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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Sep 24. 2019

이혼은 처음이라서요 #11 마침내 가정법원에..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태풍이 지나 간 서울의 금요일 오후는 맑지도 흐리지도 않은 채 구름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태풍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서 양몰이 개가 하얀 양 떼를 몰아붙이듯 하얀 구름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오전 두 개의 강의가 끝나고 점심식사를 여유 있게 하다 보니 어느새 1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랐지만 애써 태연한 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오후에 이혼하러 가정법원에 간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농담하듯 사용했던 이혼이라는 단어였다. 2시 약속이니까 정확하게 30분이 남았다. 식당을 박차고 나가 삼성로의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 중이던 택시를 잡아탔다. 거기에는 항상 택시들이 대기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 와중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기사님이 어디로 모실까요? 를 말하기 전에 나는 벌써 양재동 가정법원으로 가주세요! 를 외치고 있었다. 기사님은 가정법원에 왜 가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나는 2시까지 도착해야 한다며 최대한 빨리 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기사님은 고개만 끄덕일 뿐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내가 이혼하러 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는 듯 택시 안은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도로가 막히는 걸로 봐서 30분 안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30분이라는 시간 앞에 나는 쩔쩔매고 있었다. 늦을 까 봐서 쩔쩔매는 거라면 좋으련만 막상 이혼이 30분 후에 나의 서명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니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냥 똥 싼 강아지처럼 쩔쩔맬 뿐이었다. 1시 55분이 되자 양재역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양재역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서울 가정법원이다. 택시는 1시 59분에 정확하게 나를 법원 앞에 떨궈주고 사라져 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오렌지색 택시를 몇 초간 응시하였다. 그 이유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왜 나를 내려주고 떠난 택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는지 의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가정법원 2층으로 올라갔다. 친절하게도 2층 복도에는 왼쪽으로 가면 가정법원, 오른쪽으로 가면 행정법원이라는 표지판을 바닥에 설치해 두었다. 그만큼 가정법원으로 가야 할 사람들이 행정법원으로 잘못 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며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들어서자마자 바로 민원실이 보였다. 서울 가정법원 협의 이혼실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남자 직원이 창구에 혼자 앉아 있었고 그 뒤에는 상관으로 보이는 여직원이 전화 통화 중이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창구 직원의 첫 질문은 왜 혼자 오셨어요? 였다. 나는 침착하기로 하였다. 재외국민건이고 영국대사관에서 이미 자료가 넘어와 있는 건이라고 하였더니 바로 그 서류를 찾아온다. 그리고 내가 확인하고 서명할 자리를 알려준다. 오른쪽에는 낯익은 필체가 보였다. 아내의 필체였다. 아내의 한글 이름과 한자 이름이 0.5밀리짜리 가는 볼펜으로 또렷하게 쓰여 있었다. 평소 아내 필체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한글 이름과 한자 이름에 힘이 들어가 있고 너무 정성 들여 작성한 흔적이 느껴졌다. 서명도 마찬가지였다. 왼쪽에는 나의 자리가 공란으로 남겨져 있었다. 한글 이름은 또박또박 힘주어 썼는데 문제는 한자 이름이었다. 나의 성은 생각이 났지만 이름이 생각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고 썼다. 썼다기보다는 보고 그림을 그리듯 그렸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는 세월 동안 내 이름을 한자로 써 볼일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한단 말인가? 얼마 전 인감도장집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한자로 이름을 써달라는데 써 줄 수 없었다. 그때에도 성은 생각이 났지만 이름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검색을 통해 찾아주었다. 사장님은 나를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사람처럼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5만 원짜리 인감도장을 새기러 온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먼저 노트북으로 검색하고 계셨다.



서명을 하는 곳은 총 세 군데 정도였다. 그리고 부부간에 협의 내용을 체크하는 절차가 있었다. 재외국민 이혼이라 국내와는 약간 절차가 다르다며 남자 직원은 내 서명을 받은 후에도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검정 뿔테 안경 너머로 상당히 진지하고 예리하게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한치의 오류도 용납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서류 절차는 모두 끝이 났다고 하였다. 이제 두 가지 교육만 받으면 된다면서 차분하게 내가 받아야 할 그 두 가지 교육을 설명해준다. 그 사이에 몇 쌍의 부부가 들어왔다. 그리고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교육은 상담이었다. 왜 이혼을 해야만 하는지? 이혼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를 전문 상담사 선생님이 대략 1시간 정도 상담해 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상담이 끝나면 아이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1시간 정도 되는 비디오 시청이 있다고 하였다. 그 내용은 미성년자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겪는 고통을 사례를 들어가며 보여준다고 하였다. 그것으로  뿔 테 안경의 남자 직원과의 일이 완전히 끝난 난 줄 알았다. 그런데 후에 대미를 장식한 것도 검정 뿔테 안경의 남자 직원이었다.


