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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Sep 22. 2019

이혼은 처음이라서요 #10 나는 폐기 처분되었다

사랑이 떠나간 공간은 더 이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다름  


어머니는 5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뇌출혈도 동반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빠른 조치로 전주의 대형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결국은 여러 합병증이 동반되어 몇 년후에 돌아가셨다. 초인처럼 사셨지만 돌아가시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어머니가 10여 년 전부터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것이 바로 아버지와의 이혼이었다. 아버지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싶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그만큼 아버지로 인한 스트레스는 어머니를 평생 괴롭힌 최대의 적이었던 것이다. 화병이라고 자주 표현하셨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스트레스였다. 술과 담배를 못하시는 어머니가 화병이 나도 그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6남매 중 어떤 자식도 어머니의 요구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모두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렇게 어머니의 수차례 이혼 요구는 가족들에게 철저하게 묵살당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여러 합병증으로 중환자실에서 고생만 하시다가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혼까지는 아니어도 아버지와 잠깐이라도 떨어져 살게 해드리지 못한 게 후회로 남는다. 비록 초인처럼 사셨지만 그렇게 많은 스트레스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물론 질병을 하나의 원인으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한 요인중 하나였음은 어머니의 입을 통해 여러 번 언급되었다.

  

아버지는 굉장히 현명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고집이 너무 강하셨다. 모든 의사결정은 본인이 내리셨고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방식대로 하고 싶어 하셨다. 남을 배려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단 본인이 먼저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타협할 생각이 애당초 없으셨다. 항상 마찰과 갈등 속에서 본인의 의사를 관철시키셨다. 그 과정에서 두 분의 다툼은 일상이 되었다. 결국은 성격이 급한 쪽이 지는 게임이었다. 소나기가 퍼부어도 절대 뛰는 법이 없는 아버지를 불같은 성격의 어머니가 당할 재간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어머니는 평생 동안 쌓인 스트레스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다.   

  

아내도 어머니와 유사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공황장애라는 무서운 병이 찾아왔고 아내 또한 어머니처럼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 원인을 수도 없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아내에게 잘한다고 했지만 내가 아내에게 준 스트레스를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준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아내의 요구대로 해주기로 하였다. 어머니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강하다. 그런 어머니가 쓰러질 정도라면 분명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었다. 그런 아내가 쓰러졌다면 분명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 이제라도 반성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수도 있다. 비록 이혼을 하고 법적으로 남이 되지만 아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다 해주고 싶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내가 지금까지 버텨낸 이유     


아내가 이제야 이혼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아들이 아직 어렸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진작 이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보여준 것도 다 모성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아들도 곧 대학생이 된다. 아내가 더 이상 나를 붙잡고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나는 이제 폐기 처분해도 되는 별로 쓸모없는 부품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나는 기꺼이 폐기 처분되고 싶다. 그래서 극한 상황에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여유가 많고 물러설 곳이 있다면 내가 이룰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자꾸 나이는 들어가고 몸은 여기저기서 삐걱거리고 있다. 질병과의 전쟁에서 내가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은 슬프고 서글프다. 어느 날 들이닥칠 죽음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젠 질병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가는 중이다. 어차피 질병은 같이 가야 할 동반자이다. 기꺼이 친구가 되어 같이 갈 것이다. 니체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질병은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할 만큼 내 인생의 많은 부분에 변화를 주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이미 진부해진 말임에도 아직도 여기저기 유효하게 사용되는 감초 같은 좋은 말이다.      


이제 가정으로부터 버림까지 받고 질병까지 얻어서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 자체에도 감사해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자극은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극을 자극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만약 이러한 자극이 쇼크로 받아들여진다면 나는 쇼크사할 확률이 높아진다. 아무튼 아내의 현명한 처사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원래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마지막 결정에도 반기를 지 않고 따랐다.      


단지 내가 아쉬워하는 부분은 아내가 오해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증명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오해였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풀리길 바랄 뿐이다. 다 끝나는 마당에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숨기고 말 것도 없는 입장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사랑을 찾아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생활을 할 의사가 있었더라면 벌써 오래전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그게 내가 아내에게 계속 주장하였던 나의 논리였다.  이제 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기로 한 이상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기도 하다. 나는 아내의 의견에 동의했고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콩깍지     


우리가 결혼하는 과정은 이미 여러 저서에서 언급하였다. 너무나 짧은 연애기간과 드라마틱한 결혼과 이민이 조금은 남다른 과정들이었다. 그 과정에서의 핵심은 바로 사랑의 콩깍지였다. 어느 순간 그렇게 다가온 사랑의 콩깍지는 벗겨질 수 없는 강력한 것이었다. 그 콩까지 덕분에 나는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었다. 문제는 모든 것은 육감적인 감정에 의해서였다. 머리로 계산해서 이것저것 따지고 해서 만들어진 콩깍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이 현실의 사랑으로 들어온 것이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그 차이를 느낄 겨를도 계산할 시간도 없었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었고 그 사랑이라는 것은 실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지만 그 기회를 흘러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준비하고 회사를 정리하고 이민을 떠나는 과정을 일사천리로 추진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추진력과 결단력도 대단하였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너무도 비현실적인 콩깍지는 결국 현실의 콩깍지로 바꾸어 놓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내 인생은 탄탄대로만 걸을 줄 알았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민 초기의 고생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고생은 어차피 사서라도 해야 할 고생들이었다. 아무튼 그 콩깍지의 힘으로 나는 세상을 다 얻었고 앞으로는 행복한 생활만이 기다릴 줄 알았다. 거기에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도 남달랐기 때문에 신혼 초기의 봄날은 환상적이었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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