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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성숙 Oct 30. 2024

명절이 두렵지 않아요



추석 연휴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시아버지가 최근에 돌아가신 친구인데

남편이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 되었다며

이번 추석을 보내면서 집안에  명절 문화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단다.


평소 우리 집 명절 지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면서

이번 추석은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했다.


4대 모두가 명절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추석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며

우리 가족 공동체의 추석 이야기를 상기해 보았다.


추석 날 아침.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엄마가 계신 추모관에서 우리 가족 공동체가

만나는 것으로 명절 모임이 시작되었다.

11시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추모객으로 몹시 붐비고 있었다.


엄마가 모셔진 홀에 모인 우리 가족은

뒤에 기다리는 다음 가족들을 배려하는 맘으로

간단하게 예식을 진행했다.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우리 가족 공동체는

먼저 주모송을 받치고 여동생이 대표로

자유기도를 했다.

다음 순서로 아버지께서는 엄마를 추모하는

훈시를 하셨다.


초등학교 교사로 경기도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엄마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아버지와 의논 끝에

서울로 이사를 하셨단다.

이사를 하면서 교사 생활을 접으신 엄마는

서점을 운영하셨는데 아주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며,

바쁜 신학기에도 학습지를 트럭에 싣고

고아원을 방문하여 학습지를 기증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너희도 엄마를 본받아

자식 교육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라고

당부하셨다.


우리 집에서 다시 모인 가족들.

우리 집은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기에

제사 음식도 준비하지 않는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과 홍콩 사는 딸이

엄마 힘들겠다며 인터넷으로 주문해 준 음식까지 있어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풍성한 밥상이 차려졌다.


명절 설거지로 스트레스받는 집들이 있지만,

우리 가족은 남자든 여자든 심지어

90의 아버지까지 오늘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고

설거지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오손도손 맛있는 점심을 먹고

사랑으로 준비한 선물들도 나누고

어린 조카들에게 용돈도 건네주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아버지께서 후손들을 격려하는 시간.

아버지께서는 60이 넘은 나이에 이태리에서

석사학위를 딴 수도자 동생,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큰 조카,

그리고 북경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가는 작은 조카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시며

앞으로도 남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라며

격려금을 하사하셨다.


그리고 각 가정의 가장들에게 음악과 함께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라며 하모니카와 교본을

선물로 나누어 주셨다.


하모니카 교본을 펼쳐든 동생이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를 피아노로 치자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하모니카로 흥을 돋우자

아버지와 우리 큰 손녀가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 시댁에 다녀와서 우리와 함께

추석 명절을 보내게 된 조카가

결혼 전 설날 때마다 함께 윷놀이하던 것이 그리웠던지

다같이 윷놀이를 하고 싶단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남녀로 편을 나누어

윷놀이를 하게 되었다.


서로 자신들의 편을 응원하며

자기편에 유리한 말판에 환호를 하고 박수를 치며

말판 앞에서 치열한 두뇌싸움도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아들이 첫판부터 윷을 쏟아내더니

기세를 몰아 남자들이 승리를 거두었다.

저녁은 남자 편에서 치킨과 보쌈으로

승리 턱을 냈다.


이겨서 신나는 남자들.

졌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 여자들.

모두가 즐겁다.


가족이 모이면 늘 재롱잔치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갓 돌 지난 조카의 아들이 박수를 치면

어른들도 박수를 치며 응수하고

인사를 하면 같이 인사를 나누며  깔깔깔.


꼬마 천사가 재롱을 떠는 건지

어른들이 재롱을 부리는 건지.

이번에도 벅찬 기쁨을 준 보석 같은 아이들.


모두가 즐거움으로 하나 되었던 행복한 시간들.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존중하며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한다면 보고 싶고 기다려지는

명절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상님들이 바라는

명절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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