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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성숙 Jan 15. 2021

손녀 이름 짓기

작년 봄.
우리 가족은 아들 부부의

둘째 아기 임신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흥미로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가끔 태어날 손녀를 생각하며
어떤 이름을 지어주면 좋을까
혼자 생각해 보곤 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 불리어지고 죽어서까지 남는 이름.
그 이름에는 부모와 가족의
사랑과 바람이 들어가 있다.

부르기 쉬우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이름.
글로벌 시대에 맞추어 국제사회에서도
쉽게 기억되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이름이어야 한다.

코로나로 여러 달 아들 가족과의 만남을 미뤄왔다.
아들은 손녀를 보여드린지도 오래되어
추석에 함께 하자며 우리 집을 방문했다.
자연스레 새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며느리가 태몽 꾼 이야기를 해주었다.

세상이 곧 멸망할 듯 먹구름이 끼고
검은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막한 어둠 속에 며느리가 서 있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던 그때,
갑자기 아름다운 다섯 개의 무지개가 떠오르더니
시커먼 폭풍을 마구 삼켜버렸다.
무지개들이 모든 어둠, 혼돈, 재앙을
삼켜버리고 세상을 위기로부터 구해내었다.

그 무지개를 보자마자 하느님!이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고
하느님이 꿈속에 발현하신 것을 확신했단다.

아들 내외는 태몽 속의 무지개가
항상 너를 내가 지켜주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것을 잘 살릴 수 있는 이름으로
무지개가 들어가는 이름을 짓고 싶어 했다.
또한  큰손녀 이름과 같은 돌림자이면
더 좋겠다고도 했다.

손녀가 태어날 예정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름을 정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아들은 손녀의 이름을 짓는데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가족방에 이름을 공모한다고 올렸다.

이런저런 이름들이 계속 올라왔다.

이태리에 사는 코레스 동생은 벌써부터

고민을 했는지 20여 개의 이름을 보내왔고

한가족처럼 지내는 안칠라 수녀님도

이름 대여섯 개를 보내주셨다.

조카들도 나름 고심한 이름들을 올려주었다.

시간은 흐르고 많은 이름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좀처럼 아들 부부는 마음에 드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예정일이 점점 가까워질 무렵

어느 이른 아침.
아버지께서 밝은 얼굴로 메모지를 들고

방에서 나오셨다.

마리아야.
포근이(태명) 이름 지었니?

맘에 드는 이름이 없나 봐요.
아직 못 지었다던데요.

아버지가 내미신 메모지에는 
보배 보, 나 아 한자가 쓰여있었다.
한자풀이로는 보배로운 나의 의미로 
부귀영화를 누리라는 바람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놀라운 의미는 
신앙적인 해석이다.

어떤 역경과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태몽 속 무지개처럼 하느님이

늘 네 곁에서 널 지켜줄 것이다.

보아라,
내가 여기 있다.

얼마나 든든한 후원자인가!
하느님이 늘 곁에서 지켜주신다고 생각하면
힘과 용기가 용솟음칠 것만 같다.
우리 부부는 그 이름에 반해버렸다.

곧바로 아들 내외에게 외증조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을 보내주었다.
아들 부부도 몹시 흡족해하며 기뻐했다.
드디어 새 생명의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 되었다.

가족방에 이름을 올리자 가족 모두가
손색없는 이 이름을 훌륭하다며 축하해주었다.

아버지는 우리 두 손녀가
세상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어두운 부분을 양지로 바꿀
훌륭한 인물들이 될거라며
벌써부터 기대만발이시다.

아버지는 미래에 손녀가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라며  
결의에 찬 강한 어조로  외치셨다.

세상 사람들아.
날 보아라.
나 이런 사람이야.

세상을 살며 어려운 고비를
한고비 한고비 넘기며 성취할 때마다
우리 손녀가 할아버지의 외침대로
이렇게 호령할 것만 같다.

난 해냈어.
날 보아라
난 이런 사람이야.
너희들도 나처럼 해봐.

우리 손녀들아.
기운차게 세파를 헤쳐나가며
너희가 원하는 삶을 신나게 펼쳐나가렴.  
그래서 꼭 후회하지 않는 성공된 삶을
살아주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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