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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15. 2019

북두칠성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것은?

미스터리(Mr. Lee) #2. 런던, 고향이 되기까지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작되다.”     


몇 년 전에 그의 아내에게 무서운 질병이 찾아왔다.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아이와 함께 떠나면서 그는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하였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또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는 마을을 한 바퀴 돌기 시작하였다. 현관문을 열고나서는 순간 그의 수행비서가 쏜살같이 다가온다. 그의 둘째 아들 검은 고양이었다. 8킬로에 육박하는 거구에 털까지 장모여서 동네에서 짱을 먹고 있는 고양이었다. 어렸을 때는 명품 백을 사정없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굵어대던 바로 그 고양이었다. 아내와 아이가 떠나간 빈자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둘째 아들이었다.    

 

밤하늘에 북두칠성을 볼 수 있는 날은 행운이었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낀 날에는 별 볼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의 수행비서는 언제나 의기양양하였다. 먹이를 찾아 서성거리는 여우들은 비쩍 말라 볼품이 없어 보였다. 황갈색의 여우들도 다른 고양이들도 슬슬 눈치를 보며 피한다. 그의 고양이도 권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군에서 행정병으로 누리던 그 권력의 맛을 그의 둘째 아들 녀석도 알고 있었다. 혈연관계가 아닌데도 참 묘(?)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5년의 work permit 비자 기간은 마치 50년처럼 느껴졌다. 영주권만 받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아이는 커 가는데 아이 비자도 부모의 비자와 같았다. 영국은 미국과는 달리 속지주의가 아닌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었다. 자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까지 배짱을 부리는 영국 정부를 수차례 원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였다. 만만하고 허술해 보이는 영국이라는 나라가 미국도 채택하고 있는 속인주의를 채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영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을 것이다.     

 

영주권이 없기 때문에 아이에게 제공되는 각종 수당들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그 수당들도 줄어들어 별 의미가 없지만 당시만 해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영주권은 하나의 신분이고 계급이었다. 한인 사회에서 영주권자들의 위세는 위풍당당하였다.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자랑스러워했다. 그들도 힘들고 어렵게 영주권을 받았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하다. 그도 언젠가는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리라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토끼처럼 날뛰던 세월이 5년의 work permit 비자 앞에서는 거북이로 변해 있었다. 그 사이 몇 차례의 아찔한 고비도 있었다. 만일 그가 일본의 면세점 사업가를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일본 면세점과의 파트너 비즈니스가 성사되면서 그를 살린 것이다. 그 실적 하나로 모든 것들은 덮어졌다. 역시 중요한 것은 실적이었다. 그리고 고용도 두 명이나 하고 있었다. 미미하지만 영국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판단되어서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주권을 받던 그 날의 감격을 어찌 잊으랴! “     


거북이도 달리기는 달렸다. 어찌 되었든 5년의 세월은 흘렀다. 그와 그의 아내는 영주권이 담긴 스페셜 딜리버리가 도착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세 명의 가족 여권에 드디어 영주권이 찍혀서 돌아온 것이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만세를 부르고 난리가 났다.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엄마 아빠가 좋아하니까 아이도 덩달아 좋아했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그동안 기죽어 지냈다는 것은 아니다.      


그 기쁨이 적어도 1년은 갈 줄 알았다. 하지만 고작 3일이었다. 여권이 도착하던 당일 날 저녁에 그의 가족은 무늬만 직원인 K와 함께 파티를 열고 자축하였다. 그 기쁨은 그동안의 울분을 보상해 주고도 남았다. 이젠 부부싸움도 사라질 거라며 의기양양해하던 그였다. 그런데 4일째 되는 날 작은 문제로 아내와 다투었다. 영주권을 받으면 더 이상 체류 문제로 불안해하거나 부부싸움도 없을 줄 알았던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이었다. 영주권을 받은 기쁨이 딱 3일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한인 마트에 가도 선술집인 펍에 가도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았다. 그는 내심 서운하면서도 현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한인 커뮤니티와 왕래를 끊다시피 하며 살아온 그의 가족 문제를 알리가 없었다. 그의 가족은 한인 사회와는 철저하게 담을 쌓고 살아갔다. 경쟁적으로 나가는 한인 교회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교회도 아이 때문에 잠깐 영국 교회에 다녔다. 그것도 신앙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아이가 친구가 없어서 심심할까 봐 나갔던 것이다. 한인 사회를 피한 이유는 이민 초기 몇 번의 사기성 피해를 당하면서부터였다.      


