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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12. 2019

영국에서 신분을 세탁하다

미스터리(Mr. Lee) #2. 런던, 고향이 되기까지

제2권, 런던, 고향이 되다


1. 영국에서 신분을 세탁하다

2. 학교가 부도나고 총리까지 나서다!

3. 당신 런던 어학연수 뻥이지? 제주도 감귤농장도..

4. 런던에서 만난 한국의 국가대표급 진상들!

5. 향복은 엉덩이가 무겁지 않았다.

6. 타다와 택시, 우버와 블랙캡 논쟁의 본질!

7. 이민 초기 "봉"이 되는 이유

8. 그는 런던 최초 화전민이었다

9. 영국에 그 무시무시한 노동당이..

10. 북두칠성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것은?

11. 브렉시트에 장렬하게 쓰러지다
12. 우울하지 않은 영국인은 없다구요?

13. 알바요? 차라리 아이 가질래요

14. 영국, 총리의 도박빚을 갚는 나라                                                 


관광비자로 이민을?     


그가 생각하는 세상에는 항상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사람, 신중하게 고민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시작하는 사람, 저지르지도 시작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이 세 부류의 사람 중에 첫 번째에 속했다. 그 사실은 두 번의 유럽 배낭여행에서 깨달았다.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다. 유럽 주요 도시의 역마다 홈리스들이 친구 하자고 맥주캔 들고 들러붙기도 하였다. 그들이 보기에도 영락없는 홈리스였던 것이다. 그것도 자기만도 못한 홈리스! 그들은 허우대도 멀쩡하고 영국인이 아닌데도 모두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었다. 심지어 콧대 높은 프랑스의 홈리스들마저도 불어가 아닌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였다. 그는 영어마저 신통치 못한 여행자를 가장한 동양에서 온 홈리스처럼 보였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 배낭여행들을 지금까지 추억하는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과 마주해도 어떻게든 해결책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치열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고도 배낭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여름과 겨울 두 번씩이나 말이다. 단순히 어떤 행운을 바라거나 요행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유럽 여행을 떠난 사람이 가장 기본적인 유래일 패스도 없이 무작정 떠난 것이다. 하지만 고비 때마다 누군가를 만났고 도움을 받았다. 물론 아주 가끔이지만 그가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도둑에게는 그 재산의 전부인 고가의 캐논을 상납하기도 하였다. 그는 두 번의 개고생을 사서 하면서 배낭여행으로 인생의 항로를 찾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어떤 장벽도 없어 보였다. 심지어 그토록 저주하고 증오했던 가난마저도 그에게는 큰스님의 가르침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가 1년 반의 영국 어학연수와 유럽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한국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금방이라도 때 돈을 벌 수 있을 것처럼 한국은 허술하고 만만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학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해야 할지 아니면 사업을 시작해야 할지를 두고 잠깐 머뭇거리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하는 일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이를 악물고 대학을 졸업하였다. 이유는 당장 취직도 문제지만 부모님께 고졸이라는 최종학력은 불효 중 불효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억지춘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였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기는 한국 경제의 호황기여서 어디를 고를지가 문제였지 취업준비생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였다. 그는 얼떨결에 정부 관련 기관에 취직을 하고 7년의 데드라인을 정한다. 그리고 7년 후에는 이민을 떠나기로 스스로 각서를 쓰고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런 그가 직장 생활에 충실했을 리는 만무하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신대로 일하고 처신하였다. 진급하려고 상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동료들과도 경쟁의식조차 없었다. 하지만 성격상 그는 일만은 제대로 하였다. 그렇다고 야근까지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각하고 조퇴를 일삼는 그가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승진하였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라는 반응이었다. 직장에서도 그는 늘 변화를 추구했고 상사들과 불협화음을 냈다. 모두들 안 된다고 하면 직접 기관장과 독대를 해서라도 그의 의견을 고집하였다. 그런 그가 과연 몇 년이나 더 다닐지가 관심의 대상이었고 단골 안주거리였다. 그의 생활은 직장 내에서보다 직장 밖에서 더 바빴다. 그가 퇴근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였다. 주말과 휴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에는 지각이 일상이었다. 당시에는 출근부를 펀칭하는 기계가 있어서 출근시간을 분 단위까지 체크하였다. 회의시간에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하였다. 그런 그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승진을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하였다. 거기까지는 그다지 이상한 점은 없었다. 노총각이 결혼한다는데 축하해 줄 일이었다. 그래서 기관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직원들이 방배동 결혼식장까지 와서 축하를 해주었다. 물론 그가 챙긴 축의금도 상당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신혼여행을 10일 이상이나 다녀온 그가 인사처에 사직서를 제출하였던 것이다. 사직서에 사유는 개인 사정으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영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가 얼마나 준비를 하고 이민을 갔는지? 영국에 친척이나 지인이 있는지? 등의 의문 덩어리들은 해명되지 못한 채 그는 책상의 짐들을 챙겨서 어느 날부터 출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그였기에 말리는 상사들이 많았다.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동기들은 뒤로 돌아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 동기들은 아직도 그 직장에서 근무 중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그들은 아마 통닭 튀길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그해 여름에 결혼을 하고 가을에 이민을 떠났다. 그것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영국행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미국이나 호주 등과 같이 영국은 이민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나라였다. 심지어 그 마저도 영국으로 이민을 갔거나 간다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중남미의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까지도 이민을 갔지만 유럽, 그것도 영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그것도 가족과 말이다. 물론 아이는 아내의 뱃속에 있었다. 이민을 가려면 비자를 받고 가야 한다. 그런데 그는 간덩이가 부어도 너무 부은 사람이었다. 관광비자로 이민을 떠난 것이다. 8년 전의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의 억류라는 트라우마를 가진 그가 또 그 모험을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미친 사람이거나 배짱이 두둑한 사라일 확률이 높다. 이민 짐들은 이민 가방 4개에 기내용 2개 그리고 작은 배낭 2개였다. 물론 엄청난 중량 초과로 체크인 시 추가 요금도 백만 원 가까이 냈다.      


그는 운 좋게도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6개월짜리 관광 비자를 받고 입국에 성공하였다. 지난번의 실수를 분석해서 1년짜리 오픈티켓을 끊지 않고 1개월 후 돌아가는 날짜까지 명시된 리턴 티켓을 끈은 것이다. 물론 그 항공권은 사용하지 않고 버리면 그만이다. 편도나 왕복이나 거의 요금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아까워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관광비자로 이민을 떠났고 6개월씩 연장해가며 이민의 초석을 다져나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관광비자로 머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학생비자로 신분세탁을 도모하였다. 물론 학교에는 다니지 않는 유령 학생이었다. 학교에 다니면 돈을 누가 번단 말인가! 아내는 막 출산한 아이와 매일 육아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한가하게 학교 다닐 여유도 형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가장 크면서도 지명도가 있는 비자 학교를 찾아내었고 그 학교에 등록하면 1년짜리 학생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학교 측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학교에 나오지 않고 1년 치 학비를 내주는 고마운 학생이었기 때문에 특별 관리까지 해주었다. 그 특별 관리는 바로 수업일수 관리였다. 주 몇 시간 이상의 수업일수를 홈 오피스에 보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비자가 취소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2년을 더 버텼다. 뭐가 돼도 될 놈은 비자 없이도 이민을 가서 정착해 나가고 있었다. 미국도 아닌 영국에서 말이다. 관광비자로 이민을?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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