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by 곽성숙


여행 모임에서

난생 처음 태국을 간 첫날밤.


기분 좋게 잔을 기울인 남편은
술 덕분에 오늘도
낭만주의 시인이 되었다.


얼큰한 분위기에 취해

호텔방으로 돌아온 남편.

남편은 곧바로 베란다로 나가

한참을 감상에 젖어 있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날 부른다.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나는 마지못해 베란다로 나갔다.
남편은 앞에 서있는 내게 뜻을 알 수 없는

시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어떻게 장단을 맞춰줘야 하나...
나도 대충 뭐라 시를 읊어봐?


그러나 나는 이런 분위기가

영 탐탁지 않기에

이내 이렇게 말을 던졌다.


당신이 말하고 싶은 게 뭔데?

분위기도 모르는 마누라에 짜증이 난 듯

남편이 말한다.


이 나무는 인간과 함께 공존하고 싶어서

이 베란다까지 가지를 뻗었는데

인간들은 이 가지를 잘라버린다고.

침대로 돌아온 남편은 코를 골며

잠자리에 빠져들고, 잠시간을 놓친

나는 달아난 잠을 부여잡고 뒤척인다.


조물주는 아름다운 자연을

인간에게 선물로 내주었건만

오만한 인간은 조상 대대로

훼손과 파괴를 자행해오고 있다.

무심히 이 방에 들어와

하룻밤을 보내고 갔을

각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저 창밖의 우뚝 선 나무와

베란다로 손을 내민 나뭇가지들은

인간과 공존하자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남편이 말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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