나는 상담을 받기 위해 1호실 방 앞에서 기다렸다. 몇 쌍의 부부들은 희희낙락 웃는 부부도 있었고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말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부부도 있었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도 있었다. 나는 10여분의 기다림 동안 가정법원의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이곳 환경과 분위기에 익숙해지려고 본능처럼 빠르게 촉수를 더듬거리고 있었다. 상담실은 3개의 방이 있는데 2개의 방만 운영하고 있었다. 2호 방에서도 상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가정법원의 공기 치고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분위기도 칙칙하지 않고 상당히 세련된 인테리어로 단장되어 있었다. 곳곳에 의미를 짐작할 만한 그림들도 걸려 있었다. 건물 자체도 세월의 흔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준공한 지 얼마 안 되는 건물처럼 보였다.


10분도 채 기다리지 않았는데 내 차례가 왔다고 들어오라고 한다. 1호 상담방에는 파란 재킷의 상담사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전체적으로 정갈하게 정돈된 짧은 머리에 상당히 세련된 스타일의 선생님이셨다. 나이는 내 또래의 연배처럼 보였다. 첫 질문은 물론 내가 예상한 질문이었다. 왜 이혼하려고 하세요?라는 질문을 예상했는데 정확하게 그 질문을 하고 계셨다. 아내가 원해서요!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왜 아내가 이혼을 원하셨나요?라는 질문이 두 번째였다. 두 번째 질문의 답부터는 상당히 길어졌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마치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듯이 감추거나 숨길 이유도 없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주로 들어주셨고 내가 거의 일방적으로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설명을 하고 있었다. 상담이 끝나갈 무렵 상담사 선생님은 나와 같은 사례를 너무나 많이 접한다면서 안타까워하셨다.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살다 보면 언젠 가는 이런 방식으로 크게 일이 터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셨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단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토론해 보라는 주문을 하셨다. 잘못을 따지다 보면 대부분 닭이 먼저니 계란이 먼저니 하는 방식의 치킨게임이 된다고 하셨다. 즉, 서로의 잘잘못만을 먼저 따지다 보면 결국은 치킨게임에 빠져들고 만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주장을 해봐야 더 이상 결론이 나지 않는 위험한 게임 뒤에는 결국 이혼만이 기다릴 뿐이라는 것이었다. 


