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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14. 2019

이민 초기 "봉"이 되는 이유

미스터리(Mr. Lee) #2. 런던, 고향이 되기까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    

 

지난해 겨울이 코앞에 닥친 겨울의 일요일이었다. 어쩌면 농익은 가을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을과 겨울을 나누는 일 자체가 의미 없어 보일 정도로 날씨는 오락가락하였다. 화창하다 못해 코끝이 찡한 제법 쌀쌀한 아침이었다. 그는 의정부의 어느 중학교 운동장에 있었다. 그 중학교의 맨땅 운동장에서는 매주 일요일마다 조기 축구가 열리고 있었다. 그의 대학 동기가 만든 모임으로 10년째 운영 중이었다. 그 일요일 아침 그는 운동장에서 축구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축구화 끈을 매고 있었다. 허리를 구부리는 동작에서 들릴 듯 말 듯 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몸이 보내는 언어였다.     

 

허리디스크 환자에게 축구는 최악의 운동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축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살기 위해서 그는 축구에 그토록 집착을 하고 있었다. 1주일에 한 나절 만이라도 우울을 잊기 위해서는 축구만 한 운동이 없었다. 그 몇 시간만이라도 세상만사를 잊고 싶었다.     

 

중년의 가장들에게는 살기 위한 자신만의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처럼 축구가 될 수도 있고 골프나 등산 등 다양한 형태로 자신만의 은신처가 필요하다. 그 은신처는 중년의 가장들만 아는 유토피아다. 그 은신처가 침범을 당하거나 접근할 수 없을 때 느끼는 좌절과 절망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도가 막히는 고통처럼 잔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는 고통은 오래가지 못한다. 생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물고기만 감지하는 것은 아니다. 중년의 가장들도 물고기처럼 팔딱거림 후에 오는 결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무리인 줄 알면서도 그는 차 트렁크에 축구화와 유니폼이 든 가방을 싣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든지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축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날 일요일 아침에 생각지도 못한 운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날 아침에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중년의 남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초면이 아니었다. 연배는 그보다 대여섯 살 정도 위로 보였다. 중년의 아저씨가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초면이어서 여러 가지 인사성 대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는 초면 치고는 너무도 익숙한 얼굴과 말투였다. 세상에는 참 비슷하거나 닮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축구를 하였다.


경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중에 그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 중년의 남자 이름을 물어보았다. 친구가 그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는 핸들을 놓을 뻔했다. 마침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온몸의 세포들이 들고 일어섰다. 세포들뿐만이 아니었다. 솜털들까지도 삐죽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 중년의 남자가 바로 H였던 것이다. 그와 그의 현명한(?) 아내까지 이용해 먹고 나 몰라라 했던 그 남자였다. 아주 오랜 전의 일이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짧은 한국 방문 중에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비즈니스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었고 큰 그림에 합의하였다.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H가 꽁무니를 뺐던 이유는 단순하였다. 일단 손 안 대고 코를 풀어보고 싶은 것이었다. H는 미끼를 던졌고 그 미끼를 그와 그의 아내가 문 것이다.      


”아! 세상 참 좁구나! 나쁜 짓 하지 말고 살아야겠구나! “ 그는 H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그 축구모임에 다시 나가는 일은 없었다.”     


이민 후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민 초보들이 겪는 시행착오 중 하나다. 이민 초기에 정착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뒤 따른다. 영국 주변이나 한국에서 꽃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유혹하는 사람들로 넘친다. 미국이나 호주라고 다를 것은 없다. 문제는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 미끼는 물론 비즈니스 기회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이민자들의 심리를 어쩌면 그리도 잘 아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 또한 달콤한 유혹을 견뎌냈을 리 만무하다. 고기가 미끼를 먹다가 낚시 바늘에 걸리듯이 걸려들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부부싸움을 하였고 아내로부터 신용이라는 점수를 잃어갔다. 한국에서 어떤 사업제의가 오면 그의 아내는 의심부터 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아내까지 설득해 그들의 꼬임에 넘어갔던 것이다. 그 미끼들에 낚인 일이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몇 개만 사례로 들어볼까 한다.     


그가 영국 이민 초기 봉이 된 첫 번째 사례는 앤티크 비즈니스였다.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한국의 전주(자본가)가 문제였다. 돈 좀 있다는 사업가는 청담동에 앤티크 매장을 내려고 준비 중이라고 하였다. 그 규모가 몇 십억의 초기 자본으로는 어림도 없는 비즈니스였다. 그 사업가는 유럽, 특히 영국의 앤티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아주 간단한 사업이었다. 영국에서 고급 앤티크를 사서 한국으로 매달 보내주는 것이다. 몰론 컨테이너로 말이다. 한국의 사업가는 가끔 런던으로 들어오기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의 아내는 무얼 믿고 시작하냐며 캐물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잃을 것이 없었다. 한국의 사업가 양반이 송금해 주지 않으면 영국에서 물건을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앤티크가 값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귀족들이 사용하던 테이블 하나에 억 소리가 났다.      


