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Nov 15. 2019

우울하지 않은 영국인은 없다구요?

미스터리(Mr. Lee) #2. 런던, 고향이 되기까지

”그는 건강했고 소처럼 일했다. 그의 유일한 낙은 토요일 오전의 축구와 퇴근 후 펍에서 생맥주 한두 잔이 전부였다. “     


사실 그가 건강 문제로 고통을 받을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영국에 와서 주치의 얼굴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그는 강하고 건강했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젊은 선수들과 축구를 해도 밀리지 않을 체력을 갖추고 있던 그였다. 건강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담배도 단 한 번의 시도로  끊을 정도로 축구에 미쳐있었다. 축구 때문에 공원에 가서 별도의 체력 훈련을 하던 그였다. 누구에게 지는 걸 참지 못하는 그놈의 승부 근성이 그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착각하였다.   

   

비록 아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고 주눅 드는 그였지만 집 밖에서는 어깨에 힘도 주며 제법 잘난 척도 하였다. 그의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도전정신과 끈기까지 보유한 그였다. 약간은 내성적이지만 적당한 승부근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가끔은 버럭 화도 낼 줄 아는 제법 남자다운(?) 그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아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작아지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때로는 아들처럼 야단을 맞거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유일하게 잘하는 한국말이 있었다. ”아빠 또 혼나! “라는 말이 그와 그의 아내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의 가계는 항상 손님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그는 점점 미소를 잃어가고 있었다. 매일 술에 의존하는 알코올 중독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을 이루 수가 없었다.  


    

”영국 사람들 중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어느 날은 너무 우울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GP(Genearal Practice)를 찾아갔다. 영국에서는 큰 병원에 가기 전에 반드시 동네의 GP를 들러야 한다. 개인 주치의가 근무하는 곳을 GP라고 한다. 말이 주치의 지 아무리 봐도 의사같이 보이지 않는다. 주치의의 70% 이상은 인도계 이민자들이었다. 이들은 유독 한국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그도 모른다. 인도의 상류층들이 카스트 제도의 향수를 잊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오랜 영국의 식민통치로 인해 자신들이 마치 영국인인 줄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텃세를 부리는 것이다.     


그날도 그는 주치의를 찾아가서 신경정신과에 보내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너무 우울하고 때로는 하루 종일 죽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하소연을 하였다. 결코 과장이 아니었고 엄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주치의의 답변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영국 사람들 중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 있으면 나와 보란다. 연로하신 여왕님부터 곧 물러날 총리만큼 우울하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영국인의 50% 이상이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우울증이라고 다 정신과로 보내주면 그렇지 않아도 환자로 넘치는 영국 병원들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오히려 따진다. 갑자기 화가 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치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95세의 고령이신 여왕님이 즐거우면 얼마나 즐거우실까! 돌아가시면 그 많은 재산 아까워서 어떡하지? 그러고 보니 여왕님이 가장 우울하겠구나! 카메론 총리는 99.99%의 승리를 장담하던 EU를 두고 한 도박에서 패배했다. 그는 약속을 지키고 도망치듯 떠났다. 총리직을 걸고 한 투표였기 때문이었다. 그 대가로 영국은 도박 빚을 갚아야 한다. 잘못하면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하고 유럽으로부터 강제 이혼당하게 생겼다. 생각해보니 그는 여왕님 다음으로 우울하겠구나! 결국은 우울증 상담도 받아보지 못하고 GP를 나와야 했다. 


영국의 의료 시스템은 전 국민 무료다. 일체 병원비가 없다. 치과만 예외다. 교통사고가 나도 합의를 볼 필요가 없다. 보험 처리만 하면 그만이다. 병원비가 무료인데 목이 뻐근하다고 병원에 가서 들어 누워봐야 지만 손해다.    

 

영국에서는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려면 반드시 GP에 계시는 주치의님의 진료의뢰서 레터가 필요하다. 심지어 자기돈 내고 가는 사립병원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GP나 의사에 준하는 자격을 가진 자의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공짜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GP의 주치의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군의 행정반에서 그가 서무계로서 휘두른 권력 못지않은 것이었다. 아파도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할 때가 많다. 어지간한 처방전도 주치의가 처방해준다. 주치의에게 잘못 보이는 날에는 국물도 없다.  


   

“영국 사람들 중에 허리 안 아픈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     



허리디스크로 찾아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듬직한 아이와 함께 같다. 혹시라도 아빠가 인도식 영어 발음에 당황해할 상당히 높은 확률에 대비한 비밀병기가 바로 그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그 나이에 허리 안 아픈 사람 있으면 나와 보란다. 자기도 디스크를 달고 산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허리부터 아픈 거란다. 영국  사람 중에 그 나이에 허리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한다. 기가 먹혔다. 한 술 더 떠서 95세의 여왕님도 허리 아프다고 안 한다는 것이다.      


이 노인네가 왜 툭하면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여왕님을 카드로 꺼내 드는지 화가 치밀었다. 순간 옆에 있던 아이는 아빠 옆구리를 지르며 살짝 째려본다. ”Daddy, calm down! “ 아빠 진정하라는 의미다. 주치의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영국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기는 행정반의 서무계와 싸워서 이길 중대의 병사들이 얼마나 될까? 매일 밤 야간 보초를 서야 하는 병사들의 근무 명령서 하나만으로도 서무계의 눈에 나면 군 생활은 꼬인 것이다. 주간 근무는 혜택이지만 야간 근무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장 취약 시간인 23시나 04시에 집어넣으면 그날 잠은 다 잔다.     


GP의 주치의는 구글 검색을 통해 허리 통증에 좋은 근력 강화법 5가지가 나와 있는 사진을 출력해서 열심히 따라 해 보란다. A4용지 두 장에 출력된 흑백 사진의 자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앞에서 찢어서 주치의 면상에 던지고 싶었다. 아마 아이만 없으면 그랬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GP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GP로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옮겨도 마찬가지라는 걸 여러 번 경험하였다. 아이가 지켜보고 있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 또한 엄마 못지않게 아빠의 버럭 하는 성질에 히스테리성 반응을 보였다. 그는 군 시절 행정반을 떠올리며 GP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치의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뽑아주신 그 5가지 자세가 담긴 A4용지 2장을 불끈 쥐고 말이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서울 선정릉 [모두의 캠퍼스] 강의 신청하기  / 월출산 국립공원 카페 [기억] 강의 신청하기


이전 11화 브렉시트에 장렬하게 쓰러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