생각해보니 영주권 받았다고 자랑할 친구조차 없었다. 그의 아내는 영국 친구들과 파티도 하였지만 그는 파티는 딱 질색이었다. 어학연수생 시절 즐기던 파티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밤새도록 영어로 대화하는 일은 금방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어에 대한 울렁증이 주범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영어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아내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그였다. 가정의 주도권도 그놈의 영어 때문에 아내에게 넘어간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영어가 유창해지지 않는다. BBC 뉴스를 매일 아침부터 봐서 듣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말하는 것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영어 울렁증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아내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이가 자라면서 아이한테까지 구박을 받기 시작하면서 울렁증은 더욱 심해져갔다. 아빠는 가능하면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영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아이의 한마디에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      


”하나의 꿈을 이루면 또 하나의 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꿈의 끝을 그는 알지 못하였다.”     


영주권만 받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하던 그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를 성취하면 또 다른 것에 대한 욕구가 자라기 시작하였다. 마치 10억을 가지고 있으면 20억이 탐나는 원리와 유사하였다. 평생 행복하게 살기는 애당초 글러먹은 거라는 생각에 이르면서 우울감이 밀물처럼 파고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마저 사치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매일 독서를 하고 영어 신문까지 읽어대는데 반해 그는 일만 할 뿐이었다. 발전이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만 하고 있었다. 영주권 받고 4일째 되는 날에 부부싸움을 하면서 그는 일생일대의 반전을 꾀한다.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도 아내와의 부부싸움에서 논리적으로 밀렸다. 그것도 참새도 하는 짹소리 한마디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했다. 아내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패배를 시인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논리가 나오는 것일까? 아내가 아무리 멘사 회원이라고는 하나 그도 만만치 않은 학력의 소유자였다. 물론 영국에서는 거들떠도 안 보는 대학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그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마침 다음날은 일이 없었다. 그날 밤이 아닌 그다음 날 새벽에 밖에 나갔다가 북두칠성을 보았다. 북두칠성이 저렇게 선명하게 보인적은 처음이었다. 그날부터 그는 밤하늘을 진지하게 올려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먹고살기 바빠서 하늘을 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북두칠성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것은 무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중 하나의 별은 눈을 부릅떠야 보일 정도로 유독 희미하였다. 다른 별들은 다 초롱초롱한데 그 하나의 별만은 겨우 숨을 쉬는 환자처럼 보였다. 마치 그 자신 같았다. 하지만 그 별이 희미한 이유는 아마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는 순간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 희미한 별은 절대 작거나 초라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작고 희미하게 보일 것이다. 마치 지금 자신이 아내에게 밀리는 것도 자신이 무식해서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실은 그 별이 가장 크고 멋진 별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미치자 그는 다시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더 이상 돈키호테처럼 살지 않고 아내처럼 현명한 사람으로 재탄생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새벽에 북두칠성의 그 희미한 별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였던 것이다. 아내와의 부부싸움에서 절대 논리로 지지 않을 거야! 뭐가 돼도 될 놈이라는 데 아내와의 논리 싸움에서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자존심을 넘어서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아내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남자가 어떻게 크게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가 할 일은 아내를 따라 하는 것이었다.      


아내처럼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다. 평소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이 평생 책을 잡고 사는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아내보다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독서를 시작하였고 매일 틈나는 대로 읽었다. 책벌레가 되어가면서 그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제법 아내에게 논리로 대항해 보기도 하고 따지듯 대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직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책에 매달렸다.      


한국에 가면 몇 박스씩 책을 사서 배로 부치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그가 읽는 책은 그의 아내도 죄다 읽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책을 숨겨놓고 혼자만 읽을 수도 없었다. 그는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밖에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북두칠성을 찾았다. 하지만 영국 하늘은 늘 상 우울하였다. 별이 보이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운 좋게 북두칠성을 만나는 날에는 약속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더욱 열심히 읽어서 언젠가는 아내를 이기고 말 거라고 다짐하곤 하였다.      


북두칠성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온 세월이 십 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아내에게 무서운 질병이 찾아왔다. 그의 무시무시한 촉수에 소름이 끼쳤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 질병은 그들을 별거의 길로 자연스럽게 인도했다. 그의 아내가 사는 방법은 한국행뿐이었다. 그는 물론 영국에서 사업장을 지키며 돈을 벌어야 했다. 가혹하지만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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