절히 기다렸던 추석연휴가 찾아왔어요. 10일간의 긴 연휴.
이제 막 회복되기 시작했는데 시댁이 있는 전라남도 순천까지 내려가기는 무리인 것 같아 미리 신랑에게 양해를 구해놨어요. 제가 얼마나 하루하루 버티며 출퇴근하고 하는지 아는 신랑은 잘 쉬고 더 좋아져서 보자고 하며 내려갔습니다.
정말 10일 동안 동면을 하는 곰처럼, 아니 저는 덩치가 아담하니 다람쥐처럼 거의 오전 11시까지 자다가 점심 먹고, 소화시키고 다시 낮잠 자다가, 일어나서 브런치 작가님들 글(이때는 거의 매일 우울증, 우울증 재발, 우울증 치료 등의 글만 검색해서 읽었습니다. 그러다 더 이상 읽을 글이 없으면 조금 분야를 확장해서 조울증, 경조증 등을 또한 검색해서 읽었어요.) 읽다가 저녁은 함께 집에 남은 첫째 딸이랑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습니다.
그렇게 열흘을 밤 9시부터 오전 11시까지 거의 14시간 자고, 쉬고, 먹고, 쉬고 하는 삶을 살았어요. 자기 전 약 꾸준히 먹으면서~
이때의 저의 마음은 다음과 같았어요.
‘열흘 후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개운하게 일어나 출근해야지~‘
편하게 쉬다 보니 그동안 미워하던 우울증에게 고마운 생각도 들었어요. 저는 거절을 못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힘들어도, 더 이상 못 할 것 같아도 그 말을 못 하는데 우울증이 재발된 덕분에 못하겠다고 말씀드려서 안 하게 됐거든요.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도 동일한 상황이 발생했어요.
‘아~ 내 몸을 위해 우울증이 나서주는구나. 내가 앞으로 스스로 거절을 할 줄 알게 되고, 나의 에너지가 다 소진될 정도로 책임을 맡지 않으면, 그렇게 내가 나를 아껴주고 우선시하면 우울증도 안심하고 헤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