그는 일단 앤티크 공부부터 해야만 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앤티크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그였다. 그는 책을 사서 본격적으로 앤티크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첼시 주변의 킹스 로드에 있는 앤티크 매장들을 시간 날 때마다 다니며 공부하였다. 런던 외곽에서 열리는 앤티크 쇼에도 참가하였다. 그렇게 6개월을 제법 공들여 공부하고 준비하였다. 거래처도 제법 확보하였다. 사업을 준비할 만반의 준비까지는 아니지만 진행하면서 배우기로 하였다. 그의 성격이나 스타일이 그러했다. 뭐든지 일단 시작하고 보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사업가는 갑자기 사정이 생겨 앤티크 매장을 열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말이다. 어떤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처다 본다는 속담이 어쩜 이리도 정확하게 들어맞을까? 그는 죽어라고 영국의 앤티크 시장조사만 해줘서 보내주었다.      


한국의 영리한 사업가는 역시 한수 위였다. 어리석은 그가 보내준 앤티크 가격이나 제품들을 보고 계산기를 두드려봤을 것이다. 그리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거는 보통의 사업이 아니라고. 실제로 그랬다. 영국의 앤티크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목돈이 필요하였다. 몇 십억으로는 컨테이너 하나 채우기도 쉽지 않다. 영리하고 교활한 사업가가 그런 거액의 돈을 생면부지의 영국의 이민자에게 보내준다는 것은 너무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사업가가 현명했던 것이다. 졸지에 6개월 동안 시장조사를 공짜로 해 준 그는 바보가 되었다. 한국의 사업가는 손 안 대고 코를 푼 것이다. 영국의 앤티크 시장 조사를 한국에서 직접 와서 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지에 거주하는 한인에게 미끼를 던져주는 것이다.    

  

그 사업가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반년에 걸쳐 시장조사를 한 것이다. 그러니 그가 부자가 되었고 부자로 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역시 부자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뭐가 돼도 될 놈보다는 몇 수 위의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 때문에 그는 아내로부터 심한 질책까지 받으며 점점 신임을 잃어가고 있었다. 입맛은 물론이고 살맛도 덩달아 잃어가고 있었다.     


이민 초기 그가 두 번째 봉이 된 사건은 한국 유학원과의 원어민 교사 송출사업이었다. 



한국에 왔다가 우연한 기회에 친구 소개로 그 사무실까지 방문해서 학원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여러 사업 아이템들이 있었다. 구미에 당기는 그럴듯한 아이템도 있었다. 바로 인력 관련 사업이었다. 영국에서 광고를 내 원어민 교사를 모집해서 보내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그의 아내가 이민 초기에 1년 정도 했던 사업이기도 하였다. 경험도 있고 해서 아내도 적극적이었다. 영국에 돌아가자마자 광고를 냈다. 타임지와 쌍벽을 이루는 유력 일간지인 가디언 지였다. 아주 작은 박스 광고 하나에 몇 백만 원을 지불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력서들이 메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원어민 교사를 보내려면 먼저 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한국 학원 측과의 긴밀하고 적극적인 접촉이 필요하다. 그렇게 광고까지 하고 한 참 모집 중이던 차에 한국 쪽에서 연락이 왔다. 자기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있으니 원어민 교사들을 보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부류의 사업을 해본 적도 없었고 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추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속사정도 모르고 주요 일간지에 고액의 광고까지 내며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할 수도 없었다. 인생의 수업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을 몇 번 더 겪고 나서부터는 사기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기를 친 사람만 욕하거나 탓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기의 이면에는 그 사기꾼의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어보려는 피해자의 불순한 의도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기꾼도 문제지만 사기를 당한 사람들도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가 거액의 사기를 당했다고 하면 사기를 당한 사람도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으면 사기꾼들이 활개 칠 수가 없다. 사기를 치게 만드는 이면에는 사기꾼을 통해 뭔가 얄팍한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기를 당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사기꾼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해석 방식이다. 그걸 깨달았다고 그가 더 이상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오해다. 그는 여전히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들어오면 일단 물고 본다. 이건 금붕어 새끼도 아니고 그의 지능지수가 의심이 되는 대목이다. 아내로부터 그의 신뢰도는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의 아내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중년 가장은 인기관리나 하고 앉아있을 여유가 없다. 가장이라는 무거운 어깨는 그를 내버려 두는 법이 없었다. 

그 또한 정면 돌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대마불사를 외치던 그의 대마는 과연 살 수 있는 것일까?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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