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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15. 2019

영국에 그 무서운 노동당이..

미스터리(Mr. Lee) #2. 런던, 고향이 되기까지

영국 국세청의 기습공격     


Work permit 비자를 받고 기쁨도 잠시였다. 베개에 머리카락만 닿아도 코를 고는 그였다. 실적 문제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년 반 동안 상당한 실적을 올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2년 반짜리 비자 신청 시 비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3개의 부업도 하면서 본격적인 명품 사업까지 시작하였다. 그가 구매대행을 시작한 것도 실적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구매대행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던 시절이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그에게 마침내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늘은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     


운이 좋게 일본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면서 사업 실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태리에서 명품을 시즌 오더 하면서 그 실적이 법인 계좌를 통해 들어오고 나갔다.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법인 통장의 실적이었다. 법인을 설립하고 work permit 비자를 신청할 당시 영국의 부가가치세는 17.5%였다. 지금은 20%다. 부가가치세는 내수용에만 적용이 된다. 수출용에는 면세가 적용된다. 공항이나 기내의 면세점들이 싼 이유는 바로 부가가치를 면제해 주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은 부가가치세가 이민 가기 이전의 10% 그대로다. 부가가치세로만 놓고 보면 영국이나 유럽에 비해 세금을 절반만 추징하는 것이다.      


영국이 사회주의라고? 노동당이 집권도 한다고? 그 김정은의 노동당처럼?


한국도 부가가치세를 20%로 올리면 벌 때처럼 달려들어 반대할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영국은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좌파 정권들이 정치를 한다. 오죽하면 영국식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생겨났을까? 실제로 영국은 노동당이 보수당과 주거니 받거니 정권을 잡고 통치를 하고 있다. 노동당!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 아닌가? 그렇다. 바로 북한의 집권 당명이 노동당이다. 한국의 보수 우파들이 그리도 두려워하면서도 정치에 정이라는 말만 나와도 우려먹는 당이 노동당이다. 빨갱이, 좌파, 종북이라는 단어 하나로 버텨온 그들에게 영국은 도대체 뭐가 되는지 모르겠다. 영국은 그들이 알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런던 시내의 경우 정부가 창문의 페인트 색깔까지 통제하는 나라다. 중국이나 북한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좌파나 노동당이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아니다. 제발 한국의 정치하는 분들은 정신들 차리기 바란다.  

   

”영국 국세청의 기습공격을 방어하라!”     


영국 국세청의 기습공격은 첫 번째 일본 선적이 이루어지고 나서였다. 작은 컨테이너 한 개 분량의 선적이었다. 그게 다 명품이었으니 부가가치세 환급액이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래서 국세청 직원도 이게 무슨 일인지! 하며 놀란 토끼눈으로 달려왔다. 다행히 며칠 전에 통보를 해주어서 사무실이 아닌 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레터로 설명하였다. 명품을 사무실에서 보관하거나 관리할 수가 없어서 집에서 작업하고 수출한다는 부연 설명을 하였다. 실제로 사무실에 명품을 둘 수는 없었다. 분실의 경우에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국세청 직원은 집도 상관없다고 하였다. 다만 그가 궁금한 것은 환급내역과 수출 송장이었다. 서류 조작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속된 날 아침 10시에 정확하게 그는 집에 도착하였다. 그는 신발도 벗지 않고 거실의 임시 사무실로 들어섰다. 키가 크고 잘 생긴 젊은 직원이었다. 전날 2층 서재에 있던 책상을 거실로 내려와 임시 사무실을 꾸며 놓았다. 의자는 부엌의 식탁용 의자들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수출선적 서류들과 명품들이 트럭으로 들어오던 사진과 수출 준비 작업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었다. 이태리 현지에서 시즌 오더 내역들도 모조리 보여주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큰 비즈니스를 직원도 없는 신생회사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눈치였다. 마지막으로 법인 통장의 입출금 내역을 보더니 그는 웃으며 나갔다.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달달한 홍차와 쿠키를 준비하였지만 그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일단 국세청이라는 적군은 물리친 셈이었다.     