아이 문제와 내가 혼자 온 이유 등을 물으시면서 상담사 선생님의 눈시울이 이미 붉어져 있었다. 아내의 현명함 뒤에 숨겨진 강박증이 공황장애라는 병을 불러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고 털어놓았다. 아내가 나에게 추궁한 잘못들을 그대로 자백하듯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명 또한 또박또박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나 자신이 갑자기 초라해 보이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상담을 받는다고 상황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있을까? 를 생각하자 갑자기 나의 마음의 문은 빗장을 걸듯 닫히기 시작하였다.  상담사 선생님은 너무 안타깝다는 말씀만 반복하시다가 끝내 눈물을 보이시고 말았다. 나도 울컥하였지만 여기서 눈물을 밖으로 내밀 수는 없었다. 나도 강해져야만 하기 때문기도 하였지만 감정 통제가 안되면 민망한 모습을 연출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연락처를 알려 주신다면서 언제든 상담이 필요하면 개인 사무실로 연락을 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연락처를 받아오지 않았다. 이미 끝난 일을 다시 들추어서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아내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시간 낭비고 무의미한 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상황 종료였고 게임 오버다. 그래도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고객(?)을 성심성의껏 대해주고 공감해주신 상담사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는 잊지 않았다. 정말 천사 같은 분이었고 고마운 분이셨다. 1시간의 상담은 그렇게 강하고 진한 여운을 남기고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4시부터는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부모들을 위한 비디오 시청 교육이 있었다. 너무나 뻔한 내용이고 예상했던 내용들이었다. 교육장에는 10여 명의 부모들이 시청을 하고 있었다. 내 앞에는 나처럼 혼자 온 여자분이 앉아서 시청하고 있었다. 스크린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그리고 이내 얼굴은 머릿속에 묻히곤 하였다. 바로 앞에서 괴로워하는 상당히 젊은 엄마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도 혼자 앉아서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괴로워하며 시간이 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내년 초면 아이가 성인이 되고 가을에는 대학생이 된다. 그래서 비디오 시청은 별 의미가 없었고 와 닿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릴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비디오는 여러 번 경고하고 있었다. 상담과는 달리 비디오 시청 교육은 같은 1시간인데도 좀처럼 가지 않았다. 중요한 장면들은 모두 촬영하고 녹화까지 하였다. 혹시라도 주위에서 이혼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먼저 그 비디오를 본 다음에 법원까지 가지 말고 해결책을 찾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루하고 가슴 아팠던 비디오 시청각 교육은 끝이 났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정 뿔테 안경의 남자 직원이 서류뭉치를 들고 들어왔다. 각자의 사건번호가 있는 확인 기일 안내문의 하단에 스탬프로 확인 기일을 찍어주었다. 확인 기일은 1차와 2차로 나누어 1주일 간격으로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숙려 기간이 끝나는 3개월 후의 기일이다. 두 차례 다 판사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이혼은 성사되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은 오전 10시로 통일되어 있다.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면 확인 기일을 변경 요청할 수 있다고 한다. 확인 기일이란 법률상으로 판사가 최종 판결을 내리는 날을 말한다. 그 판결이 내려지면 3개월 이내에 구청에 이혼 신고를 해야 한다. 이때 제출서류는 확인서 등본 1부와 이혼신고서 1부이다.


그것으로 모든 이혼 과정은 끝이 났다. 가정 법원을 나오자 하늘은 그새 하얀 양털 구름에서 온통 먹구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람의 장난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다시 삼성동 연구소로 돌아갔다. 연구원 한 분과 간단하게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하지만 자극적인 한식을 목구멍으로 넘길 자신도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버거킹 햄버거를 딜리버리 시켰다. 햄버거를 기다리는 동안 나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아서 동네로 산책을 나갔다. 이미 밖은 어둠이 깔려있었고 하늘의 먹구름은 더욱 어두운 색으로 변해 있었다. 먹구름은 그대로인데 어둠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늘 다니던 골목의 가계들은 왁자지껄한 술손님들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 멀리까지 들려왔다. 그 왁자지껄에는 불금을 즐기는 즐거움과 자신감들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문득 그들이 부러워졌다. 가슴 한 켠에 구멍이 난 것처럼 아려왔다. 아무 생각 없이 친한 친구 녀석에게 톡을 날렸다. "오늘 저녁 약속 있니?" 금방 답장이 왔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동창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무슨 급한일이라도 있냐고 물어본다. 나는 아니! 하고 얼버무리며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톡을 날리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20여분의 산책을 마치고 다시 연구소로 돌아왔는데 아직도 주문한 버거킹 와퍼 밀 세트는 도착하지 않았다. 버거킹은 보통 40분 이상 걸린다는 사실을 이미 알기 때문에 10여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정확히 10분 후에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햄버거 2개가 도착하였다. 바로 며칠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햄버거를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햄버거를 먹고 칩스는 남겼던 거 같다. 그렇게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자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아니 하루가 아니고 1년 더 나아가서 20년의 피로가 쓰나미처럼 나를 덮치고 있었다. 집에 가서 무 조건 자고 싶었다. 대략 가방을 챙겨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포스고 빌딩을 향해 걸어갔다. 금요일 퇴근시간이라 테헤란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20분 정도를 기다리자 1100번 버스가 도착하였다. 버스에 오르면서 처음으로 기사님께 인사도 하지 않고 빈자리를 찾아 털석 주저앉아버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는 그렇게 버스 안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꼼짝도 못 하는 버스가 그날처럼 답답하기도 처음이었다. 버스는 겨우 잠실에 닿았고 잠실대교 위에서도 거북이처럼 기어야만 했다. 모두가 불금을 즐기는 그 시간에 나의 가슴에는 총알이 관통해버린 것처럼 한강의 맞바람이 드나들고 있었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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