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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02. 2019

이혼은 처음이라서요 #12 아내는 어렵고 난해하다

사랑이 떠나간 공간은 더 이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안목의 양면성과 이중성     


안목이란 현명하고 지혜롭게 사리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일생을 통틀어서 그 안목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바로 연애와 결혼할 때이다. 연애를 시작할 무렵 사랑의 콩깍지가 그 안목을 가린다 해도 안목은 여전히 중요하다. 안목이 없거나 잘못된 선택지를 뽑아 들었을 경우에는 잠시 아픔이 있어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결단력과 용기가 필요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인연이라는 질기고 기다란 보이지 않는 동아줄이 존재한다. 그 동아줄은 정이라는 가느다란 실타래로 꼬여있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끔찍한 현실이 되고 만다. 풋풋한 야채가 유통 기한이 지나기가 무섭게 시들어버린다고 야채를 탓하거나 시간을 탓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버리지 않고 아까워한다고 그 우유가 다시 신선해질 확률은 0%이다. 운 좋게 자연 발효되어 치즈가 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이 또한 0%에 가깝다. 우유를 실온이나 냉장고에 보관한다고 해서 치즈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연애를 거쳐 결혼할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안목이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안목이라는 것이 거의 없을 시기다. 있다고 해도 사랑이라는 큰 구름이 하늘을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안목이라는 빛은 하늘을 통째로 덮고 있는 그 큰 구름을 뚫고 나오기에는 역부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안목이 없어져야 할 시기인 이혼할 때 안목이 가장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현실이다.   

   

사랑만으로 결혼한 사람들이 그 사랑이 시들었을 때의 선택지는 애석하게도 없다.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안목을 먼저 들이대다 보면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살아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랑은 결혼의 절대조건이다. 필요나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안목이 아무리 출중해도 사랑이 없으면 그만이다. 사랑 없는 결혼은 있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불행한 일이다. 영국의 찰스 왕자와 다이애나비의 결혼이 파국으로 치달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과 안목의 함수 관계를 포물선이나 그래프로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기루나 무지개 같은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잡고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그러한 기회 자체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진부하고 남루한 사랑 타령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연애 시절에는 보이는 게 없다. 아름답고 찬란한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 거기에서 저울질이나 계산기를 두드려볼 이유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잡아두려면 시야는 물론 세포들이 느끼는 촉수의 그물망도 촘촘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찾아온 사랑은 결혼해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도 이어질 줄 알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미래의 배우자를 보는 눈이다. 우리는 그것을 안목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 중요한 안목이라는 것에는 야누스처럼 두 얼굴이 숨겨져 있다. 두 얼굴만이 문제가 아니라 각 얼굴의 비대칭까지도 문제가 된다. 결혼할 때 없던 안목이 이혼이라는 단어가 오고 갈 무렵이면 최고조에 이른다. 안목이란 선택지는 불행하게도 거의 완전하게 불일치를 이룬다. 연애 당시 안목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로지 사랑이라는 감정의 포로가 될 뿐이다. 누구나 그 포로로 사로잡히고 싶어 안달이고 초조해하는 것이 연애라는 것이다. 연애시절 나는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현명하기까지 한데 더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약간의 안목만으로도 나는 아내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현명하고 예민하였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나에게는 좀 과분한 여자였다. 그러한 사실은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달아갈 수 있었다.                                                                                 



쌍무지개와 장미 꽃다발     


사실 연애부터 결혼까지의 기간이 몇 달 되지 않았다. 세상에는 항상 무지개가 떠있고 온 천지가 장미꽃으로 반짝였다. 장미는 비를 맞아도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은 들떠 있었다. 남들처럼 결혼해서 가정이라는 것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단꿈에 부풀어 있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결혼해서 어떻게 살고 가정은 어떻게 경영할지 그리고 부부간의 동업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에 대한 청사진은 아예 없었다. 결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 감사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감사하다고 생각하였다. 결혼 후의 치밀한 삶의 설계도 따위는 생각지도 못하였다. 모든 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과 머릿속으로만 대충 생각하는 계획들이 전부였다. 한마디로 어떻게 되겠지 와 나는 잘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전부였다. 그렇게 막연한 환상 속에서 결혼을 하고 이민을 가고 모든 것을 몸으로 개척해 나갔다. 그러면서 현실을 즉시 할 수 있었다. 세상은 온통 무지개와 장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환상이었을 뿐이다. 콩깍지가 벗겨지기가 무섭게 현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힘든 이민 생활의 초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그리도 짧을 줄은 몰랐다. 야채가 그 짧은 시간에 시드는 것은 당연시하면서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사라졌다. 꿈에 그리던 아이의 탄생은 행복이란 선물만을 주지 않았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훔쳐(?) 가기 시작한 것이다.


                                                           



환상과 현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경우가 많다. 마치 꿈을 꾸듯이 말이다. 나의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라는 사람과 19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아내를 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세상이 허무해진다. 온통 비현실적인 일들이 현실이 되고 현실 속의 일들이 비현실의 세계에서 흐물거린다.     

 

아주 순탄하고 단순해 보이는 결혼생활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아내의 입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오기 직전까지는 그랬었다. 돌이켜보면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다툼이 시작되는 순간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떠오르곤 하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싸움을 보고 자라면서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를 수없이 반복하며 다짐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정반대로 살아온 19년은 더 큰 문제들만 초래되었다. 내가 가장으로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아내가 아닌 엉뚱한 타인에게 분노가 표출되었다. 분노조절장애 환자처럼 말이다. 평소에는 가계에서 매일 일을 한 기억밖에는 없다. 집에서 무슨 일을 하고 아내와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조차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한마디로 현실과 비현실이 엉망진창처럼 꼬여버렸다. 아마도 요즘 나의 심리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들 만큼이나 꼬여 있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이 보이질 않았다. 심지어 영국의 익숙한 풍경들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멈춘 듯한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무슨 거리나 장면을 생각하려면 한참을 집중해야 겨우 생각이 난다.                          



                              

처음이라서?  


솔직하게 말하면 다시 결혼해서 결혼생활을 시작하라고 하면 이제는 잘할 자신이 있다.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고 공감하고 교감하는 능력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결혼도 연습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또다시 결혼할 생각은 없다. 물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기는 하다. 이혼 서류에 서명한 사람이 다시 결혼을 논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결혼 생활도 준비가 필요하고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골프나 테니스라는 스포츠는 레슨을 받고 많은 연습이 필요한 스포츠다. 기본적이고 탄탄한 기초 없이는 평생을 해도 발전이 담보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비롯하여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혼을 아무 준비나 계획 없이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살면서 마찰을 일으키고 문제에 직면한다.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다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잘 풀어가기도 한다. 문제는 언제까지 잘 해결해 내느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중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부들이 태반이다. 참고 사는 것이다. 선택지를 꺼내 들기에는 수많은 변수와 뒤처리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 때문에라도 참고 산다. 경제적 자립도가 낮을수록 참고 살아가는 비율은 높아진다.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산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았다. 그런데 같은 집의 바로 내 옆에도 그런 사람이 19년을 같이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결혼은 준비과정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반드시 결혼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비혼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혼하기 위해 결혼하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혼율은 점점 높아만 가고 있다. 결혼이 처음이라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준비해서 가능하면 이혼율을 낮추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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