“Home office 이민국의 공격을 막아내라! “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홈 오피스의 이민국으로부터 한통의 레터가 날라 왔다. 지난달에 사무실을 방문하였는데 문도 잠겨있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월요일 오전에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며 현기증이 몰려왔다. 그 레터를 받은 것이 토요일 오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축구를 빠지면서 사무실 꾸미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직원으로 채용하여 work permit을 준 같은 집에 사는 K와 그의 부부는 주말과 휴일을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이민국의 방문에 대비하였다.     

 

그가 한국에서 받았던 국정감사 때보다 더 긴장이 되었다. 잔류나 추방이냐의 기로에 선 것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그들의 방문이 있었지만 사무실은 언제나 비어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사생결단으로 나올 것이 틀림없다. 페이퍼 컴퍼니로 판명이 될 경우에는 비자 취소와 함께 추방된다. 그래도 이틀간의 준비기간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어있던 사무실은 실제 근무하는 것처럼 감쪽같이 변신을 하였다.      


유일한 문제는 인터넷 연결이었다. 다행히 사무실 바로 아래쪽 뒤편으로 한인이 살고 있었다. 부탁하고 사정하여 그날 하루만 인터넷 선을 따오기로 하였다. 사무실에 인터넷이 없다는 사실은 치명적이었다. 인터넷 문제까지 해결하고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서 대기하였다. 평소라면 집으로 오던 택배 컬렉터도 그날은 아침 10시쯤 사무실로 오라고 부탁하였다. 비어있던 공간이 살아 숨 쉬게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치 물에 빠졌다가 구조된 사람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심정이었다. 물론 그가 실제로 사람에게 마우스 투 마우스 기법으로 인공호흡을 한 일은 없었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다섯 명의 이민국 직원이 들이닥쳤다. 무장 경찰도 포함되었다. 그중 우두머리는 여자였다. 금발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여자가 팀장이었다. 금발의 팀장은 3층의 허름한 그의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왜 두 번이나 사무실을 옮겼는지 물었다. 이어 사무실에 왜 상주하지 않는지도 물었다. 그가 나서려 하자 그의 아내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무래도 그의 영어실력으로는 삐끗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또한 어학연수 때 런던 히스로 공항에 억류되었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버벅 거리기라도 하면 일이 커진다.  그는 재빨리 뒤로 빠져 마침 픽업하러 온 택배 기사에게 그날 나갈 분량을 체크하고 송장을 받고 있었다. 연출이었지만 늘 상 있은 모습처럼 부여 주려고 노력하였다. 그 사이 그의 아내는 유창한 영어로 답변을 시작하였다. 왜 세 번이나 이사해야 했는지부터 답변을 하였다.  

    

“사업 아이템이 모두 값비싼 명품이어서 사무실에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업무는 집에서 이루어졌다. 사무실에는 샘플만 몇 개 두었는데도 도난사고가 발생하였다. 명품을 취급하는 회사라는 것이 알려지면 보안상 이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집에서 이루어졌고 집이 사무실 기능을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린 페이퍼 회사가 아니다. 여기 은행거래내역부터 수출입 내역 그리고 부가가치세 환급내역 등의 서류가 있다. “      


짧고도 간단명료한 답변을 들은 팀장은 서류들을 들쳐보더니 30분도 안되어 일어섰다. 그리고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완벽한 그의 승리였다. 아니, 그의 아내의 승리였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4년째 되던 해에 다시 1년짜리 연장 비자를 신청하였고 순조롭게 나왔다. 영주권 신청자격이 4년에서 5년으로 바뀌면서 그만큼의 사무실 유지비용과 비자 신청비용이 들어갔다.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힘겨웠던 영국의 Work permit 비자를 세 번이나 받는 우여곡절 끝에 5년을 채울 수 있었다. 드디어 그의 가족은 꿈에 그리던 영주권자가 되었다. 신분도 없는 화전민에서 신분 상승을 이룬 것이다. 그 신분이 평생 체류허가에 불가한 이민자의 딱지여도 좋았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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