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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10. 2019

이혼은 처음이라서요 #13 그깟 이혼이 그렇게 힘드니?

사랑이 떠나간 공간은 더 이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양재동에 있는 서울 가정법원 협의 이혼실 입구 모습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매사에 감사하며 긍정의 자세로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고 인생이다. 어느 날 갑자기 법원으로부터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충격이었고 현실세계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 이혼이라는 것을 너무도 막연하게 그리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미 아내와 협의가 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담당자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고 비로소 비현실의 이혼으로부터 현실 속의 이혼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사실, 살아오면서 내가 이혼의 당사자가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일이 없었다. 즉, 아내가 먼저 이혼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나는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나 피고가 된 것이다. 이혼은 남의 일로만 여기고 살았다. 그런데 지난해 아내와의 몇 차례 토론에서 이혼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거기에 동의하였다. 한국에 와서도 논의는 지속되었지만 이혼은 여전히 막연한 비현실 속의 부유하는 뜬구름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뜬구름은 늘 어디론가 부유하였고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남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무진의 마을에서 안갯속을 헤매는 느낌 속에서 삶은 지속되었다.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시간은 지난하다 못해 멈추어선 시계 같았다. 내가 자주 남도 여행을 하는 이유도 아마 무진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아내의 카톡이 울릴 때마다 가슴은 덜컹 내려앉았다. 혹시라도 안개가 걷히면 밝은 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하지만 강한 긍정의 반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빛이 보여야 비로소 부유 중인 구름의 형체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라마나 영화에는 반드시 반전이라는 것이 있어야 재미라는 것을 배가 시킬 수 있다. 주인공이 핍박을 당하고 실신 직전까지 두둘겨 맞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관객들은 환호하고 통쾌함까지 느낀다. 바로 반전의 힘이고 효과다.


아주 가끔씩 아내로부터 날아오는 톡은 숨겨둔 날카로운 발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들이었다. 우리의 언어라고 하기에는 너무 차갑고 날카로웠다. 톡이 울릴 때마다 화살이 심장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무진의 마을에 안개가 걷혀도 반전이 없다는 사실을 점점 학습시키기라도 하려는 듯한 톡의 문자들은 독하고 어두웠다. 어느 날부터 차라리 안개가 걷히지 않기를 바라기 시작하였다. 마취당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거나 수면내시경으로 건강검진을 하듯 그렇게 이혼이라는 절차를 처리하고 싶었다. 반전이 없는 영화를 끝까지 본다는 것은 어쩌면 시간낭비를 넘어서 고통이 수반될 수 있다. 반전이 생길 확률은 0%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개가 걷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심신이 아프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비정상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독하게 육체와 정신 모두 흐느적거리며 여름날 아스팔트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끈적거리며 휘발되고 있었다. 매일 통증과의 전쟁은 물론 면역계 이상으로 알 수 없는 질병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일은 벅참을 넘어서는 순간 서글픔조차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또 하나의 무진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하였다. 상실의 묵직함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집요하게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깟 이혼 좀 한다고 그렇게 힘들어할 필요가 있느냐?" 친구들의 말들은 술자리의 허공에서 떠돌 뿐 내 귀에 들어와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울림이 없는 말들은 결국은 겸연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허공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1년이란 시간 동안 무던히도 마음을 다 잡아가며 준비한 이혼이라는 것은 그간의 준비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우울은 10여 년 전부터 아내의 마음에서 나의 존재가 희미해지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바쁜 생업전선의 늪에서 애써 짓누르고 외면해왔던 것이 어쩌면 그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항상 외로웠고 우울하였다. 매일 맥주를 마시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였다. 돌이켜보면 습관성 음주 또한 불면을 견디려는 나만의 처방전이었던 것이다. 아내는 늘 "인상 좀 펴고 살아! 어디 아파! 영국 친구들도 좀 사귀고 사회성도 길러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풀이했다. 하지만 나는 늘 한 친구와만 맥주를 마셨고 토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축구하러 집을 나서야만 했다.


세상에는 이혼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도 다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 또한 이혼 당시 아픔이라는 것을 겪었을 것이고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아이들이 어린 가정의 이혼은 심각한 문제들을 수반한다. 엄마들이 겪는 육아 및 미래에 대한 불안과 상실감은 나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내 주위에도 이혼한 사람들 투성이다.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부부들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냥 좋아 보이지만은 않다. 가끔, 술자리에서 취기가 오른 선후배나 친구들이 무의식 속에서 습관처럼 뱉어내는 말들은 그들의 힘듬을 이해해 달라는 암묵적인 강요였다. "야! 인생 뭐 있어!" 술자리가 아니면 결코 내뱉지 않는 말들은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입 밖으로 나오려 안달하고 있었다. 그 모습들은 잔인하게도 슬픈 자화상이 되어 내 가슴속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와 꽂히기를 반복하였다. 잔인한 1년은 나를 연타 공격으로 수도 없이 난타하였다. 그렇게 난타당한 나의 영혼은 그로끼 상태 직전의 흐느적거림이라는 선물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심신이 아팠고, 살기 위해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 몸부림은 매일 눈을 떠 있는 동안에는 글을 쓰고 사색을 하게 하였다. 코너에 몰린 나를 구출해준 것은 레프리도 감독도 아닌 바로 글쓰기였다.


삶은 항상 어떤 힘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 어떤 힘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면서도 삶은 지속되고 전진해야 한다. 그 삶이 전진하지 못할 때는 위기가 찾아온다. 단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삶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구심점을 잃고 주저 않아 버릴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혼의 아픔을 겪고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도 바쁜데 생활이라는 무정한 녀석은 단 하루도 그냥 내버려 두거나 기다리지 않는다. 힘들지!! 하며 손을 내밀어 주지도 않는다. 비축되어 있는 몸의 에너지로 스스로의 발전기를 돌려서라도 어떤 힘을 향해 나아갈 때만 의미 있는 삶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미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었거나 격을 수 있는 많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이기를 소망한다. 그 내일들이 모여서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가는 삶이 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끝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에게 다시 한번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아무리 서류 한 장으로 남이 된다고 하지만 20여 년 가까이 "아내와 아이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힘들게 버티어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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