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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Sep 18. 2019

이혼은 처음이라서요 #9 가정만은 지키고 싶었다..

사랑이 떠나간 공간은 더 이상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혼, 너무도 당연한 과정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혼은 일종의 주홍글씨처럼 여겨졌다. 이혼은 부끄러운 것이었고 드러내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도 지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부모세대까지만 해도 이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아니 , 이혼 자체를 생각지도 못하고 살았다. 부부 사이가 좋든 싫든 그냥 살아야 했다. 부부 사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더 급했다. 아이들은 많고 식량은 부족한 상태에서 한가롭게 이혼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주위에서 이혼한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같았으면 열 번도 더 이혼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여자들은 거의 야만의 시대에서 버텨내야만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그 많은 아이들을 굶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여자이기 이전에 강인한 전사가 되어야만 하였다. 엄마라는 전사들은 그렇게 강인해졌고 그 덕분에 우리들은 굶어 죽지 않고 배고픈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당시의 어머니는 6남매를 키우시면서 떡 방앗간을 운영하셨다. 물론 논농사와 밭농사도 상당하였다. 일에 치어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할아버지 간병과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고 고부 갈등은 어머니의 피를 말릴 정도로 심각하였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사고방식도 어머니의 피를 말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도 어머니는 초인처럼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주저앉을지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이혼을 생각하면서 어머니가 유독 그리워진다.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내 주위에서 살아계시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철학자 니체보다 더 확실하고 명료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니체나 칸트를 능가하는 철학자가 바로 초등학교 중퇴생이었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삶의 의지나 항상심은 니체의 그것보다 더 완벽하고 촘촘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갑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한 것은 어머니와 아내를 비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 시절은 그 시절이었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있는 가치나 사고가 많이 변해서 단순비교는 무의미하다. 그리고 비교할 생각도 없다. 단지 그 시절에도 이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는 추측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굴레가 그 상황들을 통제하기 때문에 이혼 자체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제는 이혼 자체가 자유롭고 쉬워졌다. 아직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이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개인 및 사회현상일 뿐이다. 다만 그로 인한 피해를 어린아이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면 그것은 분명하게 부모들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가정과 자신 사이에서 방황     


지난해 아내 입에서 이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내가 많이 당황하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리고 그 사유 또한 나를 경악하게 하였다. 아내 마음이 이미 오래전에 떠나갔다는 걸 느끼고 있던 터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일은 사랑의 상실이나 어떠한 오해에서 비롯된 경멸이 아니었다. 바로 가정의 해체였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하나 지키지 못하는 가장이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지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다.      


어떡하든 나는 가정만은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제발 이혼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사정도 해보고 부탁도 해보았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이미 확고하였다. 아내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음날 저녁 이루어진 토론에서 우리는 합의를 보았다. 이혼은 합의이혼으로 하고 그 절차와 조건들은 이미 아내가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준비성이 좋은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놓은 걸로 보아서 나름대로 이혼을 체계적으로 준비하였던 것 같다. 졸지에 망치로 한방 맞은 기분이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이틀 만에 우리의 이혼은 합의가 되었고 아이가 성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혼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각자 자유롭게 살기로 하였다.      


이혼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서 집에서 한가롭게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유럽과 웨일스를 자동차로 여행하였다. 물론 아들과 함께였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떠난 여행이었다. 아내가 빠진 가정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아이는 대학생이 되면 독립을 하고 더 이상 같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더 이상 가정이라는 것은 무의미해져 버렸다. 아니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곳에서 내가 지켜야 할 가치나 구성원이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구성원의 신분이 바뀌면서 남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은 마법 같은 일이었다. 처가의 모든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남이 되는 것이 이혼이라는 것의 힘이었고 특징이었다. 아직 가족이나 처가 식구들에게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아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다.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만 있다면 이번 이혼이 나에게도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거 같다.         

                                               


성격차이에 숨겨진 것들     


대부분의 이혼한 부부들이 이혼사유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성격차이다. 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성격이 같은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성격차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로 인해 이혼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해서 살아보니 그 말이 비로소 이해가 가기 시작하였다. 성격차이의 이면에는 다른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부부간의 문제는 부부만 알고 있고 말 못 하는 사정들이 많이 있다. 우리도 물론 마찬가지다.      


아내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현명하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지식이 많을 수는 있지만 현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현명함이 나의 발목을 잡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현명한 아내와의 결혼생활에서 배운 것도 많고 깨달은 바도 많았다. 하지만 그 현명함이 선을 넘어설 때마다 아내는 약간의 강박증 증세를 보였다. 굉장히 사교적이고 친구도 많았지만 자기 자신에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 스트레스를 다 감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청구서가 날라 오면 보통 2주 안에 내면 된다. 하지만 아내는 그다음 날까지 내지 못하면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청구서는 날아오는 즉시 납부한다. 나는 반대였다. 세금이나 청구서는 최대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내는 스타일이었다. 청구서 때문에 무던히도 싸웠다. 이처럼 작은 성격 차이 하나도 결혼 생활의 커다란 장애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청구서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내가 공황장애가 온 이유도 나중에 알 수 있었다. 성격 자체가 강박과 완벽이 공존하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나는 고집이 세고 버럭 화를 내는 스타일이었다. 순간을 참아내지 못하는 일종의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운전을 하다가도 여러 번 시비가 붙었다.  그 순간만 지나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상황이 지나갈 수 있는데 그 순간을 참지 못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심각한 분노조절장애가 맞았다. 그로 인해 아내와 아들이 여러 번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성격차이를 말하자면 너무도 많기 때문에 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부 사이에 한번 신뢰를 잃어버리면 다시 그 신뢰를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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